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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가운데)가 지난해 4월 15일 '이예람 특검법(공군 20전투비행단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관련 군내 성폭력 및 2차 피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오른쪽), 박지현 당시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과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가운데)가 지난해 4월 15일 '이예람 특검법(공군 20전투비행단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관련 군내 성폭력 및 2차 피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오른쪽), 박지현 당시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과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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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피해 군인(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에 대한 군 검찰의 부실 수사가 재판을 통해 처음 확인됐다. 2021년 5월 21일 이 중사가 사망한 후 631일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정진아 부장판사)는 9일 오후 가해자 장아무개씨(범행 당시 중사)에 대한 특검의 추가 기소 혐의(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성추행만으로 징역 7년이었던 장씨의 형량은 2차 가해로 인해 1년 더 늘어났다.

앞서 군 검찰(국방부 검찰단)은 장씨를 재판에 넘기며 강제추행치상 등의 혐의만 적용했다. 장씨의 형량은 1심 징역 9년(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2심 징역 7년(국방부 고등군사법원)으로 감형됐고 지난해 9월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사건 초기부터 장씨를 비롯한 가해자들의 부대 내 2차 가해와 군 검찰의 부실 수사를 지적했고 국회는 지난해 4월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특검법 수사 대상엔 이 중사의 성추행 피해뿐만 아니라 공군·국방부 측의 2차 가해 및 은폐·무마·회유까지 포함됐다.

특검(안미영 특별검사)은 장씨가 성추행뿐만 아니라 이 중사의 명예도 훼손했다며 당시 강제추행치상 등 혐의로 재판을 받던 장씨를 추가 기소(지난해 9월)했다. 이 중사의 피해 신고 후 장씨가 동료들에게 '일상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신고를 당했다', '선배님들도 여군 조심하라', '이 중사가 받아줬다'는 말을 했는데 이를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으로 본 것이다.

이는 앞서 군 검찰에선 기소하지 않았던 혐의다. 아직 1심 판결이긴 하지만 이날 법원이 특검의 판단을 인정하면서 이전 군 검찰의 수사·기소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재판을 통해 공식 확인된 셈이다.

재판부 "피해자 좌절감 능히 짐작... 안타까움 금치 못한다"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담당 안미영 특검(가운데)이 지난해 9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담당 안미영 특검(가운데)이 지난해 9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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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공판에서 장씨에게 징역 2년(명예훼손 혐의)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한 특검은 "피고인(장씨)이 범행 후 주변에 자신이 억울하게 신고 당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허위사실을 적시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범행 내용을 축소·은폐하고자 이뤄진 이 행위는 전형적인 2차 가해"라고 강조했다.

유족 측도 법정에서 발언 기회를 받아 "부대에서 이 중사의 피해 사실이 유포되고 직속상관들이 합의를 종용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 피고인의 발언"이라며 "엄벌에 처해달라"고 요청했다.

장씨 측은 "황망한 심정이고 피해자에게도 죄송한 마음"이라면서도 "사석에서 변명조로 한 이야기가 침소봉대돼 억울한 점이 있다. 어리석은 변명이었지만 명예훼손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장씨의 발언이 피해자를 특정한 허위사실이며 불특정 또는 다수에 전파될 가능성이 있어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으로 판결했다. 또한 장씨의 행위가 명백한 2차 가해라고 짚었다.

정진아 부장판사는 "성범죄 사건에서는 통상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가 된다. 피해자의 성정이나 행동을 왜곡해 퍼뜨리는 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공격해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치명적이고 직접적인 2차 가해"라고 밝혔다.

이어 "조직 특수성, 남성 중심의 인적구성과 계급문화, 공동생활에 근거한 폐쇄성 등을 고려할 때 (장씨의) 각 발언으로 인해 중대 피해를 당한 피해자는 거대한 조직 안에 홀로 고립됐다"라며 "(장씨는) 기강 확립이 필요한 군부대에서 같은 부대원을 추행했고 오히려 사실관계를 왜곡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가해자, 피해자 고립되게 해... 피해자에 저지르는 명예훼손은 불법성 크다"

이에 더해 "(장씨의) 발언 상대방들은 피고인(장씨)이 설명하는 편향된 내용만 듣고 피고인을 돕고자 탄원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이고, 노◯◯(발언을 들은 또 다른 인물)가 합의를 종용한 것과 관련해 수사를 받던 중 (피해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라며 "(피해자 이 중사가) 근무했던 부대는 물론 전보된 부대에까지 (성추행 사실이) 왜곡 전파돼, 남성 중심의 군사조직 내에서 근무하던 피해자가 감내하기 어려운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꼈을 거라고 능히 짐작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범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저지르는 명예훼손은 불법성이 매우 크다"라며 "가해자인 피고인이 진지하게 자숙했다면 이와 같은 결과를 낳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라며 덧붙였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부사관이던 장씨는 2021년 3월 같은 부대 소속 이 중사를 성추행했다. 이 중사는 부대에 여러 차례 이를 신고했으나 2차 가해 및 은폐·무마·회유 시도가 이어졌고 같은 해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고 공분이 일자 국방부는 직접 이 사건을 수사하기로 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해 10월 장씨를 비롯해 15명을 재판에 넘겼지만 초동 수사 담당자 및 지휘부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아 비판이 쏟아졌다.

유족을 중심으로 특검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지난해 4월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이후 6월부터 약 3개월 간 수사를 진행한 특검은 장씨 외에도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 등 6명을 기소했다. 6명의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2021년 6월 28일 당시, 성추행 피해로 사망한 이아무개 공군 중사의 빈소가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있는 모습.
 2021년 6월 28일 당시, 성추행 피해로 사망한 이아무개 공군 중사의 빈소가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있는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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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공군, #성추행, #이예람, #중사, #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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