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는 변희수 하사 2주기를 맞아 고인의 꿈과 용기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앞으로 만들어갈 변화를 다짐하기 위해 4회에 걸쳐 연속 기고를 진행합니다. [편집자말]
2022년 2월 27일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제에 마련된 추모 공간. 웃고 있는 변희수 하사의 사진 앞에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분홍색, 하늘색, 흰색의 꽃이 놓여 있다.
 2022년 2월 27일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제에 마련된 추모 공간. 웃고 있는 변희수 하사의 사진 앞에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분홍색, 하늘색, 흰색의 꽃이 놓여 있다.
ⓒ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관련사진보기

 
해가 바뀌고 다시 2월이 다가와 '2주기'라는 단어를 보며 들었던 첫 생각은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였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의 매일은 바쁘게 돌아가고, 당장 눈앞에 놓인 일에 쫓기다 시간이 무심하게 흘러가 버린 것 같다. 사실 우리 곁에 살아가던 변희수의 갑작스러웠던 죽음은 우리가 그이의 장례식장에 다녀오고, 어딘가에 고이 모셔져 있는 걸 몸소 겪고 나서도 종종 현실로 받아들여지진 않는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띵동이 추모하는 이들의 사진 가운데 쑥스럽고 조금은 어색한 듯 웃고 있는 희수의 사진을 마주쳤을 때, 수납장에서 미처 챙겨가지 못했던 물건을 보게 될 때, 생전 좋아하던 간식이나 취미 생활에 대해 접하게 될 때, 왈칵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올라온다.

그건 "밥이나 먹자!"하고 만나서 아무 농담 같은 시시껄렁한 얘기를 섞어가며 웃다가 울다가 분노하다가 토라졌다가 침묵하기를 반복하는 걸 보고 싶음이다. 우리의 일상에 같이 녹아있던 그 모습들 말이다. 희수만이 가졌던 구체적인 몸짓을 보고 싶다고밖에 할 수 없고, 기억에 의존해서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그때서야 이 세계 안에 희수가 부재하다는 사실이 한 번씩 곱씹어진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희수는 어떤  모습일까. 이곳저곳에 남긴 말들로 추정해보건대 오랫동안 품어온 반짝이는 꿈을 꾸던 사람, '명예'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며 군인의 자부심을 느끼고 자기소개를 하던 사람, 여성인 자기 자신으로 행복하게 살고 원하는 일을 하길 바랐던 사람,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원하던 직장을 잃어야 했던 절망감을 느끼면서도 꿋꿋하고 용기 있게 자기 할 말을 힘 있게 하고자 했던 사람, 주변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 하던 사람, 좋아하는 걸 이야기할 때 햇살처럼 웃고 싫은 것엔 뚱한 표정으로 투정도 부릴 줄 알던 사람의 모습 아니었을까.

하나씩 나열하면 끝이 없을 정도로 다채롭고 인간적인 모습이 두루 있었던 희수가 모두 저마다의 기억 조각들로 남아서 우리를 연결해주고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묵묵부답
 
2021년 10월 19일 서울 국방부종합민원실 앞에서 '법원의 변희수 하사 강제 전역 취소 결정에 대한 육군의 항소 포기 촉구 인권·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1년 10월 19일 서울 국방부종합민원실 앞에서 '법원의 변희수 하사 강제 전역 취소 결정에 대한 육군의 항소 포기 촉구 인권·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2022년에 띵동은 '먼저 떠난 이들에게 전해지는 우체통'을 만들었다. 희수를 비롯해 띵동이 만나오던 몇몇 사람들과 슬픈 이별을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애도와 서로 돌봄의 한 방식이었다. 먼저 떠난 이가 그리워서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언제든 편지를 적어서 띄울 수 있도록 항상 편지지를 마련해두고, 그 옆에 먼저 간 이들의 사진을 하나씩 올려두었다.

작년에는 띵동의 활동가들이 모두 모여 그들을 떠올리며 편지를 쓰고 기억을 나눴었다.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추모 자리가 조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청소년 한 명 한 명이 나와 분리되기 어려운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직면해야 했고, 깊게 새겨진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때 우리가 희수에게, 희수에 대해 어떤 말들을 했던가. 내용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속상함과 그리움, 그리고 울먹임이 가득 배어있던 목소리만큼은 선명히 맴돈다. 그렇게 눌러쓴 편지를 우체통에 밀어 넣으며 그리워하는 마음이 희수에게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변희수가 당당하고 용기 있게 모든 성소수자 군인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가길 바란다는 말을 우리에게 남기고 먼 곳으로 떠난 후 2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육군은 치졸하고 비겁한 태도로 변희수 하사의 순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차별과 혐오로 고인을 상처 입히고 있는 정부와 군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의 삶을 이렇게까지 모욕하고 망칠 권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희수가 남긴 발자취를 놓아선 안 되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하게 된다.

소수자에게 여전히 가혹한 세상 속에서 희망을 얘기하기 어렵더라도, 우리는 또 살아가야 하니까 서로의 곁을 내주며 위로하고 따스하게 돌볼 수 있다면 좋겠다. 투쟁하는 생존에서의 생존은 단순히 살아남음이 아니라, 우리답게 살아남기 위한 것이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분명히 있다.

희수가 남겨주었던 용기에 기대어 소수자의 삶이 더 이상 배제되지 않고, 존엄하게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함께 살아가자고 말하고 싶다. 변희수와 변희수를 기억하는 우리의 마음이 서로를 지켜주길 바란다. 변희수를 마음속 깊이 추모하며, 우리 모두의 '명예'가 회복될 날이 반드시 올 거라 믿는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변희수 하사의 순직 인정을 요구하는 시민 탄원서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탄원서는 2023년 2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방부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모집 기간 : 2023. 2. 13(월) ~ 2. 24(금) https://bit.ly/bhs_petition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민지희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활동가입니다.


태그:#변희수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