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 월드컵 4강신화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지난 2002년 8월 영화 <오아시스>가 개봉했다. <오아시스>는 <초록물고기>와 <박하사탕>을 만들었던 이창동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로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베니스영화제에서 특별감독상을, 한공주 역의 문소리는 신인배우상을 수상했다. <박하사탕>에 이어 문소리와 또 한 번 호흡을 맞춘 설경구도 대한민국영화대상과 춘사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오아시스>는 뺑소니 교통사고로 징역형을 살고 나온 날건달 홍종두(설경구)와 중증뇌성마비장애를 앓고 있는 한공주의 사랑을 그린 멜로 영화다. 물론 자신을 강간하려 했던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설정 때문에 <오아시스>에 불편함을 느낀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지금처럼 상영관이 많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에도 서울에서만 53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특히 소설이나 영화 같은 문학 작품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사랑에 빠지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 2004년 국내에 개봉했던 이 영화는 2016년과 2020년 두 번이나 재개봉했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탄탄한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다. 장애를 가진 여성과 그녀를 바라보는 남성의 아름다우면서도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를 담은 일본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지난 2016년 "오랜만이야 조제, 잘 지내지?"라는 낭만적인 카피와 함께 12년 만에 재개봉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지난 2016년 "오랜만이야 조제, 잘 지내지?"라는 낭만적인 카피와 함께 12년 만에 재개봉했다. ⓒ (주)디스테이션

 
독창적인 감성을 가진 일본의 멜로영화

최근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3·40대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국내에서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로써 <슬램덩크>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너의 이름은>에 이어 국내에서 300만 관객을 돌파한 3번째 일본 애니메이션이 됐다. 이처럼 일본은 애니메이션에 큰 강세를 보이는 나라지만 애니메이션만큼 멜로 영화도 잘 만드는 나라로 꼽힌다. 특히 일본 멜로영화는 특유의 잔잔한 매력으로 국내에도 많은 마니아들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멜로영화는 역시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부터 암암리에 학교에서 불법복사 테이프가 돌았던 전설의 영화 <러브레터>다. 일본문화 개방 후 국내에서 4번째로 상영된 일본영화 <러브레터>는 1999년 첫 개봉 이후 무려 6번에 걸쳐 재개봉됐을 정도로 오랜 기간 사랑 받았다. 특히 영화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 중에는 나카야마 미호가 눈 속에서 외치는 명대사 "오겡끼데스까~"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2001년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해 국내에서는 2003년에 관객들에게 선보였던 <냉정과 열정 사이>도 잔잔하게 사랑 받은 일본의 멜로 영화다. 홍콩배우 진혜림이 여주인공 아오이를 연기했다. <냉정과 열정 사이> 인트로에서 흘러 나왔던 OST < The Whole Nine Yards >는 각종 광고와 예능 등에 단골로 쓰이면서 영화 이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2004년에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일본열도를 강타했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여자친구와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담은 영화로 국내에서는 전국 42만 관객에 그쳤지만 일본에서는 무려 700만 관객을 동원했고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특히 영화에서 삭발투혼을 감행하며 열연을 펼친 아키 역의 나가사와 마사미는 2021년에도 <마더>로 일본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톱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2017년에 개봉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역시 일본 멜로의 색깔이 짙은 영화다. 제목이 주는 강렬함 때문인지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평이 엇갈렸지만 국내 N포털사이트에서는 8.35점으로 꽤 높은 관람객 평점을 받았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2018년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는데 제작진의 홍보스케줄 때문에 일본보다 국내에서 일주일 먼저 개봉했다.

두 번의 재개봉과 리메이크까지 된 영화
 
 조제는 문이 닫힌 수족관 대신 물고기 조명배경이 있는 숙소에서 츠네오와 함께 물고기를 실컷 감상했다.

조제는 문이 닫힌 수족관 대신 물고기 조명배경이 있는 숙소에서 츠네오와 함께 물고기를 실컷 감상했다. ⓒ (주)디스테이션

 
한국이 웹툰이나 웹소설 문화가 크게 발달하면서 출판시장은 상대적으로 위축됐지만 일본은 아직 출판 만화와 출판 소설이 높은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로맨스 소설은 고정 독자층을 유지하면서 오랜 기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일본의 멜로 영화들은 대부분 로맨스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역시 다나베 세이코 작가의 단편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

일본에서 3억 엔이 넘는 흥행성적을 올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2004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되며 호평을 받았고 같은 해 10월 개봉 후 2005년 초까지 소수의 상영관에서 장기 상영됐다. 2020년에는 한국에서 한지민과 남주혁이 주연을 맡은 <조제>라는 제목의 리메이크작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만 한국영화 <조제>는 뛰어난 영상미에도 전국21만 관객으로 흥행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두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 조제는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집에서 할머니가 주어온 헌책을 읽으며 어지간한 대학생을 능가하는 지식을 쌓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느라 다소 폐쇄적인 성격을 가졌지만 우연히 조제의 집에 방문한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 분)를 만나 세상을 알아간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현실적 한계로 인해 헤어지게 되고 조제는 할머니와 츠네오 없이도 혼자서 의연하고 꿋꿋하게 살아간다.

1999년 <오사카 이야기>로 데뷔한 이케와키 치즈루는 2003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2000년대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그 중에는 2008년 이민기와 출연한 한·일 합작영화 <오이시맨>도 있었다). 조제의 이미지 때문에 억압받는 여성 캐릭터를 많이 연기하던 치즈루는 2014년 <그곳에서만 빛난다>에서 또 한 번 '인생연기'를 보여주며 아시아 필름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N포털사이트 관람객 평점 9.22점, D포털사이트 평점8.7점을 받았을 정도로 관객들에게 매우 높은 평가를 받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관객과 평론가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흔치 않은 영화다. 평점이 인색하기로 유명한 이동진 평론가는 만점에 가까운 별 4개 반을 줬고 이지혜 평론가도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당신이 부럽다'라는 극찬에 가까운 한줄평과 함께 8.75점의 높은 평점을 줬다.

조제의 장애를 부러워했던 카나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실질적인 데뷔작이었던 우에노 주리는 <스윙걸즈>와 <노다메 칸타빌레>를 통해 인기가 급상승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실질적인 데뷔작이었던 우에노 주리는 <스윙걸즈>와 <노다메 칸타빌레>를 통해 인기가 급상승했다. ⓒ (주)디스테이션

 
처음엔 측은함 반, 호기심 반으로 조제에게 다가갔다가 조제와 사랑에 빠지는 츠네오를 연기한 츠마부키 사토시는 게임센터에서 찍힌 사진을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다. 1999년 친형과 함께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던 사토시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외에도 <워터보이즈>, <눈물이 주룩주룩>, <동경가족>, <분노> 등에 출연했다. 사토시는 일본 아카데미에서 7번의 수상 경력을 가진 연기파 배우이기도 하다.

츠네오와 썸을 타는 여사친으로 열연한 카나에는 장애가 있는 조제에게 츠네오를 빼앗기자 분노에 휩싸여 조제를 찾아가 그녀의 뺨을 때린다. 하지만 사회복지사가 꿈이면서 조제에게 질투심을 느낀 것에 큰 자괴감을 느낀 카나에는 공부를 멀리하고 거리에서 담배 판촉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츠네오와 마주친다. 결국 카나에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츠네오를 기다리다가 조제와 헤어진 츠네오와 재회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카나에를 연기한 배우는 청순한 매력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보유한 우에노 주리다. 주리는 2004년 영화 <스윙걸즈>와 2006년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통해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주리는 2014년 <내일도 칸타빌레> 방영을 앞두고 내한해 한국판 주인공 심은경을 만났고 2015년에는 한국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서 74번째 우진 역으로 짧게 출연하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누도 잇신 감독 이케와키 치즈루 츠마부키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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