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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는 변희수 하사 2주기를 맞아 고인의 꿈과 용기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앞으로 만들어갈 변화를 다짐하기 위해 4회에 걸쳐 연속 기고를 진행합니다. [편집자말]
2020년 1월 22일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강제 전역 판정을 받은 변희수 부사관이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군의 강제 전역 조치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0년 1월 22일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강제 전역 판정을 받은 변희수 부사관이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군의 강제 전역 조치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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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22일, 군의 강제전역 조치에 대한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고 변희수 하사를 처음 마주한 순간의 놀라움을 기억한다. '군인'이라는 꿈을 품고 자랐던 사람, 꿈을 이뤘다는 사실에 뿌듯해하고 행복해했던 사람, 그리고 다시 나다운 모습으로 그 꿈을 지켜 나가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던 사람. 화면 밖까지 느껴지는 떨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던 고 변희수 하사는 생생한 빛을 품고 있었다.

고 변희수 하사가 떠난 한국 사회에 남겨진 과제 중 하나는 트랜스젠더의 노동권이다. 자신의 일터에서 존중받으며 맡은 일을 해오던 사람이 성별을 정정했다는 이유만으로 일터에서 쫓겨나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대라는 예외적인 직장에서 나답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싸우던 한 명의 노동자였던 고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며, 트랜스젠더의 노동권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한국 트랜스젠더의 노동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법적 성별정정 요건이 트랜스젠더 개인, 특히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들을 어떻게 노동 시장에서 주변화하며, 자신이 정체화한 성별로 살아가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외과적 수술을 포함한 의료적 조치를 성별 정정의 요건으로 포함하고 있는 상황은 성별정정을 어렵게 한다. 법적 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한 성별과 성별표현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트랜스젠더 개인들은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더욱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전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2000만~3000만 원가량의 성확정 수술 비용을 마련하는 일은 다시 법적 성별 정정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엄격한 법적 성별 정정 요건과 노동 시장에서의 주변화, 트랜지션 관련 의료적 조치에 대한 경제적 부담의 악순환은 트랜스젠더의 삶을 취약하게 만든다.

어떤 이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의료적 조치를 받지 못하고, 그로 인해 법적 성별을 정정하지 못한다. 한편, 어떤 이들은 법적 성별에 부합하지 않는 성별 표현을 하거나, 성별을 정정하면 경제활동에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로 의료적 조치와 법적 성별 정정을 포기하기도 한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으로 수행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전환 관련 외과적 수술을 받지 않은 응답자 446명 중 71.0%는 '비용이 부담되어서' 수술을 받지 않았다고 응답한 반면, 33.1%는 '구직, 직장생활 등 경제적 활동에 어려움이 생길 것 같아서'라고 응답했다.

법적 성별 정정과 관련해서도 성별 정정을 시도하지 않은 응답자 508명 중 58.9%는 '의료적 조치에 드는 비용 때문'에 성별 정정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반면, 28.7%는 '직장을 구할 때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서'라고 응답했다.

"힘을 보태어 이 변화에"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학업이나 직장생활의 단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몇 년 전 심층 인터뷰를 위해 만났던 한 연구참여자는 대학 생활 중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 법적 성별로 살아가는 일상에 한계를 느껴 긴 휴학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의료적 조치를 받고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부합하는 모습으로 사회적인 삶을 살며 복학을 시도하기도 했다.

트랜지션으로 달라진 것은 그가 자신의 성별정체성대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사실 뿐이었지만, 돌아간 학교에서 마주한 것은 소문과 수군거림, 보이지 않는 배제였다. 결국 그는 자신이 원하던 진로를 포기하고, 누구도 자신의 성별 정정 사실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진로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실태조사'에서도 트랜스젠더의 학업과 직장 생활의 단절을 확인할 수 있다. 의료적 조치를 받은 경험이 있는 참여자 284명 중 9.5%는 의료적 조치를 받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퇴사한 경험이 있었고, 4.6%는 다니던 학교를 자퇴한 경험이 있었다. 8.8%는 의료적 조치와 관련한 휴학 경험이 있었고, 2.5%는 휴직 경험이 있었다.

트랜스젠더가 어떤 모습이든, 트랜지션을 했든, 하지 않았든, 혹은 지금 그 과정을 통과하는 중이든, 나다운 모습 그대로 배우고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였다면, 이들은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이 아닌 이유로 의료적 조치와 성별 정정을 포기하거나, 자신의 진로와 직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고 변희수 하사는 한국 사회가 그런 사회이거나, 적어도 그런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강제전역이라는 장벽에 부딪힌 이후에도,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내고 싸웠던 한 명의 트랜스젠더 노동자였다.

"저는 인권친화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군에서, 저를 포함해 모든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각자 임무와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가 그 훌륭한 선례로 남고 싶습니다. 저는 비록 미약한 한 개인이겠으나, 힘을 보태어 이 변화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2020년 1월 22일 오후 4시30분)

"힘을 보태어 이 변화에." 2021년 3월 6일 오후 4시 30분, 고 변희수 하사가 기자회견을 열었던 시각에 그를 기억하는 추모 행동을 위해 시청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이 함께 되뇌었던 말이다.

오는 27일 월요일 저녁 7시 변희수 하사 2주기 추모제가 종각역 보신각 앞에서 열린다. 트랜스젠더가 '나'답게 일할 권리를 위해 싸우던 한 사람을 기억하며, 다시 모여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모두가 나다운 모습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힘을 모으자.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변희수 하사의 순직 인정을 요구하는 시민 탄원서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탄원서는 2023년 2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방부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모집 기간 : 2023. 2. 13(월) ~ 2. 24(금) https://bit.ly/bhs_petition

[변희수 하사 2주기 추모 연속 기고 ①] 변희수가 남긴 마지막 말 생생한데... 육군은 참 비겁하다
[변희수 하사 2주기 추모 연속 기고 ②] 대놓고 차별과 혐오... 군대에서 더 고통 받는 사람들
[변희수 하사 2주기 추모 연속 기고 ③] 이게 정말 '사적인 죽음'이라고? 육군의 해괴한 논리

태그:#변희수, #트랜스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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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운영위원 고려대학교 보건과학과 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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