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4 13:15최종 업데이트 23.02.2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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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독일이 남반구로 향하는 속도를 빠르게 올리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월 미국-아프리카 지도자 회의에서 2023년 아프리카 방문을 약속하며 일차적으로 재무장관을 1월에 아프리카로 보냈고 2월 초에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초대했다. 독일 역시 12월 재무장관과 외무장관이 아프리카를 방문했고 1월 말 올라프 숄츠 총리가 직접 남아메리카 3개국을 순방했다.

두 국가의 외교 행보는 공통적으로 러시아-중국 견제를 목표로 한다. 바이든은 2021년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견제하는 B3W(Build Back Better World, 개발도상국 인프라 투자계획)를 발표했다. EU 역시 비슷한 성격의 글로벌 게이트웨이(Global Gateway) 정책을 마련했다.


반면 이들의 움직임은 대서양 양쪽의 경쟁 성격도 있다. 지난 2월 EU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맞서 국가 보조에 의한 에너지 관련 미래 산업 경쟁을 선언했다 (관련기사: 브렉시트 후회하는 영국? 요동치는 유럽 https://omn.kr/22rfx).

대서양 양쪽이 공을 들이는 남반구는 역사적으로 주변부였고 피해자였다. 식민지, 노예, 종속(신제국주의)은 서구와의 관계에서 빠질 수 없는 단어다. 신자유주의의 구호인 세계화에서도 경제 발전은 북반구에 밀렸는데 정작 책임이 없는 기후 문제에 있어서는 피해를 보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무대에서 이들의 영향력과 천연 자원의 중요성이 높아지자 미국과 독일은 과거와 달리 동등한 파트너십을 제안하고 있다. 

그렇다고 호락호락 넘어갈 남반구가 아니다. 지난 1, 2월간 바이든과 숄츠를 모두 만난 이는 브라질의 룰라다. 셋은 정치 이념상 (중도) 좌파로 분류되는 지도자로 노동 중심의 경제 전환에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제 관계에서는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아프리카에 파트너십 제안하는 미국

지난 12월 13-15일 워싱턴에서 미국-아프리카 지도자 회담(The US-Africa Leader's Summit)이 열렸다. 2014년 오바마 행정부가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때 중단되었다가 8년 만에 재개된 회담으로 미국은 아프리카 49개국 지도자와 시민단체를 초대했다. 회담 둘째 날인 14일 바이든은 과거 노예제를 미국의 "원죄(original sin)"로 표현하며 사과한 후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미국은 아프리카의 미래에 올인한다."

이 발언은 아프리카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제적으로 아프리카는 국가 부채가 높고 빈곤 문제가 심각하지만 막대한 천연가스 보유로 잠재된 에너지 권력을 가지고 있다. 국제 무대에서 아프리카는 UN의 30%를 차지한다. 이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립을 지키며 전략적 독립성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은 아프리카 교역에서 중국에 한참 밀려 있는 상태다. 통계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21년 미국-아프리카 무역 규모는 610억 달러로 중국-아프리카의 2540억 달러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전체 무역에서 아프리카가 차지하는 비중은 1%로 그것도 나이지리아와 앙골라의 원유 수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아프리카 지도자 회담 마지막 날인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아프리카 정상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13일부터 사흘간 열린 이번 회의에는 아프리카 49개국과 아프리카연합(AU) 대표단이 참가했다. 2022.12.16 ⓒ 연합뉴스

 
이 날 바이든은 "아프리카의 목소리, 아프리카의 지도력, 아프리카의 혁신"을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기존의 일방적 관계를 지양하고 더 동등한 파트너십을 추구하겠다는 일종의 새로운 접근 방향이다. 그동안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 질서에서 아프리카는 주요국의 상품 시장으로 기능했다. 심지어 원유를 수출하지만 기술 부족으로 정유된 석유를 다시 수입해야 했다.

구체적으로 바이든이 제시한 것은 150억 달러(약 19조 원) 투자다. 투자 분야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상호 교역을 돕는 인프라, 아프리카 노동자 계층을 보호할 수 있는 중소 기업 및 소외된 지역의 기업 투자 그리고 여성의 경제 활동 지원이다.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인적 자원 개발 프로그램도 실시한다.  

캐서린 타이(Katherine Tai)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아프리카 자유무역(African Free trade agreement) 지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미국 재무장관 재닛 옐런(Janet Yellen)은 1월 17-28일 열흘동안 세네갈, 잠비아, 남아프리카공화 세 국가를 방문했다. 미 재무부 발표에 따르면 옐런 장관은 기후 변화, 위생, 팬데믹 등 미국-아프리카 경제 협력을 강화할 현안을 살폈다.   
     
독일 숄츠의 남아메리카 공략

아프리카 전략에서 독일은 미국보다 한발 앞서 있다. 전임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2010년대 아프리카형 마셜 플랜과 독일-아프리카 경제 회의 등 기초 기반을 닦아 놓았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 로베르트 하베크가 제4회 독일-아프리카 경제 회의에 참가했고 독일-나이지리아 경제 개발 협력안을 성사시켰다. 외무장관 아날레나 베어보크는 약탈 문화재 베닌 브론즈(Benin bronze) 1130여 점의 소유권을 반납하고 직접 문화재를 들고 가서 과거 역사를 사과했다(관련기사: "잘못 시정하러 왔다" 놀라운 독일 행보, 그 속의 큰 그림 https://omn.kr/224g4).

아프리카에 비해 독일의 기반이 약한 남아메리카의 경우 숄츠 총리가 지난 1월 28-30일 직접 갔다. 첫 두 방문지인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의 목표는 전기차 배터리 생산의 필수 광물인 리튬 확보다. 이 두 국가는 볼리비아와 함께 남아메리카의 '리튬 삼각지대'로 불린다. 지금까지는 중국이 리튬을 수입해 가공한 후 독일을 비롯해 각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숄츠는 중국과의 경제 단절은 아니지만 중국 의존도를 줄일 필요성에 지하 자원 확보를 목표로 했다. 현재 칠레는 자국 회사와 미국 회사가, 아르헨티나는 호주와 중국 회사가, 볼리비아는 중국 회사가 리튬 개발권을 가지고 있다.

중국과의 차별점으로 숄츠는 자원 생산국이 가공해서 수출까지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제안했다. 독일의 기술 훈련 프로그램을 전수해 남아메리카에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동반 성장하자는 뜻이다. 또 환경 및 기후 변화에 대한 대책으로 채굴시 높은 환경 기준을 적용하고 독일 기업 지멘스(Siemens)와 포르쉐(Porsche) 등이 칠레의 그린 수소 전략에 필요한 기술도 함께 전수하겠다고 했다. 독일이 주도하는 기후 클럽에도 초대했다.    

숄츠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광물 조약을 체결했고 두 국가 모두 기후 클럽 참가 의사를 밝혔다.     

브라질의 룰라

이후 숄츠 총리는 브라질로 갔다. 대통령 취임 일주일 후인 1월 8일(현지 시각)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선에 불복해 의회와 정부 건물에 난입한 사건이 있었던 터라 독일 총리의 방문은 룰라에게 힘을 실어주는 의미가 있었다. 상징성을 넘어 숄츠는 아마존 열대 우림 보존 기금에 2억 유로(약 2800억 원)를 넣겠다고 약속했다. 룰라는 전임 보우소나루가 추진한 아마존 개발을 보존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마주 앉은 두 사람에게 실제 의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EU와 메르코수르(Mercosur)와의 자유무역 체결이다. 메르코수르는 남아메리카 내 자유 무역지대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가 있다. EU와 메르코수르의 자유무역은 2019년 추진되었으나 프랑스 농민들의 반대와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아마존 열대 우림 개발 문제로 중단된 바 있다. 룰라도 올 상반기 내로 완료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함으로써 이 문제는 수월히 합의되었다.

이견이 발생한 부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숄츠는 푸틴의 행위가 국제법 위반으로 "유럽 문제뿐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라며 지지를 요청했다. 하지만 룰라는 푸틴이 먼저 침공하는 "고전적 실수"를 범하기는 했지만 전쟁 이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고 했다. 룰라는 전쟁의 원인이 "NATO 때문인가? 영토 분쟁인가? 러시아의 유럽 진출 때문인가?"라고 되묻고 무기 원조 요청도 거절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브라질 대통령이 브라질 대통령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1.30 ⓒ 연합뉴스

 
일주일 후 룰라는 미국을 방문했다. 의회 및 정부 건물 난입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바이든은 룰라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그를 전격적으로 초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룰라의 전임 보우소나루가 미국 체류를 신청했을 때도 허가했다. 현재 플로리다에 체류중인 보우소나루는 체류 연장을 희망하고 있다.

룰라는 미국 정계의 진보 그룹 버니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를 만난 후 바이든을 만났다. 백악관 발표에 의하면 두 사람은 민주주의, 기후 변화, 경제 협력, 남반구의 대표성을 늘리는 UN 개혁, 러시아 전쟁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구체적인 성과가 발표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양측이 우선시하는 의제와 입장을 확인하는 선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독일과 미국 지도자를 만난 룰라는 3월 브라질의 최대 무역국인 중국을 방문한다. 2006년 결성된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가 미국 달러 패권 견제 목적으로 공동 화폐를 검토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양쪽의 구애 속에서 룰라는 2006년 BRICS 결성 당시와 2023년의 러시아와 중국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미국과 독일이 쌍방 발전을 말하나 언제나 중심부-주변부를 형성하는 자본주의의 속성도 알고 있다. 그가 양쪽에 휘둘리지 않고 기후 변화와 빈곤 문제 등 남반구의 현안을 해결하는 수를 과연 찾아낼까.

결론적으로 전쟁 발발 1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두 축으로 움직이고 있다. 대서양의 양쪽은 미래 산업에 있어서 국가 보조금 경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 견제, 국제 공급망의 다각화, 기후 정의를 위해 남반구와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적극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곳은 태평양쪽 동아시아다. 한국은 어디쯤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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