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3 11:20최종 업데이트 23.02.2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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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구름들이 하늘을 덮었다. 오마이뉴스와 함께 하는 수많은 시민기자들의 모습일까. ⓒ 최육상

 
"뉴스는 기자를 뛰게 하는 것이다. 더 좋은 뉴스는 기자의 가슴까지 뛰게 하는 것이다."

2000년 2월 22일 오후 2시 22분에 창간한 <오마이뉴스>가 정의한 '뉴스'다. <오마이뉴스>는 "창간 시점 택일에는 20세기 언론문화와의 철저한 결별, 시궁창과도 같았던 한국 언론구조에 대한 혁파 의지가 담겨 있다"라고 소개했다.


<오마이뉴스>가 창간호를 냈을 때 시민기자는 727명이었다. 23년이 흐른 현재 시민기자는 8만여 명으로 늘었다. <오마이뉴스>가 당시 밝힌 뉴스의 정의, 한국 언론구조에 대한 혁파 의지,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최대 특종, 진보 : 보수가 5 : 5가 되는 세상은 이뤄지고 있을까.

2004년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고 있는 입장에서 지난 세월을 돌아본다. 
 

한 걸음 한 걸음 징검다리 건너듯 23년을 걸어온 <오마이뉴스>. ⓒ 최육상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2021년 1월 15일 서울의 삶을 접고 부모님 고향인 전라북도 순창군에 터를 잡았다. 시골 농촌 생활을 시작한 지 3년째인 나는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의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순창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수마을 중 하나다. 지역신문에서 일하며 짧은 시간 동안 순창군 이곳저곳을 많이 다녔다. 여러 군민을 만났다.

곡괭이를 들고 콩밭을 매시는 100세 할아버지, 80대 후반에야 한글을 깨치고 90세에 시인이 된 할머니, 커다란 마을 공동우물을 청소하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일하시던 87세 할머니, 마을 주민 중에 막내라는 68세 이장님 등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몸소 보여주시는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눴다.

순창에서 만난 주민들의 삶은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모자람은 없어 보인다. 순창에서 나고 자라 대학생 때 잠시 순창을 벗어났을 뿐, 태어난 터에서 농사짓고 소 키우며 살고 있는 한 30대 청년 이장은 "농부를 선택한 삶에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면 어느 정도 적응하기 전까지는 자기 시간이 없어요. 하지만 자리를 잡으면 마음대로 시간 조정이 가능해요. 저도 직장생활을 계속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는데 지금이 훨씬 좋죠. 마음이 편하니까. 또 쉬고 싶을 땐 언제고 쉴 수 있고. 농촌도 충분히 살 만하거든요."

소박한 사람들의 행복한 삶
 

굽고 휘어진 열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농부로 살아온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았다 ⓒ 최육상

  
시골 농촌이 도시에서 동경하는 것처럼 더없이 정겹고 살갑고 고즈넉한 것은 아니다. 고달픈 땅에서 힘겨운 노동을 해야 한다. 온몸으로 삶을 지탱해야 한다. 어르신들 이마에 깊게 팬 주름살을 보면 견뎌온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전체 인구 2만7000명가량의 작은 시골 농촌인 순창군 주민들은 모두 하루를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가신다. 다만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몇몇 기득권들이 군 전체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부당함과 부조리함도 존재한다.

나는 매일 <오마이뉴스> 기사를 접하면서, 순창군 주민들의 이야기를 '복작 복작 순창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3년째 연재하고 있다. 나고 자란 평생동안 순창을 단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사람의 이야기도 전했고, 평생을 누굴 탓한 적 없이 오직 자신이 흘린 땀방울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도 다뤘다(연재 바로 가기 https://omn.kr/1s7wm ).

<오마이뉴스>에 순창 사람들의 소박한 이야기를 담는 이유가 있다. 비록 볼품 없고 보잘것없는 이야기일지언정 <오마이뉴스>를 통해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30대, 어느 날이었다. 최명희 작가의 장편 대하소설 <혼불>을 읽다가 주인공 경태의 말에 잠시 멍해졌던 기억이 있다. 소설 속에서 경태는 이런 말을 했다.

"오래오래 비루한 행복에 빌붙어 사느니, 피가 우는 대로 살아볼 생각이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피가 울만큼 세상을 정말 정의롭고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시간이 흘러, 서울을 벗어나 시골 농촌에 거주하면서 만난 주민들의 팔뚝에는 대개 굵은 혈관이 울퉁불퉁 솟아 있다. "피가 우는 대로"는 정의롭고 치열하게 사는 것도 되지만, 묵묵히 삶의 터전을 가꾸어 가는 일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구석구석 더 밝게... 시민기자와 함께
 

지난 2월 5일 순창군 동계면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행사에서 주민들이 댕기불을 들고 오른쪽 산마루 위 숲사이로 희미하게 내비친 달이 차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은 세상을 향해 매일같이 불화살을 쏘아 올리고 있다. ⓒ 최육상

   
"우리는 기자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기자는 별종이 아니라 새소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남에게 전하고 싶은 모든 시민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시민기자' 또는 '뉴스게릴라'라고 부릅니다. '뉴스게릴라들의 뉴스연대'가 바로 오마이뉴스입니다. 세상을 향해 불화살을 쏘아 올리는 전국의 뉴스게릴라들, 이들이 진정한 오마이뉴스의 주인공입니다."

나는 <오마이뉴스>가 정의한 시민기자로서 <오마이뉴스>와 계속 함께할 생각이다. 어둠을 밟고 가야 별이 빛난다. <오마이뉴스>가 꾸고 있는 꿈이 밤하늘 어둠을 잠재우는 숱한 별처럼 더욱 선명해졌으면 한다. 스물세 살 <오마이뉴스>가 불화살을 쏘아 올리는 시민기자와 함께 세상 구석구석을 더욱 밝게 비추길 기대한다.
 

스물세 살 <오마이뉴스>가 불화살을 쏘아 올리는 시민기자와 함께 세상 구석구석을 더욱 밝게 비추길 기대한다. 지난 2월 5일 순창군 정월대보름 행사에서 달집이 어둠을 불사르고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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