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청춘월담>의 한 장면.

tvN <청춘월담>의 한 장면. ⓒ tvN

 
지난 20일 방영된 tvN 사극 <청춘월담> 제5회는 가짜 내시인 주인공 민재이(전소니 분)가 생로병사라는 단어에 착안해 연쇄살인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다른 주인공인 세자 이환(박형식 분)을 도와 수사에 나선 그는 이미 발생한 3건을 들여다보면서 '생로병사'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됐다.
 
세 사건의 피살자 중에서 한 명은 연로한 사람이었다. 또 한 명은 병든 사람이었다. 또 다른 한 명은 이미 죽임을 당한 상태에서 사후에 다시 찔렸다. 이를 근거로 노(老)·병(病)·사(死) 세 글자를 떠올린 민재이는 '네 번째 살인은 신생아를 상대로 벌어지리라'는 가설에 도달하게 됐다. 그래서 아이가 곧 태어날 집들을 상대로 수색에 나서 범인을 잡고 네 번째 살인을 막았다.
 
잡고 보니 범인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나라의 무속 행사를 주관하는 국무당이 범인이었다. 그의 범행동기는 신의 계시였다. 몽롱한 상태에서 신의 계시를 받아 생로병사 살해를 이루려 했던 것이다.
 
통치행위로 포장된 살인들

이렇게 사극에서는 연쇄살인이 자주 묘사되지만, 오늘날의 범죄학계는 이를 비교적 최근에 두드러진 현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지나친 경쟁체제로 인한 인간소외 등을 비롯한 현대 산업사회의 모순에서 원인을 찾는 시각이 많다.
 
과거보다 현대에 연쇄살인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상은 과거에도 이런 일이 적지 않았다. 특권층의 살인을 살인으로 규정하지 않거나 이를 덮어주는 일이 많은 탓에, 연쇄살인의 발생 빈도가 적어 보였을 뿐이다.
 
일부 군주들은 궁녀나 환관은 물론이고 일반 백성이나 신하를 임의로 죽이는 일이 많았다. 상대방에게 원한이 사무쳐 죽이는 게 아니라, 대수롭지 않은 일로도 인명을 살상하는 일이 잦았다.
 
그렇지만, 일부 폭군의 경우를 제외하면 그런 일의 대부분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치부됐다. 왕조시대에는 사회적 가치관을 만들어내고 무언가를 범죄로 규정하는 권한이 왕에게 있었다. 그래서 왕들이 벌인 살인은 합법적 처형이나 군주의 통치행위로 포장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tvN <청춘월담>의 한 장면.

tvN <청춘월담>의 한 장면. ⓒ tvN

 
명태조 주원장(1328~1398)도 수많은 인명살상을 저질렀다. 명나라 건국 이전부터 자신을 도운 승상 호유용도 거기에 포함됐다. 이 시기 역사를 기록한 <명사> 태조본기는 "13년 봄 정월 무술일에 좌승상 호유용이 모반했으며, 그 일파인 어사대부 진녕, 중승 도절 등이 형을 받아 처형됐다"라고 서술했다.
 
음력으로 홍무 13년 1월 6일(양력 1380년 2월 12일) 발생한 호유용 사건으로 인한 대규모 인명살상은 겉으로는 합법적인 처형으로 포장됐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보기 힘든 측면이 많았다. 무엇보다 증거가 확실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호유용 일파는 물론이고 친족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주원장은 10년 뒤인 1390년에는 승상 이선장의 동생이 호유용 사건에 가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며, 이선장에게 자결을 명하고 그 일족을 죽였다. 이런 일들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람을 죽이고 싶은 주원장의 충동과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그의 권력은 황제의 통치행위라는 명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포장됐다. 하지만, 그가 웬만한 연쇄살인마들보다 훨씬 많은 살상을 범한 사실은 감출 수 없다.
 
살인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던 궁녀와 환관

군주뿐 아니라 왕족들도 임의로 살상을 저지를 때가 많았다. 이들이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인명을 해친 경우에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때가 많았다. 이들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궁녀나 환관들은 이런 살인의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었다.
 
이런 살상을 큰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왕족들이 많았다는 점은 개혁파로 분류되는 왕족들의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묘사된 사도세자의 모습도 여기에 해당한다.
 
<한중록>은 사도세자가 울화가 치밀거나 분노에 휩싸일 때 궁녀나 내시를 해치는 일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내관 김한채를 비롯한 궁궐 직원들이 그런 식으로 살상을 당했다고 알려준다.
 
남편과 정치적으로 대립한 혜경궁 홍씨의 기록이므로, 이 회고록에서 사도세자의 비행이 과장됐을 수는 있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살상이 전혀 없었다면, 내관의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그 일을 서술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개혁적인 인물에게도 얼마든지 내재될 수 있는 살인 충동이 세자라는 지위로 인해 거침없이 발현되고 그 지위로 인해 대수롭지 않은 일로 마무리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궁녀나 환관뿐 아니라 노비들도 주인들의 살해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노비주들은 노동력을 지키기 위해 노비들의 신변에 신경을 쓰면서도 때에 따라서는 이들을 함부로 살상하기도 했다.
 
 tvN <청춘월담>의 한 장면.

tvN <청춘월담>의 한 장면. ⓒ tvN

 
자신이나 자신의 가문에 예속된 노비를 죽이는 행위가 개인의 인격 판단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점은 전 의령현감 서유영의 <금계필담>에 나오는 이서구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정조시대의 저명한 시인이자 관료였던 이서구는 자기 집 노비가 술김에 자기 이름을 부르자 그 자리에서 노비를 죽였다.
 
사건을 접수한 형조(법무부)가 수사에 착수했지만, 이서구가 자택을 방문한 형조 서리에게 "만약 신고하면 수치스럽게 될까봐 신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을 근거로 이 사건은 종결됐다. 형조가 수사에 착수한 것은 '사람'을 죽인 일 때문이 아니라 신고도 없이 '노비'를 죽인 일 때문이었다. 이 시대의 형조 관원들이 볼 때는 이서구의 진술이 혐의를 벗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경국대전> 형전과 더불어 형법전 기능을 했던 <대명률직해>는 "노비가 주인을 욕하거나 꾸짖으면 교수형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이런 경우, 주인이 사전에 신고하고 노비를 살해하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조의 측근인 형조판서 채제공이 이서구 집에 서리를 보낸 것은 이서구가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계필담> 저자 서유영은 이서구의 행동을 '번거로움을 피하는 훌륭한 인품'으로 평가했다. 노비의 생명을 이 정도로 천시했기 때문에, 노비주나 그의 친척 혹은 지인이 노비 여럿을 연쇄적으로 죽인다 해도 법적 처벌을 피할 가능성이 많았다. 그러나 역사서들은 이를 연쇄살인으로 평하지 않는다. 이제까지의 역사서들이 소수 특권층의 관점으로 기록돼온 결과다.
 
천관녀로 불린 신분이 낮은 여성과 사귀던 소년 김유신은 어머니의 충고를 듣고 천관녀와의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그의 말은 술 취한 주인을 천관녀 집 앞에 세워줬고, 눈물을 흘리며 나오는 천관녀 앞에서 김유신은 칼로 말의 목을 내리쳤다.
 
생명을 경시하는 이런 행동은 역사서에서 범죄로 취급되지 않았다. 이런 점은 김유신이란 인물을 평가하는 요소로 활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분명한 범죄다. 당시에도 그런 인식이 있었다면, 김유신은 역사무대에서 활약할 기회를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주인이 노비를 죽이거나 왕족이 궁녀·환관을 죽이는 행위도 과거에는 대수롭지 않게 취급됐다. 동물들뿐만 아니라 남에게 예속된 사람들도 제대로 존중되지 않고 하찮게 취급된 결과다.
 
그런 풍토 속에서 수많은 연쇄살인들이 발생했다. 왕족과 노비주의 관점을 걷어내고, 소수 지배층의 관점에서 '월담'해 역사를 다시 보게 되면, 우리가 아는 위대한 인물들의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청춘월담 연쇄살인 역사 해석 주원장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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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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