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정식 연재가 끝난 후에도 끊임없이 외전과 후속 편이 만들어지고 있는 전설의 만화 <드래곤볼>에서는 '천재 과학자' 부르마가 폐허가 된 미래세상에서 '타임머신'을 개발한다. 부르마의 아들 트랭크스는 엄마가 만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와 손오공과 Z전사들에게 인조인간으로 인해 불행해지는 미래에 대해 알렸다. 하지만 <드래곤볼>의 타임머신은 앞으로 다가올 불행의 원인을 제거한다 해도 미래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설정이 있다.

지난 2005년 D포털사이트에서 연재됐던 강풀 작가의 웹툰 <타이밍>에서는 다양한 시간 능력자들 중에서 '타임 리와인더' 강민혁 캐릭터가 독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강민혁은 시간을 10초 앞당기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 타임머신'이다. 하지만 강민혁이 앞당길 수 있는 시간은 단 10초에 불과해 혼자만의 힘으로 특정사건을 바꾸기엔 한계가 분명해 반드시 다른 시간 능력자들과의 협업이 필요했다.

사실 시간을 이용하고 조절하는 능력은 인간의 오랜 소망 중 하나지만 정작 타임머신 같은 기계가 개발되고 상용화된다면 세상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시간여행자인 주인공이 물질을 쫓지 않고 일상의 행복을 찾기 위해 시간능력을 이용한다. 지난 2013년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인 영국의 워킹 타이틀에서 제작·개봉한 레이첼 맥아담스와 도널 글리슨 주연의 판타지 로맨스 영화 <어바웃 타임>이다.
 
 <어바웃 타임>은 한국에서만 340만 관객을 동원하며 유난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어바웃 타임>은 한국에서만 340만 관객을 동원하며 유난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유니버설 픽쳐스

 
주로 역동적인 영화에 어울리는 시간여행

2023년 현재도 시간여행은 아직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상상의 범위에 한계가 없는 창작물에서는 시간여행에 관련된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사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한국에서도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와 <시그널> <철인왕후> <천년지애> <터널> 등 많은 드라마에서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바 있다. 물론 영화에서는 시간여행의 개념이 더욱 자주 등장한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3부작으로 제작된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영화다. <인디아나 존스>와 < E.T. >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하고 훗날 <포레스트 검프>와 <캐스트 어웨이>를 만드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연출한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는 과거와 미래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마티(로버트 J. 폭스 분)의 모험을 통해 시간여행의 개념을 관객들에게 잘 전달한 작품으로 꼽힌다.

지금은 무시무시한 킬러 존 윅이 된 키아누 리브스의 풋풋하던 시절을 볼 수 있는 1989년작 <엑설런트 어드벤처>는 장난이 심한 두 고등학생이 낙제를 면하기 위해 시간여행을 하는 판타지 학원 코믹물이다. 이들은 시간여행을 통해 나폴레옹과 소크라테스, 칭기즈칸, 잔 다르크, 에이브라함 링컨, 베토벤 같은 역사 속 인물들을 납치해 숙제의 발표에 활용한다. 개봉한 지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SF영화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 시리즈 역시 시간여행이 핵심소재로 등장한다. 미래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스카이넷이 존 코너와 그의 어머니 사라 코너를 죽이기 위해 과거로 기계인간을 보내고 인간 반란군 측에서도 그들을 보호할 전사(또는 기계)를 과거로 보낸다. 다만 <터미네이터>에서는 한 번 과거로 보내진 기계(또는 사람)는 다시 미래로 돌아올 수 없다는 설정이 있다.

영화 역사상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흥행수익(27억 9900만 달러)을 올린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도 영화 중반 시간여행이 등장한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어벤저스 멤버들은 또 다른 과거에 있는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기 위해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여기서 캡틴 아메리카는 과거의 자신과 싸우고 토니 스타크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만나지만 블랙 위도우는 소울 스톤을 얻기 위해 스스로 절벽에서 떨어져 자신을 희생한다.

한국관객들이 유난히 좋아했던 작품
 
 팀(왼쪽)은 시간여행을 통해 메리의 취향을 알아내 그녀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팀(왼쪽)은 시간여행을 통해 메리의 취향을 알아내 그녀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 유니버설 픽쳐스

 
코미디 장르인 <백 투 더 퓨처>나 <엑설런트 어드벤처>를 포함해 시간여행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영화의 내용이나 분위기가 상당히 역동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바웃 타임>은 시간여행이 매우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고 있음에도 남녀 주인공이 만나 가까워지고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전형적인 '워킹 타이틀식'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 

1200만 달러의 많지 않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어바웃 타임>은 폭발적이진 않았지만 세계 각지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8700만 달러라는 제작비의 7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어바웃 타임>은 한국에서도 2013년 연말에 개봉해 339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이를 달러로 환산하면 2300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으로 이는 영국에서의 흥행기록(1200만 달러)을 2배 가까이 능가하는 성적이다. 

당초 여주인공 메리 역은 < 500일의 썸머 >로 유명한 가수 겸 배우 조이 데이셔넬이 맡을 예정이었지만 일정 문제로 인해 레이첼 맥아담스로 교체됐다. 사실 배우 교체는 작품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맥아담스는 이미 <노트북>과 <시간 여행자의 아내> <미드나잇 인 파리> 같은 멜로영화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다. 맥아담스는 <어바웃 타임>에서도 사랑스러운 메리를 잘 표현하며 시대를 대표하는 '로코퀸'으로 자리를 굳혔다.

아일랜드 출신 배우 도널 글리슨은 <어바웃 타임>에 출연하기 전까진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의 빌 위즐리를 연기했던 배우로 많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글리슨은 <어바웃 타임>에서 남자 주인공 팀 레이크 역을 맡으며 모태솔로에서 책임감 넘치는 가장으로 성장하는 연기를 통해 인지도를 대폭 끌어올렸다. 그 후 <스타워즈> 시퀄 3부작에서 아미타지 헉스 장군 역을 맡아 <어바웃 타임>과는 전혀 다른 카리스마를 뽐냈다.

<어바웃 타임>은 세계적으로도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한국 관객들에게 유독 큰 사랑을 받았다. 그 이유는 <어바웃 타임>이 악역이 거의 나오지 않는 '착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팀의 여동생 킷캣(리디아 윌슨 분)에게 상처를 준 지미(톰 휴즈 분) 정도를 제외하면 <어바웃 타임>의 등장인물들은 악의를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 단적인 예로 시간여행 능력을 가진 팀은 한 번도 세속적인 욕심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멋진 아버지
 
 <러브 액츄얼리>와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잘 알려진 빌 나이는 <어바웃 타임>에서 팀의 아버지를 연기했다.

<러브 액츄얼리>와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잘 알려진 빌 나이는 <어바웃 타임>에서 팀의 아버지를 연기했다. ⓒ 유니버설 픽쳐스

 
빌 나이는 1980년대부터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한 베테랑 배우지만 국내에서는 <나홀로 집에>를 위협하는 새로운 크리스마스 영화의 강자 <러브 액츄얼리>의 한 물 간 가수 빌리 맥 역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나이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악역 데비 존스를 연기했고 <새벽의 황당한 저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해리포터> <작전명 발키리> 등에 출연하며 장년의 나이에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았다.

<어바웃 타임>에서 나이는 주인공 팀의 아버지 제임스 레이크 역을 맡았다. 50세에 은퇴한 전직 대학교수 제임스는 팀에게 시간여행 능력을 알려주고 팀의 시간능력으로 인한 고충을 알아주는 다정한 아버지다. 특히 팀의 친구들이 망친 결혼식 축사를 대신 맡아 "제 인생을 돌아봤을 때 특별히 자랑스러운 점은 없지만 제 아들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말로 아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전하기도 했다.

현재 영국 출신 배우 중 가장 잘 나가는 배우는 마블의 <스파이더맨> 3부작을 끝내고 4편 출연을 확정 지은 톰 홀랜드다. 하지만 영국에는 1996년생 홀랜드보다 29살이 많은 중견배우 톰 홀랜'더'도 있다. 톰 홀랜더는 <어바웃 타임>에서 팀의 첫 룸메이트가 되는 괴팍한 성격의 극작가 해리를 연기했다. 해리는 배우들의 실수로 공연을 망칠 위기에 처했지만 팀의 도움으로 공연이 성공하면서 유명한 작가가 됐다.

<어바웃 타임>에는 레이첼 맥아담스 외에도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유명스타가 또 나온다. 바로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할리 퀸을 통해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도약한 마고 로비다. 마고 로비는 <어바웃 타임>에서 방학 동안 팀의 집에서 지냈던 팀의 첫사랑 샬럿을 연기했다. 처음 팀의 고백을 거절했던 샬럿은 다시 만난 팀에게 호감을 보이지만 이번에는 팀이 샬럿의 유혹을 뿌리치고 메리를 찾아가 청혼을 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어바웃 타임 리차드 커티스 감독 레이첼 맥아담스 도널 글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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