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한 콘돔을 가방에 투척'
가해자에 적용된 의외의 죄명

[주거침입 잔혹사⑥] 재물손괴죄?
김영은 남대문경찰서 경위가 관련 연구 시작한 이유

가장 안온해야 할 곳, '집'. 그러나 여자의 집은 자주 예외가 된다. 여성이 사는 집 담을, 문을, 창문을 넘어 침입했다는 뉴스는 끊임없이 새로고침 된다. 오마이뉴스는 그 실체를 들여다보기 위해 2021~2022년 '주거침입' 사건 판결문 200건을 분석했다. 거기엔 '성적목적'을 위해 타인의 주거에 침입한 가해자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8편의 주거침입 잔혹사를 공개한다.[편집자말]
ⓒ unsplash

경찰서에 신고가 들어왔다. '집에 와서 가방을 열어보니 누군가 사용한 콘돔이 들어있었다'고 했다. 수사에 착수했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피해자 뒤에 선 가해자가 여성의 핸드백에 콘돔을 투척한 사건이었다. 파출소에서 최초 발생보고한 혐의는, '공공장소 강제추행죄'였다. 그러나 신체 접촉은 없었다는 이유로 재물손괴죄로 검찰에 송치됐다. 2021년의 일이다.

피해자와 직접 만난 김영은 남대문경찰서 형사과 경위는 "이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여성청소년과에서 근무하며 피해자 보호 업무로 사건을 접했다는 김 경위는 피해자로부터 "추행당한 듯한 성적 수치심을 느꼈고 머리가 하얘질 정도로 두려워 손이 덜덜 떨렸다"는 진술을 들었다고 한다. 사건을 지켜보며 김 경위는 "이 사건의 혐의가 '가방 손괴'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근본적 물음을 던지게 됐다고 했다.

가해자는 고의로 자신이 사용한 콘돔을 여성의 가방에 넣었다. 범행에 명백한 성적목적이 드러난다. 피해자 역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재물손괴로만 다뤄지게 된 것은 형법의 한계때문이라는 게 그의 잠정 결론이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김 경위는 <형법은 누구의 법감정을 반영하는가> 연구를 시작했다.

"피해자에게는 성범죄와 유사한 성적 불쾌감이나 두려움이 있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형법에서 성범죄로 분류되는 범죄는 강제추행과 강간 정도이다. 형법이 여성의 경험과 두려움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은 실존하는 여성의 고통과 피해를 보이지 않게 만들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사회는 여성에게 '고통스러우나 왜 고통스러운지 설명조차 할 수 없는 곳'이 돼버린다."
- 2021년 7월 경찰젠더연구회 학술세미나 발표 논문 중 <형법은 누구의 법감정을 반영하는가>의 머리말

김 경위는 보이지 않는 여성의 고통과 피해를 데이터화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주거침입, 절도 등 일반범죄로 다뤄지는 사안에 대한 시민들의 법감정도 파악했다. 그리고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제언을 담았다. 제언에는 "성적목적 주거침입죄 신설"도 포함됐다. 우리는 김 경위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구체적 범죄 상황에 대한 남녀 인식, 확연히 달랐다
▲ 김영은 남대문경찰서 형사과 경위. 김 경위는 <형법은 누구의 법감정을 반영하는가> 연구를 진행했다. ⓒ 이주연

김 경위의 연구는 구체적 범죄 상황에 대한 남녀 인식차를 조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20~30대 여성 112명, 남성 106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귀가 중 모르는 남자가 집 앞까지 따라왔고 내가 집에 들어가자 안으로 들어오려 했음 (주거침입)

이 상황을 예시로 주고, '침해 법익'을 물었다. 여성 응답자의 68.5%가 강간, 강제추행과 같은 성폭력 피해를 입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반면 남성 응답자의 경우 69.8%가 생명·신체에 대한 피해를 입을 것 같다고 답했다. 김 경위는 "여성은 본래 그 법이 정한 보호 법익인 주거의 평온이 침해됐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고 느꼈으며, 범인의 의도로 성범죄적 의도일 것이라 추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장 중 세탁하려 가방에 넣어둔 속옷이 사라짐 (절도)

이번엔 절도 사건의 '침해 법익'을 물었다. 여성 응답자의 경우 '성적불쾌감 등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라고 답한 비율(68.5%)이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이 '속옷을 입지 못하는 재산권 침해(14.8%)'였다. 남성 응답자의 경우 '재산권 침해'라고 답한 비율(35.8%)이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이 사생활 침해(22.6%)였다. 속옷 절도 사건의 범행 의도를 물었을 때도 남성 응답자의 35.8%가 '성범죄적 의도'라 답했고, 그 다음 30.2%가 '재산상의 이익'이라 답했다. 반면, 여성 응답자 중 절도범에게 '성범죄적 의도'가 있다고 밝힌 응답률은 79.6%였다. '재산상 이익'이라 답한 비율은 3.7%에 그쳤다.

왜 이 같은 차이가 발생했을까. 해당 주제로 심층 인터뷰도 진행한 김 경위는 "남성은 '내가 겪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이 드러났고 여성은 '내가 피해자임'을 가정하고 답했다"라며 "범죄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범죄에 대한 민감도 역시 높은 거 같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여성들은 해당 범죄가 더 큰 범죄의 예비 단계로 인식해 가해자를 자극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반면 남성은 '내가 제압할 수 있다, 잡아서 처벌받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라고 덧붙였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남녀의 피해 감정 자체가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김 경위는 "여성이라면 누군가 내 집에 따라 들어오려 한다면 성폭행을 걱정할 것이며, 속옷을 도둑맞았다면 성적목적으로 내 속옷을 훔쳤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우리 형법은 그것을 성범죄로 보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김 경위의 연구는, 개별 사건에 대해 여성이 느끼는 공포와 고통 그리고 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형법 사이의 간극을 짚어낸 것이다.

김 경위는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형법상 구성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감정과 경험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사건 처리와 판결을 하고 있습니다. 가해자는 성범죄자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고 성적 불쾌감과 두려움의 오롯이 피해자의 몫으로 남겨지죠."
"주거침입, 강력 범죄의 시작 단계... 경각심 가져야"

<오마이뉴스>가 분석한 2021년~2022년 주거침입 판결문 200건 가운데 134건이 '성적목적 주거침입' 사건(성적목적이 드러났지만 주거침입으로 다뤄진 70건, 성적목적이 직접적으로 발현돼 성폭력 범죄로 다뤄진 64건)이었음을 전하자, 김 경위는 반문했다.

"사실상 전체 아닐까요?"

나머지 판결문에도 드러나진 않지만 범죄에 성적목적이 내포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말 재산상의 문제로 민사소송 중인 사안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주거침입만을 고의로 하는 범죄는 없다고 봐요. 살인·강간을 목적으로 하는 침입 범죄가 대다수이고, 이는 강력 범죄의 시작 단계죠. 주거침입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재판부도 답답할 수 있어요. 현재 형법상, 성적목적 주거침입이 발생해도 주거침입 혐의만 적용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기에, 김 경위는 성적목적 주거침입죄 신설을 "여성이 남성에 비해 느끼는 초과 두려움만큼 여성을 방치해" 온 형법 공백을 메울 대안 중 하나로 얘기하고 있다.

"성범죄처벌 특별법에는 성적목적을 위한 다중이용장소 침입죄도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기술적으로 성적목적 주거침입죄의 신설이 불가능할 것도 아니죠. 지금까지 관심이 없었을 뿐입니다."

그러면서 예로 든 것이 '인분 투척'을 공무집행방해죄상의 폭행으로 본 판례다.

"1981년 3월, 대법원은 파출소 바닥에 인분을 던진 것을 공무집행방해죄상의 폭행으로 판단했습니다. 사람의 신체에 직접 닿지 않는 간접적 유형력 행사도 폭행으로 본 것이죠. 그러나 강제추행 등 성범죄에 대해서만큼은 '신체에 대한 직접적 유형력이 있을 것'을 요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성범죄 판단에서만 여전히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는 겁니다.
여성을 뒤따라가 현관문을 열고 창문으로 손을 넣거나, 나체상태로 문을 두드리는 등의 행위도 단순 주거침입죄가 아닌 성범죄의 예비나 미수 단계까지 고려하여 처벌하는 등의 법원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피해자의 법감정을 최대한 형량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입법부와 사법부에 성인지적 관점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여기에 김 경위는 "성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범죄의 피해자에게는 성범죄 피해자와 동일한 수사절차상 지원을 제공해야 함"을 강조했다. 아직 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현장에서 사건을 다루는 경찰의 대응력 또한 중요한 지점이라는 설명이다.

"성범죄 피해자의 경우 보복범죄나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가명 조서, 신뢰관계인 동석 등 절차를 활용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일반범죄의 경우 일반 수사형사부서에 사건이 접수되고 일반 수사형사사건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피해자 보호절차에 대한 고지가 잘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반범죄 피해자도 범죄 피해자 안전조치(대상자의 주거지 순찰 강화, 임시 숙소 제공, 신변 경호, 전문 보호시설 연계, 위치 추적장치 대여 등)를 신청할 수 있고요, 이 지점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안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김 경위는 강조했다.

"법은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대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여성이 남성에 비해 느끼는 초과 두려움만큼 여성을 방치해 왔죠. 이제까지의 형법은 여성이 침해당한 법익을 보호하지 못했고 위로하지 못했습니다.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이 중립적인 법은 결국 몰성적(gender-blind)인 방식이 되어 불평등을 지속시킬 뿐입니다.
실제, 신림동 강간미수사건이라 불렸던 사건은 주거침입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피해자를 쫓아가다가 간발의 차로 피해자의 집에 들어가지 못해 현관 비밀번호키를 누르고 손잡이를 당기는 등의 행위가 담긴 CCTV가 공개되자, 이 행위는 강간 의도가 있는 행위라는 여론이 다수였죠. 그래서 '강간미수 사건'이라 명명됐음에도 법원은 피해자의 법감정과는 동떨어진 결정을 내렸습니다. 결국 형법이 여성의 시각과 경험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일종의 방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 간극을 메우는 작업이 시작돼야 합니다."
▲ JTBC <'신림동 원룸 사건' 강간미수는 무죄…주거침입만 인정> 보도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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