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MBC

 
"정말로 너무 힘들 것 같으면 차라리 졸혼이나 이혼도 고려해보라."

상담을 받으러 찾아온 부부에게 전문가 오은영이 전한 현실적인 진단이었다. 그 정도로 부부의 상황은 심각했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다른 극과 극 성향의 부부는 언제 갈라서도 이상하지 않을 벼랑 끝에 놓여있었다.
 
3월 6일 방송된 MBC 부부상담 예능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에는 '열혈 엄마 VS 무덤덤 아빠, 열무부부' 편이 방송됐다. 부산에서 온 결혼 30년 차 김진영-손희영 부부는 12살 차 띠동갑 커플이었다. 회사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사내커플로 출발한 두 사람은 아내의 적극적인 호감 표현과 대시로 연애를 시작했다고.
 
그런데 부부는 성향이 정반대였다. 아내는 당시 21살의 어린 나이에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편의 집을 찾아와 동거부터 시작할 만큼 주도적이고 강단있는 성격이었다. 아내는 남편의 자상한 모습에 반했고 처음부터 낯설지 않은 운명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반면 남편은 아내와의 연애 시작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고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아내가 상의도 없이 집을 찾아와 동거를 시작했을 때도 '조금 있으면 가겠지?'라고도 생각했다며 온도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아내의 결심은 단호했다. 아내는 친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곁을 지켰고 첫째 임신 이후 혼인신고를 했다. 현재는 아들 둘과 함께 가정을 꾸렸다. <결혼지옥> 출연신청을 제안한 것 역시 아내의 주도였다고.
 
장애가 있는 두 아들, 양육 외면하는 남편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MBC

 
부부에게는 '아픈 손가락들'이 있었다. 부부의 두 아들은 안타깝게도 모두 지적장애를 안고 있었다. 아내는 정해진 루틴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아들들이 스스로 생활할수 있는 능력을 갖출 때까지 평생을 헌신해왔다. 아내는 가족의 미래를 대비하여 재테크를 위한 부동산 공부를 하는가하면, 보통 아이들처럼 학업을 따라잡기 힘든 아들을 위해서 본인이 먼저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한 뒤 아들을 직접 가르쳤을 만큼 매사에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어릴 때부터 아들의 양육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은 자기 취미활동-대외활동을 중시한다. 남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아들이 장애가 있다는 말을 잘 안 한다. 아들의 어린 시절 운동회도 한번도 가지 않았다"며 서운함을 토로하며 "남편은 장애가 있는 자식이 창피하여 함께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장애가 있는 자식들을 챙기고 세상의 편견을 감내하는 것은 오롯이 아내의 몫으로만 떠넘겨졌다.
 
사실 남편 역시 아들들의 연이은 장애 판정을 듣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남편은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히며 "이중생활을 했다. 회사에서는 시시덕거리고, 밤에는 술로 세월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아내는 부모의 역할을 함께 해주지 못한 남편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이 깊은 한이 되어 있었다. 미술심리치료를 받으러 온 아내는, 남편에 대한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는 시간에, 종이를 붉은 색으로 거칠게 가득 채웠다. 감정이 격해진 아내는 남편에게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터뜨리며 오열했다.
 
아내는 "제가 바라는 건 남편에게 '애 많이 썼다. 고맙다. 당신이 애써서 여기까지 왔다'는 따뜻한 말이 듣고 싶은 거다"라고 고백하며 남편에게도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것은 '그런 말이 안 나온다'는 무뚝뚝한 대답 뿐이었다고. 아내는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서 안 되는 게 어디 있냐"며 노력하지 않는 남편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MBC

 
오은영은 아내의 입장에 깊이 공감하며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공통적인 소원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것이라고 하신다. 아내도 그런 심정으로 이날까지 버텨왔을 것"이라며 위로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남편도 눈물을 흘렸다.
 
장애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남편의 외면이 너무 힘들었다는 아내에게 오은영은 "다른 사람이 알아주는 건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자녀는 함께 키우는 거니까. 배우자끼리는 이런 어려움이 있을 때 협심이 중요하다"고 당부하며 "장애 자녀를 키우면서 부부가 모두 갈등을 겪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더 돈독해지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아내는 남편과의 대화에서 그동안 서운했던 일을 토로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공인중개사 공부를 위하여 자녀 케어를 돕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을 언급했고, 남편은 인공관절 수술로 다리가 아파서 그랬다며 변명했다.
 
그러자 아내는 미리 준비한 기록을 남편에게 제시하며 공인중개사 공부가 인공관절 수술을 받기 이전의 일이었고, 남편이 다리가 아플 때도 대외활동은 활발하게 했었음을 지적하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부부는 육아관에 있어서도 차이가 컸는데, 아내는 아이들의 학교 문제와 세심한 보살핌에 관심이 없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냈고, 남편은 아내가 아직도 아들들을 지나치게 과잉보호한다며 반박했다. 이에 오은영은 "아내는 30년 가까이 병원에 다니고 교육을 받았다. 그 세월을 남편도 함께했더라면 부부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부부의 입장차가 커진 근본적인 원인을 거론하며 안타까워했다.
 
두루뭉술 핑계대며 위기 피하려는 남편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MBC

 
아내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또다른 마음의 상처가 있었다. 아내는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남편을 만나러 약속장소에 나갔으나, 회사에 동거 사실을 숨기고 있던 남편은 당시 동료직원들을 의식하여 아내를 모른척 외면했다. 남편은 이후로도 사실을 부정하고 모르쇠로 회피하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뒤늦게 사과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미 아내에게 돌이키기 힘든 큰 상처로 남은 뒤였다.
 
정작 남편은 아내가 서운함을 토로할 때마다 구체적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두루뭉술 핑계를 대며 위기를 모면하려다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분노한 아내는 사실확인을 위하여 그때마다 미리 준비한 병원 결제 내역이나 메모 등 각종 기록을 제시해야 했고, 남편은 그제야 마지못해 인정하곤 했다. 아내가 남편과 대화할 때마다 항상 '증거'를 챙기는 습관이 생긴 이유였다. 끝내 폭발한 아내는 "나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이랑은 못 산다. 손절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아이들의 눈을 피하여 안방 베란다 구석으로 들어가더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아내는 정신적-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아이들의 생활 루틴을 깨지 않기 위하여 힘겹게 몸을 추슬러 아이들의 저녁을 차려주고 방으로 돌아가 다시 누웠다. 눈치를 보던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하여 안방으로 들어와 말을 걸었지만, 탈진한 아내는 대화를 거부하며 흐느꼈다.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MBC

 
이튿날 남편은 아내의 생일을 맞이하여 직접 준비해온 케이크를 선물하며 자녀들과 함께 축하했다. 하지만 아내의 마음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아내는 "여기까지 오는 데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고 본다. 이제는 후회없는 이혼을 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지켜보던 오은영은 "남편의 성향은 수동적인 분"이라고 진단했다. "위기에 처하거나 갈등-문제가 생기면 수동적이고 회피하는 방어기제가 점점 강해진다"고 분석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부모가 함께 키워야하는 것"이라고 남편의 잘못을 지적했다. 다만 오은영은 "이는 남편의 성향이지, 아내를 기만하거나 믿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보충 설명했다.
 
또한 오은영은 남편의 또다른 문제로 '자기중심적'인 면을 꼽았다. 오은영은 남편이 아내가 원하는 것을 묻고 존중하기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함께해주기를 요구한다고 꼬집었다. 남편은 오은영의 지적을 묵묵히 수긍하며 '잘 새기겠다'고 답했지만 아내는 여전히 미덥지 못하다는 반응이었다.
 
이에 오은영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길었던 만큼,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는 말은 쉽게 못 하겠다. 그런데 수동적이고 회피적인 분이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도 변화하기 위한 큰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을 거다. 그래서 조금 지켜보자고 이야기하고싶다"며 조심스럽게 희망을 드러냈다. 한편으로는 "앞으로도 만일 회전문처럼 남편이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혹은 아내가 너무 죽도록 힘들다고 생각된다면, 졸혼이나 이혼도 고려해보셔야 할 것"이라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오은영은 남편을 위한 솔루션으로 "가족들 앞에서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자신의 수동적인 성향을 고백하고 그동안 가정과 육아에 소홀했던 책임을 인정할 것. 그리고 앞으로는 아내를 사랑한다는 진심과 그 마음을 보듬겠다는 진실된 약속을 하라는 조언이었다. 오은영은 "가까운 사이라도 말하지 않으면 진심을 모른다. 진심을 전하고 본의아니게 상처를 준 부분을 인정하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오은영은 남편에게 이제라도 자폐성 장애의 특성에 대하여 공부하고 노력해볼 것을 조언했다. 아내 혼자 힘겹게 달려온 지난 30년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 오은영은 마지막으로 부부간의 진솔한 소통을 위하여 서로의 속마음을 글로써 전하는 'T.S.L 부부 교환일기'를 제안했다.
 
남편은 모든 솔루션을 마치며 "앞으로는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하겠다. 반성 많이 했다"고 아내에게 약속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내 역시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고 "남편이 그렇게까지 진심으로 이야기해주니까. 조금 더 옆에서 지지하며 기다려주겠다"고 화답했다. 남편은 고마워하면서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후일담으로 부부는 녹화 이후 지역상담센터에서 상담을 시작했고, 꾸준히 교환일기를 주고받은 사실이 공개되며 가족의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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