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웨일 포스터

▲ 더 웨일 포스터 ⓒ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겨우 두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되리라 확신할 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모두 오른 뒤까지도 극장을 나서지 못했다. 파도처럼 몰려오는 여운을 그대로 감당해야 했다. 불이 켜지고 몸을 일으키며 돌아보니 나와 같이 극장을 나서지 않은 이가 평소보다도 훨씬 더 많았다.

나는 이 영화가 마지막까지 남은 이들 여럿을 아주 조금쯤은 옮겨놨단 걸 알았다. 삶 가운데서 끝없이 고집스러워지기만 하는 인간이란 존재를 번쩍 들어 옮겨내는 것, 영화의, 그리고 예술의 임무가 바로 이와 같다.
 
<더 웨일>엔 제목 그대로 고래 같은 인간이 나온다. 시작부터 충격적으로 등장하는 그의 몸집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더해지기만 할뿐 덜해지진 않는다.

육지로 올라온 고래처럼 육중한 몸집은 방해만 될 뿐이다. 허리를 굽혀 떨어진 물건 하나 주워드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찰리(브렌든 프레이저 분)는 272kg의 초고도 비만 남성이다. 당장 혈관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초고혈압 증세에도 돈이 없다며 병원 찾기를 거부하는 중증 환자기도 하다.
 
더 웨일 스틸컷

▲ 더 웨일 스틸컷 ⓒ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남은 시간이 없는 사내, 무엇을 하려는가
 
찰리에겐 남은 시간이 없다. 간병인도, 심지어는 그 스스로조차 마지막을 직감한다. 이야기는 그런 찰리 앞에 몇몇 사람이 등장하며 시작된다.

처음 그를 찾는 건 신생종교 새생명교회의 젊은 선교사 토마스(타이 심킨스 분)다. 종말이 코앞에 다가왔다 설파하는 기독교 일파로, 많은 이들이 이단이라 여기는 종파다. 찰리를 만난 토마스는 눈앞에 앉은 고래 같은 인간에게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신이 제게 맡긴 임무일지도 모를 일이다. 토마스는 전력을 다하여 찰리에게 제 믿음을 전하려 시도한다. 그것이 제 삶을 구하는 일이라 믿으면서.

다음 나타나는 건 평소 찰리를 돌봐온 간호사 리즈(홍 차우 분)다. 찰리와 남다른 인연이 있는 그녀는 벌써 수년 째 정성을 다하여 그를 돌본다. 오빠를 잃고 그의 옛 연인이던 찰리를 돌보는 게 그에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가족을 등지고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리즈는 또 하나의 떠남을 휘청이며 감당하려 든다.
 
무엇보다 찰리의 삶을 온전히 뒤흔드는 만남 하나가 기다린다. 딸 엘리(세이디 싱크 분)는 무려 9년 만에 제 아버지를 만난다. 여덟 살 귀여운 소녀였을 적이 엊그제 같은데 세상 이리 막나가는 반항아가 따로 없다. 엘리는 저를 버린 아버지에게 분노를 쏟아낸다. 그로부터 찰리에게 감춰진 사연이, 그의 죄와 희망이 조금씩 드러난다.
 
더 웨일 스틸컷

▲ 더 웨일 스틸컷 ⓒ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가장 현명한 존재가 죄인이 되었을 때
 
<더 웨일>은 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며칠을 그린다. 너무 비대하여 문 밖으로 나서지도 보조기 없이는 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사내가 제 삶을 돌아보며 의미를 찾는 과정을 따른다.

원격으로 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찰리는 학생들 앞에 제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한다. 제 딸조차 역겹다고 하는 용모를 다른 이에게 내보일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겐 무기가 있다. 평생 글을 쓰는 삶을 살았고, 글로써 스스로를 닦아온 그다. 찰리는 저를 떠나려는 엘리를 붙들어 낙제 직전에 몰린 그녀의 에세이를 대신 써주겠다 권한다. 제법 그럴듯한 제안에 엘리는 계속 찰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찰리의 불운했던 삶은 극중 가장 현명한 존재를 가장 큰 죄인이자 혐오스러운 존재로 만든다. 현명한 이의 목소리가 어디에도 닿지 않는 비극으로부터, 그러나 마침내 모두가 제게 마땅한 구원을 구하는 결말까지, 영화는 어떻게든 나아가려 시도한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아버지와 사랑을 받지 못한 딸, 오빠를 구하지 못한 동생이며 가족을 잃은 청년의 이야기가 얽히고 설켜 영향을 주고받는다. 끊어지고 좌절된 애정들과 무너진 관계까지를 영화가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더 웨일 스틸컷

▲ 더 웨일 스틸컷 ⓒ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걸작이란 이런 것임을 몸소 입증한다
 
영화는 브렌든 프레이저를 위시한 배우들의 표현력에 기대어 시종 긴장을 유지한다. 단순하지만 파괴력 있는 상징들과 그로부터 폭발하는 드라마의 힘이 관객을 감동으로 이끈다.

사랑과 우정, 책임과 용기에 대한 드라마는 영화를 넘어 모든 이의 삶 가운데도 존재하는 것들이다. 영화의 목적은 보는 이가 제 삶 한 구석에서 마주했을 이 같은 가치들을 흔들어 일깨우는 일이다. 찰리와 리즈, 토마스와 엘리로부터 제 삶 가운데 마주했을 수많은 순간들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이미 저질러진 잘못들과 돌이킬 수 없는 실패들, 단절된 관계 따위를 영화는 어떻게든 복원하려 매달린다.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지만 용기와 책임을 다하면 어떻게든 새로움을 쌓아올릴 수는 있으리라고, 영화는 그야말로 처절하게 얘기한다. 생의 끝에 내몰린 찰리가 해낼 수 있다면, 극장 안에 들어앉은 누구든 해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더 웨일>은 다른 이를 북돋아 제 삶가운데 일으켜 세우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관객 또한 찰리가 마침내 제 목적을 이뤄내기를 응원하도록 한다.
 
눈 밝은 이라면 영화의 끝에서 알게 될 것이다. 대런 애로노프스키가 <더 웨일>을 찍기 위해 영화를 찍어왔고, 브랜든 프레이저는 찰리를 연기하기 위하여 연기를 해왔단 것을, 그리고 우리 또한 이 영화를 보기 위하여 영화를 보아왔음을 말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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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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