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위더스푼은 할리우드의 대표적 여배우이다. 사람들에게 그녀의 존재를 널리 알린 작품이라면 <금발이 너무해> 시리즈이다. 하지만, 금발이 아름다운 여배우로만 리즈 위더스푼을 기억하는 건 아쉽다. <우먼 인 할리우드>에서 리즈 위더스푼은 늘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만이 자신에게 오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고 토로한다. 이에  스스로 여성 위주의 콘텐츠를 만들었고, 이 제작사 '헬로 선샤인'은 2021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 중 하나로 뽑혔다. 

그런 그녀의 영화 두 편이 비슷한 시기에 넷플릭스에 등장했다. 그녀가 제작한 <가재가 노래하는 곳>과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어 플레이스 오어 마인>이다. 그중 <유어 플레이스 오어 마인>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크루엘라> 등에서 각본을 맡았던 엘라인 브로쉬 맥칸나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첫 영화이다.

영화적 서사로 보면 무려 20년 동안 너나 없이 지내는 남녀 친구 사이가 연인으로 급변하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이다. 하지만 여자 주인공인 데비라는 인물을 보면, 그저 주말 저녁 심심풀이 로코를 넘어 삶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기는 영화로 보여진다. 
 
싱글맘 데비가 살아가는 법 
 
 <유어 플레이스 오어 마인>

<유어 플레이스 오어 마인> ⓒ 넷플릭스

 
데비(리즈 위더스푼 분)와 피터(애쉬튼 커쳐 분)는 20년 지기 친구이다.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는, 20년 째 생일날에도 두 사람은 여지없이 통화를 한다. 여자 친구와 함께 있어도, 샤워를 하면서도 시시콜콜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하지만 그들이 원래 그런 사이는 아니었다. 

20년 전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불같은 하룻밤을 보냈다. 그런데 다음날, 피터가 횡설수설 자기는 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둥 하며 말을 바꿨다. 웬만하면 냅다 걷어차련만, 묘하게도 두 사람의 관계는 '친구'라는 사이로 오래도록 남았다. 고향을 떠난 피터가 알콜 중독으로 치료 받을 때에도 그를 찾아준 건 데비였고, 이제는 LA에 사는 데비와는 대륙의 맞은 편 뉴욕에 사는 처지이지만 여태 둘도 없는 친구라며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피터와 시시콜콜 수다를 나누는 사이가 되는 20년 동안, 사실 데비의 삶은 롤러코스터였다. 사랑인 줄 알았던 피터는 다음날 아니라며 심지어 고향을 떠나버리고, 안정적 가정을 꾸릴 줄 알고 선택했던 남자는 웬걸 바람같은 남자였다. 결국 아들 잭은 오로지 데비의 몫이 되었다. 심지어 잭은 알러지 투성이의 병약한 아이다. 

싱글맘 데비는 그래서 늘 전쟁 중이다. 아이와 함께 싱글맘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삶과, 거기에 아들 잭의 알러지와의 전쟁 말이다. 온통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아이가 알러지를 일으키지 않는 환경과 아이를 안정적으로 키우기 위해 달려가는 듯한 시간들, 그러기 위해 이번에 뉴욕에 회계사 연수를 받으러 가기로 했다. 그 연수를 받으면 조금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테니. 

여성이 엄마가 되면 때로는 남편이 소외감을 느낄 정도로, 온통 아이에게 맘을 빼앗긴다. 우리 사회에 '~맘'이라는 용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한 것도 어찌보면 그런 엄마들의 전투적인 자세에 근간을 둔 것이다. 내 품에 안긴 아기, 그 아이의 가녀림과 무방비함은 엄마라는 존재로 하여금 세상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갑옷을 스스로 찾아입게 만드니까. 하물며 남편이 있어도 그런데, 남편조차 기댈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면 싱글맘의 전투력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 회계사 연수를 받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는 데비이지만 사실 데비가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피터와 하룻밤을 보내며 그와 보다 친밀해질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즐겨읽던 책에 대한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이야 잘 나가는 M&A 전문가이지만 한때는 습작에 열중하던 작가지망생이었다. 데비는 '문자 중독'이라 할 만큼 책에 있어 조예가 깊은 여성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취미'가 싱글맘으로서 그녀가 살아가는 데 '안정'을 제공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제쳐두었다. 

그런데 삶은 언제나 궤도의 열차처럼 운행되지 않는 법, 그 시작은 뉴욕 연수 동안 아들 잭을 케어해줄 사람이 자신의 일로 캐나다로 내빼면서 시작되었다. 본의 아니게 피터에게 아이를 맡기고 뉴욕으로 가서 피터의 멋진 오피스텔에서 지내게 된 데비, 거기서부터 그녀의 삶은 예측 못할 해프닝으로 이어진다. 

로맨틱 코미디의 매력은 무엇일까? 두 남녀의 티키타카한 애정 전선도 매력이겠지만, 우연히 나의 삶에 날아든 변화가 어쩌면 더 중요한 '모멘트'가 아닐까. 늘 그저 그런 길이겠거니 하는 인생에서 뜻밖에 만난 우연이 나를 새롭게 발견하게 만드는 게 진짜 로코의 매력이지 않을까. 영화는 두 주인공을 LA와 뉴욕이라는 끝과 끝의 두 공간으로 바꿔치기 하여 만날 수 없게 만드는 대신, 자신의 삶에서 방출되어 다른 삶의 환경에서 마주하게 된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용기
 
 유어 플레이스 오어 마인

유어 플레이스 오어 마인 ⓒ 넷플릭스

 
고향을 떠나 M&A 전문가로 성공했지만 이렇다 할 가재도구 하나 없는 황량한 집에서 살아온 피터의 삶은 그대로 피터 자신이다. 그런 피터가 발 디딜 틈없는 데비의 집에서, 알러지 투성이 데비의 아들을 돌보며 자신이 그리고 있는 삶이 평범한 아내와 아들이 있는 가정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과정이 영화의 한 축이 된다. 

그렇다면 데비는? 피터가 즐겨가는 바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출판사 편집장, 그 출판사에서 출간한 명작이지만 단 한 권 팔린 그 책을 사본 사람이 바로 데비였다는 우연 아닌 우연이, 그와의 데이트로, 그리고 졸지에 숨겨놓았던 피터의 작품 출간으로 이어지며 데비는 아주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책'에 대한 그녀의 열망, 혹은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안정적인 회계사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데, 뉴욕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그녀는 잭의 엄마가 아닌, 열렬한 책 마니아였던 데비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잭을 책임지는 싱글맘이기에 포기했던, 안정적일 수 없다 하여 포기했던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피터의 원고를 출간하는 과정은 그래서, 피터에 대한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발견의 과정이 된다. 사랑은 이처럼 사랑을 통해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확인케 해준다고 영화는 말하고자 한다. 물론 로코의 전형적인 결말에 따라, 데비는 사랑도 얻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찾는다. 또 다시 실패할까봐 숨겨왔던 마음을 내놓는 용기와 함께, 자기 자신에 대한 용기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사랑도, 인생도, 늘 정해진 대로만 갈 수 없다고, 아니 정해진 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가보지 않은 길을 시도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전한다. 어쩌면 이 영화의 진짜 메시지는 '사랑'이 아니라, '용기'일지도. 
유어 플레이스 오어 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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