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3 04:49최종 업데이트 23.03.13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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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1일 세계 최초의 트랜스젠더 시장이자 뉴질랜드 노동당 의원이었던 조지나 베이어가 뉴질랜드 웰링턴 의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6일,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로서는 세계 최초로 국회의원과 시장을 역임했던 뉴질랜드의 조지나 베이어가 사망했다. 공식적인 사인이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언론들은 그녀가 오랜 시간 앓아온 심부전증을 원인으로 추정했으며 베이어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수식어만으로도 유추가 가능했겠지만 조지나 베이어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뉴질랜드 선주민인 마오리와 유럽계 백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연기자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이후 게이 클럽에서 가수와 드랙 아티스트로 활동했다.


1979년 거주 중이던 호주 시드니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했으나 경찰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무력하고도 끔찍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정치인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1995년 조지나 베이어는 뉴질랜드의 작은 도시인 카터튼의 시장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1999년 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2007년까지 활약했다. 임기 내내 진보적 정책 도입과 성소수자 인권 향상을 위해 열렬히 활동했다. 다양한 가족구성권 보장과 동성결혼 법제화를 위해 매진했고 차별금지법 강화와 보완에 앞장섰다.

최초의 커밍아웃 트랜스젠더 시장이자 국회의원으로서 트랜스젠더를 향한 차별과 편견을 불식시키는 데도 많은 노력을 했다. 또한 마오리어를 정부와 공공 기관에서 사용하는 정책을 제안해 2003년 마오리 언어법 통과로 결실을 맺었다. 이 법안은 마오리어 위원회를 설립하고 마오리어 홍보와 보존을 위해 기금과 지원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매매 딜레마

이것이 조지나 베이어가 가진 이력의 전부는 아니다. 중요한 게 하나 빠져있다. 베이어는 전직 성노동자였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성매매를 비범죄화하는 성매매법 개정을 강력하게 지지했고 2003년 뉴질랜드 국회를 통과했다. 조지나 베이어의 부고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하고자 했을 때 가장 고민이 들었던 게 이 부분이었다.

뉴질랜드 성매매법 개정안은 찬반이 팽팽한 가운데 한 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통과되었다. 그만큼 표결 당시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성매매 자체가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입장 차이가 첨예한 화약고와 같은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성매매 문제를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시작하면 글이 무한정 길어질 텐데 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주제에 대해 개인적인 입장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강한 확신이 없기도 하다. 성매매 이슈는 늘 질문으로 시작해 질문으로 끝난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성매매에 대한 조지나 베이어의 활동과 소신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베이어의 유산으로 남은 성매매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그렇다.

딜레마는 여기서 발생한다. 온전히 동의할 수 없는 고인의 성취를 아무런 설명 없이 전달하는 게 괜찮은 일일까. 내가 그 의견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베이어의 삶에서 큰 족적 중 하나를 누락하는 건 무례하고 비겁한 일이다.

그렇지만 추모를 위해 쓴 글에 성매매에 대한 내 생각을 길게 읊는 것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간단히 소식이나 전하자고 띄운 인터넷 창을 바라보며 수십 분 동안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서로 다른 입장 속에서 확인한 것

조지나 베이어의 부고를 다룬 기사들과 고인에 대한 여러 자료를 다시금 살펴보았다. 그중 눈에 띄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뉴질랜드 성매매법 개정안 표결 당시 의회 연설에서 베이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20살 이전에 죽은 성노동자들을 위해 이 법안을 지지합니다. 어떤 이유로 그 산업에 당도했건 구원의 기회를 주지 않았을 이 사회의 비인간성과 위선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요."

개인적으로 '성노동'이라는 표현을 선호하지 않는다. 조지나 베이어를 '전직 성노동자'라고 지칭한 것은 그것이 베이어가 규정한 스스로의 지위이자 정체성이었고 이는 존중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공통점은 있었다. 뉴질랜드 성매매법 개정안은 성판매 종사자의 인권 보호와 착취 금지, 개인의 보건 및 복지와 안전 증진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

베이어는 성매매 현장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삶을 염려하고 보살피고 개선하고자 했다. 이들이 존중받는 삶을 살고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노력했다. 성매매 이슈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건 그 목표는 나를 포함한 페미니스트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부고의 글을 이렇게 닫았다.

"무수히 엇갈리는 의견 속에서도 우리가 합의할 수 있는 함께 발을 디딘 공통의 토대를 확인하며 작별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자긍심 속에서 평안하기를."

의견이 달라도 동료가 될 수 있다

토론은 지치고 때로는 불안한 일이다. 특히 입장이 첨예하고 논쟁의 여지가 큰 주제일수록 더욱 그렇다. 계속해서 에너지를 쏟아 설득하지만 이야기가 평행선을 달리고 그러다 토론이 과열되면 감정적인 파고가 이어지기도 한다. 어느 순간 설득은 사라지고 대립과 충돌만 남는다. 이런 상황이 펼쳐지기 가장 좋은 장이 SNS인데 내가 거기서 정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켜보는 입장이라고 마음 편한 것은 아니다. 특히 근 몇 년간 성매매를 포함하여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설전을 보는 건 씁쓸한 일이었다. 토론도 논쟁도 아닌 상대방의 소신이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비하와 조롱이 이어지는 건 끔찍한 일이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애초에 공론장을 만들었는지 슬퍼질 정도였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토론하고 논쟁하는 건 좋은 일이다. 그 과정이 아무리 격렬하다고 해도 그렇다. 생각과 의견이 다양한 사람들이 사회에 함께 존재하고 지속적으로 충돌해야 한다.

진보는 그래야 가능하다. 설득과 합의의 과정에서 지금과는 다른 더 나은 세상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산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발을 디딘 공통의 토대를 의식적으로 기억해야 할 필요도 있다.

불가침의 인권을 보호하고 모든 개인들의 존엄을 보장하며 다양한 존재를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과 같은 것들. 이를 잊고 우리가 단지 이기기 위해 누군가와 논쟁한다면, 이야기는 길을 잃은 채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 가능성이 높다. 격양된 설전 속에서 우리가 지키려 한 원칙이 기각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셈이다.

입장이 달라도 그런 상대를 존중하고 수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 사람의 입장이 우리가 지닌 공통적인 목표에서 출발했음을 인식할 때, 우리는 상대를 동료로 받아들일 수 있다. 조지나 베이어에 대한 다소 혼란스러운 부고를 작성하며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나는 그것이 이역만리에 사는 생면부지 한국인에게 그녀가 남긴 개인적인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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