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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부착된 현금 없는 버스 시범 운영 안내문.
 버스에 부착된 현금 없는 버스 시범 운영 안내문.
ⓒ 강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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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갔다가 돌아오는 버스 종착지에서 내릴 자세로 대기하는데 창문에 부착된 안내문이 내 눈에 띄었다. '현금 없는 버스.' 그때야 비로소 버스 입구가 보였다. 동전의 명쾌한 딸그랑 소리 역할을 했던 현금통이 없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내 수중에도 현금이 없다.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세상, 빨간 지갑은 돈을 불러온다는 속설도 이제 통하지 않는다. 지갑도 필요 없으니 말이다. 어느새 현금은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훈민정음처럼 먼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2022년 6월 15일에 공개한 '2021년 경제주체별 현금 사용 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지출액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21.6%로, 카드 사용의 절반도 미치지 않았다. 카드의 시대가 도래한 건 오래된 일처럼 보이지만 현금이 급진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일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현금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은 우리 실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간편 결제 시스템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 시스템에 스며들었다. 특히 네이버페이는 활용도가 높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16년 미국을 혼자 여행했을 당시 카드는 비상용이었다. 되도록 환전한 달러를 사용해 여행할 생각이었지만 현금 결제를 거부당한 경험이 더러 있었다. 버거집에 들어가 주문 후 금액을 딱 맞춰 돈을 지불하려고 했다. 여행자 티를 내며 지폐와 동전을 꺼내기 위해 지갑을 뒤적거렸다. 문장을 정확하게 알아듣진 못했지만 대강 "No coin, no cash"였다.

매장 직원은 현금 안 받는다며 카드를 달라고 했다. 이런 일은 미국 여행 중에 자주 발생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은 1달러도 카드로 받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때만 해도 한국의 경우는 500원의 돈을 카드로 긁으면 가게 사장님에게 뒤돌아 욕을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정엄마가 장사를 하셨기에 알 수 있었다. '요즘 애들은 어쩜 500원도 카드를 긁고 그런다니?' 카드 수수료가 나가는 까닭에 500원의 수익이 온전히 500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불쾌해하셨다.

친정엄마의 이야기로 국한될 수 있겠지만 어찌 됐건 이제는 상황이 역전돼 대체로 실물 현금을 선호하지 않는다. '2021년 경제주체별 현금 사용 행태 조사 결과'에서도 일부 사업장에서 현금 결제 거부가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현금결제를 거부당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가 전체 가구의 6.9%로 2018년(0.5%)에 비해 증가). 현금 결제를 거부하는데 카드가 없어 당황한다면? 한 번쯤 겪을 법한 상황에서 손님은 이 문구를 보고 안심한다. '계좌이체 가능!!!(계좌번호·예금주).'

돼지 저금통의 기능이 전락하다

한편 남편은 로또를 사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현금을 뽑아 놓는다. 남편은 간혹 그 현금을 쓰다가 동전이 생긴다. 그 덕에 돼지저금통 배를 불렸다. 최근 아이가 돼지 저금통을 장난감 삼아 논다. 돼지 입을 열고 먹이 먹여주는 놀이에 빠졌다. 동전을 몽땅 다른 곳으로 옮겨놔야 했다. 어차피 쓰지도 않는 동전들 이참에 은행에 가서 통장에 입금시키고 아이를 위해 저축이나 해줘야지, 생각했다.

아이를 재운 어느 날 남편이랑 동전을 셌다. 동전을 세어본 지가 언젠지 까마득하다. 동전을 세고 있는 우리는 마치 번쩍이는 가루들이 날리는 마법 상자를 열듯 과거의 추억을 상영했다.

초등학생 시절 엄마는 저금통에 모아둔 동전들을 한 번씩 꺼내어 은행에 가서 입금을 했다. 엄마 곁에 앉아 같이 동전을 세고 같이 은행에 갔다. 그럼 엄마가 그 돈은 내 돈이라며, 그날 사고 싶은 물건을 사주셨다.

다른 형제는 모르고 오직 엄마가 나만 사준 비밀 선물이었다. 그 돈이 만 원이든, 오만 원이든 상관없었다. 동전이 모이면 이렇게 큰돈이 되는구나! 비록 엄마가 모은 동전이지만 수확의 기쁨을 배웠다.

추억 필름이 끝나고 동전의 총액이 나왔다. 에계... 고작 2만 8000원? 고작이라는 수식어가 붙자 2만 8000원은 이미 다 쓰고 없어진 돈처럼 무용지물이 되었다. 동전 나올 일이 크게 없으니 돼지 저금통 안에 들어있던 돈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돈이 돈 같지가 않아 더욱 그리 느낀다. 푼돈이라 여기며 역시 티끌 모아 티끌이라고 다시 한번 느꼈다.
 
마침 원고 발행 중 키보드 옆에 놓인 동전들.
 마침 원고 발행 중 키보드 옆에 놓인 동전들.
ⓒ 강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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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현금 없는 세상은 돈을 대하는 자세마저 불량하게 바꾼다. 2만 8000원을 시간당 최저임금(9620원)으로 계산하면 대략 3시간을 노동해야 받을 수 있는 값진 돈이다. 비싸게 주고 산 물건을 당근마켓에 헐값으로 내놓으며 단돈 몇 만 원에 사활을 걸고, 몇 백 원 벌어보겠다고 앱테크를 하면서도 눈앞에 놓인 3시간 노동의 가치 2만 8000원의 동전을 보고는 푼돈이라 여기는 내가 불량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결국 은행에 가지 않았다. 은행을 가지 말아야겠다 마음먹은 이유는 동전 바꾸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전 받는 날짜가 은행 지점마다 정해져 있다. 그 돈 바꾸려면 내 스케줄을 바꿔야 하는데... 하나둘 은행 지점이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은행 가면 대기 시간도 길다. 돈을 위해서라면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2만 8000원을 위해 하루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기로 했다.

아마 예전이라면 바득바득 입금하러 은행 갈 시간을 마련했을 것이다. 아이를 위해 한 푼이라도 저축했다는 뿌듯함으로 나를 채웠겠으나 지금은 '나의 에너지를 그곳에 쏟을 수 있는가?'로 물음의 방향을 돌린다. 못하겠다가 아니라 못 해먹겠다로 답을 내린다.

동전을 사용해야 할 유용한 순간은 가끔 있으니 그때 쓰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아이랑 외출하다 보면 종종 현금 필요한 일이 생긴다. 아이 눈을 사로잡는 뽑기를 하거나 마차를 태워줘야 하는데 현금이 있어야만 했다. 그럴 때나 쓰자 결론을 낸 뒤로는 돼지 저금통의 저축 기능은 사라졌다.

현금 종말의 시대가 오려나

미국 여행을 떠올리니 벌써 7년이 흘렀다. 한국도 현금이 사라지는 캐시리스(cashless)를 적극 실현 중이다. 서민의 다리가 되어주는 버스마저 현금을 받지 않으니 현금은 더 보기 힘든 게 되었다. 가계가 보유하고 있는 주화 중 일상 거래에 사용되지 않고 방치된 주화의 비중이 76.9%에 달한다고 하니 이제는 돼지 저금통 배를 갈라 동전 세는 모습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하다.

현금 종말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돈의 거래가 점점 더 간편해지니 삶이 편해졌다. 편안함이 지속되면 몸을 근질거리게 해 소비를 부추기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소비 조장의 효과도 생긴다고 해야 하나. 국가 차원에서는 거래 내역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으니 조세 처리가 보다 정확해질 것이다. 화폐 접촉 감염도 줄어들 테고 잔돈을 처리하는 거래 시간 또한 감소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모든 사건엔 음양이 존재한다. 아직도 우리 부모님은 돈과 관련한 일은 은행에 가서 처리를 한다. 이처럼 현금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금융소외계층을 위한 방안도 함께 안고 가야 한다. 거기다 이번 페이코(PAYCO) 앱서명키 누출 사고처럼 날로 발전하는 해킹 수단을 막을 강력한 법적 장치 마련도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블로그에도 함께 실릴 수 있습니다.


태그:#캐리시스, #무현금화, #현금없는사회, #저금통, #미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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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암이라니, 그것도 임신 중 유방암 3기라니. 손가락 치켜세울 위대한 업적은 없지만 병마로 새로운 삶을 얻고 나와 가족에게만큼은 위대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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