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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짐이 은근히 많네요. 5톤 트럭 한 대랑 1톤 트럭 두 대는 필요할 것 같아요. 비용은 320인데 부동산 소개로 연락하셨으니까 제가 20은 깎아 드릴게요."

이사업체 사장은 크게 선심 쓰듯 말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금액에 너무 놀라서 다른 업체 견적도 좀 받아보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2년 전 서울에서 대전으로 이사할 때도 이 정도 비용은 안 들었는데, 2년 사이에 물가가 아무리 올랐다고 해도 320은 너무 과했다. 부리나케 컴퓨터를 켜고 지역 맘 카페에 들어가 후기가 가장 좋은 이사업체를 찾아 견적을 의뢰했고, 다행히 훨씬 저렴한 가격에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나처럼 정리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니!

초등학교 때(정확하게는 국민학교지만) 나는 가끔 전학 오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낯선 환경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나였지만, 그 당시에는 갑자기 학기 중간에 짠! 하고 등장하는 전학생들의 모습이 멋져 보였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대학 졸업까지 전학은커녕 이사도 못 가봤는데... 어쩌다 보니 10년 전부터 1~2년에 한 번꼴로 계속 이사를 다니고 있다.

첫 이사는 2013년 판교 원룸이었다. 결혼하면서 일산에 있는 시가에 들어가 살았는데, 다니던 직장이 판교로 이전을 하는 바람에 주중에는 남편과 둘만 따로 나와 회사 앞 원룸에서 살았다. 그때는 슈퍼 싱글 사이즈의 매트리스만 놔도 방이 꽉 차서 둘이 그 작은 침대에 둘이 꼭 붙어 자느라 피곤이 더 쌓이곤 했었다. 그래서 1년 뒤 바로 좀 더 큰 평수의 원룸으로 옮기면서 침대부터 바꿨는데, 그렇게 최근 10년 동안 총 7번의 이사를 하며 늘어난 짐이 6톤이나 될 줄이야...!

포장이사 견적에 놀란 덕분에(?) 이사 준비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짐을 줄이고,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미니멀 라이프'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 그것은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아 그들과 함께 매일 미션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엄마일연구소'라는 커뮤니티에서 새벽 기상과 영어 공부, 운동과 독서 등 혼자서는 꾸준히 지속하기 어려운 것들을 미션을 통해 성공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바로 커뮤니티에 '미니멀 라이프 1기 모집' 글을 올렸다.  

미션은 '하루에 한 개 이상 버릴 것을 찾아 사진을 찍고 오픈 채팅방에 인증'하는 것! 단, 바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금요일까지 비움 박스에 담아 두었다가 금요일마다 진짜 버릴 것과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줄 것, 다시 사용할 것을 재분류하고, 그 내용을 주간 리뷰로 남기는 것이다.

신청자가 한 명만 있어도 진행하겠다는 마음으로 모집 글을 올렸는데, 순식간에 22명이나 신청을 해서 깜짝 놀랐다.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신청자들은 나처럼 이사를 앞두고 있는 사람부터 새해를 맞이해서 집을 정리하고 싶은 사람, 새 학기 맞이 아이들 가구를 바꿔 주느라 정리가 필요한 사람, 깨끗한 집에서 정리된 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 추억의 물건과 사진들을 정리하고 싶은 사람, 나에게 최적화된 공간을 만들고 싶은 사람, 마음을 비워내고 싶은 사람까지 이유와 목적도 다양했다.

드디어 미션 첫날

오픈 채팅방에 참여자들의 비움 사진과 함께 어떤 물건인지 간단한 설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한 지난 영양제와 작아진 옷들, TV는 이미 버렸는데 아직 남아있는 리모컨과 고장 난 가습기, 베란다에 방치된 과학 상자와 고장 난 헤어드라이기, 오래된 화장품과 각종 워크북 등 여태 가지고 있는 게 신기한 물건들이 잔뜩 올라왔고, 참여자들은 그 사진을 보면서 저마다 '아! 우리 집에도 그거 있어요', '저도 그거 비워야겠네요'라며 공감을 표했다.
 
미니멀라이프 1기 참가자들이 오픈 채팅방에 인증한 사진 모음.
▲ 미니멀라이프 미션 참가자들의 인증사진 미니멀라이프 1기 참가자들이 오픈 채팅방에 인증한 사진 모음.
ⓒ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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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냉동실 정리 사진을 올리거나 양말이나 책장 정리 사진을 올리면 다 같이 약속이나 한 듯 릴레이로 정리를 시작했고, 가끔 '우산은 어떻게 버리나요?', '다들 일회용품은 어떻게 정리하세요?', '기한 지난 손 소독제 버리는 방법 아시는 분?' 같은 질문이 올라오면 그 안에서 해결책들이 척척 나오기도 했다. 또 화장대 서랍을 정리하다 문화상품권과 비상금을 발견했다거나 버릴 거 없나 찾아보다 4년 된 새 프라이팬을 찾았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마스크팩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 다리에 잠시 붙여 두거나 비누 꽃다발의 꽃잎을 작은 망에 넣어서 방향제로 활용하는 생활의 지혜가 공유되었고, 장롱 안에 잠자던 담요들과 아이들 겨울옷을 정리해 기부 물품으로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한 지난 마스크팩은 그냥 버리지 않고 다리에 잠시 붙여두었다 버리기.
▲ 기한 지난 마스크팩 활용법 기한 지난 마스크팩은 그냥 버리지 않고 다리에 잠시 붙여두었다 버리기.
ⓒ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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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한 미니멀 라이프 미션은 한 달, 두 달을 지나 현재 3기째 진행 중이다. 매 기수별 20명 정도의 인원이 모여 함께 '1일 1비움'을 진행하다 보니, 정말로 쓸데없는 짐들이 많이 줄었다. 덕분에 나는 이사도 잘했고, 이사 후 집 정리하는 시간도 훨씬 줄었다. 사람들과 함께 미션을 할 때 실행력이 높아진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래서 새봄을 맞아 집 정리를 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나는 미니멀 라이프 미션을 직접 진행해 보라고 권하고 있다. 단순히 미션에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아무래도 직접 미션을 진행하면 책임감 때문에 실행력이 더 올라가기 때문이다. 새봄이 시작되는 3월, 잡동사니는 버리고 중요한 것만 남기는 한 해가 되도록 주변 사람들과 함께 '1일 1비움'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태그:#미니멀라이프, #미니멀리스트, #1일1비움, #비움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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