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3시즌 프로농구 정규리그가 어느덧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캐롯 리스크'가 봄농구(플레이오프) 판도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고는 캐롯이 쳤는데, 정작 그 피해는 다른 구단들과 KBL이 더 걱정해야하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올시즌을 앞두고 전신 고양 오리온을 인수하여 새롭게 창단한 신생구단 고양 캐롯 점퍼스는, 대우조선해양을 모기업으로 하는 데이원스포츠가 운영주체를 맡고, 캐롯손해보험이 네이밍 스폰서로 참여했다.
 
캐롯은 18일 현재 26승 23패로 리그 5위에 올라있다. 5경기를 남겨둔 현재 6위 전주 KCC(23승 27패)와 3.5게임, 7위 수원 KT(20승 28패)와는 무려 5.5게임차이로 창단 첫해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 거의 확정적인 상황이다.
 
문제는 가입비 미납이다. 캐롯은 신생팀이 한국농구연맹(KBL)에 의무적으로 납입해야하는 특별회비 15억원중 5억원만 지난해 10월 1차 납부했고, 2차 잔여분 10억원을 아직 내지 못했다. KBL은 납부기한을 3월 31일까지로 정했고, 만일 캐롯이 남은 기간동안 납입 약속을 지키지못하면 PO에 참가할 수 없다는 방침을 정했다.
 
캐롯의 운영주체인 데이원은 이미 출범 초기부터 재정난에 시달려왔다. 모기업 대우조선해양의 경영난이 악화되면서 지난해 1차 가입비도 기한 내에 내지 못했다. 당시 KBL 이사회가 연장 기한 내에 납입비를 완납하지 않으면 정규리그 참가를 불허한다는 초강수를 던지자 기한을 하루 남기고 겨우 납부했다.
 
또한 지난 1월부터는 선수단 급여 지급이 늦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데이원은 1년만에 농구단 운영을 포기하고 다른 기업과 인수 협상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폐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구단과 대조적으로 정작 선수단은 승승장구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약체라는 평가를 딛고 캐롯은 초반부터 양궁농구로 돌풍을 일으키며 선전했다. 김승기 캐롯 감독은 "플레이오프는 간다. 돈 문제는 구단의 몫이고, 실력은 문제가 아니다"라고 할만큼 팀의 선전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심지어 캐롯은 최근 체력안배를 위하여 이정현-디드릭 로슨 등 몇몇 선수들을 출전명단에서 제외하고 휴식을 주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사실상 6강 진출은 확정지었다고 보고 플레이오프 대비 체제에 들어간 것이다.
 
선수단은 봄농구를 할만한 자격도 준비도 모두 갖췄지만, 정작 구단도 그러한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KBL이 정한 납입 기한이 다시 다가오고 있는데 아직도 돈이 마련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만일 캐롯이 끝내 10억원을 내지못하여 6강 진출 자격을 박탈 당한다면 차순위인 7위팀이 대신 플레이오프에 오르게 된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이래 초유의 상황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사태가 현실화된다면 정작 피해를 보는 것은 KBL과 다른 구단들이다. 어차피 재정난으로 임금까지 체불됐고 농구단 운영도 포기하려는 마당에, 플레이오프 진출자격 박탈이 캐롯 구단 입장에서 징계로서 큰 의미가 있을까. 그저 캐롯 유니폼을 입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뛰었던 선수들만 구단 때문에 애꿎은 손해를 뒤집어쓰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캐롯의 출전 자격이 박탈된다면, 올 시즌 봄 농구 운영에도 여러 가지 골치아픈 문제가 연이어 발생한다. 현재 프로농구 6강플레이오프는 3-6위, 4-5위가 5전 3선승제로 격돌하고 상위팀이 홈어드밴티지를 가져가는 시스템이다. 현재 순위대로라면 5위인 캐롯은 6강에서 4위 울산 현대모비스와 격돌하고, 3위 서울 SK는 6위 전주 KCC와 만나게 된다.
 
캐롯이 빠지게 되면 플레이오프 대진표가 완전히 꼬인다. 현대모비스의 상대가 KCC로 바뀌고, SK는 현재 7위인 KT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보통 정규시즌 막바지가 되면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한 팀들은 어느 정도 대진 상대를 예측하고 준비에 돌입하는데 하루아침에 상대가 완전히 바뀌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이한다.

여기에 플레이오프 일정에 따른 홈-원정 이동 계획이나 숙소예약 등도 다시 짜야한다. 또한 7위팀의 경우, 본래대로라면 6강에 탈락하고 바로 귀국해야할 외국인 선수들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계약 연장과 급여 문제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한다.
 
결과적으로 구단의 재정 상황과는 별개로, 캐롯이 생각보다 너무 잘한 것도 또다른 문제를 야기한 꼴이 됐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면 선수단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해산하면 그만이지만, 그 후폭풍은 일정을 다시 짜야하는 KBL과 봄농구에 나서는 다른 구단들이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된다.
 
이는 결국 KBL이 스스로 제 발등을 찍은 꼴이다. KBL은 애초에 데이원이 창단 당시부터 이미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외형적으로 10개 구단 체제를 유지하는 데만 연연하며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KBL이 1차 가입금을 제때 납부하지 못했을 때 캐롯의 정규리그 출전을 불허했다면 비록 9개구단 체제를 감수하고라도 최소한 더 이상의 파행 없이 리그 자체는 정상적으로 운영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시즌을 다 소화한 마당에 PO 출전을 막는 것은 상황이 또 다르다. 구단에 대한 징계의 실효성도 애매할뿐 아니라 애꿎은 다른 팀들까지 덩달아 혼란에 휩쓸리는 상황을 초래했다.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올시즌 정규리그 종료일은 이달 29일이다. KBL이 그나마 혼란을 줄이려고 했다면 최소한 정규리그가 끝나기 전에는 캐롯의 PO 출전자격에 대한 최종결론을 내렸어야했다.
 
그런데 KBL은 납부마감일을 정규시즌 종료로부터도 이틀이나 더 지난 31일까지로 잡는 이상한 여유를 부렸다. 그리고 이날은 하필 프로농구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가 예정된 날이기도 하다. 만일 캐롯 구단이 기한내에 납입금을 다 내지못하면, 캐롯 선수단은 미디어데이에는 참석하고도 플레이오프에는 다른 팀이 참가하는 웃지못할 사태가 정말로 벌어질 수도 있다.
 
물론 캐롯이 가입금을 모두 납부한다면 모든 문제는 정리된다. 하지만 어쩐지 돈을 내야할 캐롯보다 돈을 받아야할 KBL이 더 다급하고 진퇴양난에 빠진듯해보이는 모양새는 왜일까. 이제와서 캐롯이 가입금을 끝내 못낸다고 해도 대책도 없고, 그렇다고 이제와서 KBL이 입장을 바꿔 또다시 캐롯을 봐주기(PO출전을 허용하는)도 모양새가 우스워진다

봄농구 파행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특정구단의 문제를 넘어선, 'KBL의 흑역사'다. 결말이 어떻게 나오든, 팬들의 관심이 절정에 달해야할 올시즌 봄농구가, 온통 캐롯 리스크 때문에 리그 전체가 불안정해지는 상황을 만든 것은 KBL이 자초한 업보였다. 그리고 최종 결정이 내려질 운명의 시간은 이제 13일밖에 남지 않았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KBL 고양캐롯 특별회비 플레이오프일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