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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초전공원에 세워진 6.25 전쟁 민간인 학살 추모비. 오른편 추모비에 새겨진 한시가 이채롭다.
 진주 초전공원에 세워진 6.25 전쟁 민간인 학살 추모비. 오른편 추모비에 새겨진 한시가 이채롭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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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 선생이 존경스러운 건, '빨갱이'라는 낙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죠."

형평운동의 지도자 백촌 강상호 선생의 묘소 입구에서 우연히 만난 한 진주시민의 김장하 선생에 대한 평가다. 그도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보고서야 백촌 묘소의 묘비를 세운 이가 김장하 선생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묘비에 새겨진 '작은 시민'이 누군지 내내 궁금했단다.

묘비를 세울 당시만 해도 백촌 선생은 좌익계 인사로 낙인찍혀 사실상 잊힌 존재였다. 일제강점기 형평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재평가되는 상황에도 그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 폐지된 연좌제가 혈연을 넘어 지연까지도 옥죄는 현실이었던 까닭이다.

그는 김장하 선생 덕에 보수 정당의 텃밭인 진주에도 이승만과 박정희를 대놓고 꾸짖는 기념물이 세워졌다며 뿌듯해했다. 그는 굳이 진주를 두고 '경남의 대구'라며 에둘러 비판했다. 선거 때마다 결과는 보수 정당 일색이라는 거다. 그만큼 '빨갱이'는 이곳에서 금기어라고 했다.

그는 대뜸 진주 초전공원에 가보라고 했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곳들, 곧 김장하 선생과 관련된 자취들을 찾아 천릿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다는 내 말에 대한 외마디 대답이었다. 김장하 선생이 대가 없이 국가에 헌납한 명신고등학교로 가는 길목이니 꼭 가보라며 신신당부했다.

박정희 만행 낱낱이 소개
 
진주 지역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상세히 새겨놓았다. 찬찬히 읽다 보면, 안내문이라기보다 한 편의 애끓는 연설문을 보는 느낌이 든다.
 진주 지역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상세히 새겨놓았다. 찬찬히 읽다 보면, 안내문이라기보다 한 편의 애끓는 연설문을 보는 느낌이 든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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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6.25 전쟁 중 희생된 민간인들을 추모하는 비석이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다고 했다. 지난 2021년 진주시가 직접 조성한 건데, 당시 지역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됐다고 귀띔해주었다. '빨갱이'라면 치를 떠는 고장에서 희대의 사건이자 유물로 기억될 것이라고 연신 강조했다.

명신고등학교 방향이라는 조언이 없었다면 헤맬 뻔했다. 내비게이션을 켜니 인근 사천으로 가는 길목에도 같은 이름의 공원이 있었다. 남성당 한약방이 시작된 곳이 사천인 터라 몰랐다면 자칫 그곳으로 핸들을 돌렸을 것도 같다. 백촌 묘소에서 남강변을 따라 10분 남짓 거리다.

남강변에 조성된 초전공원은 한눈에 봐도 인공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90년대 중반까지 진주시민들이 배출한 생활 쓰레기를 야적했던 곳으로 최근 공원으로 조성됐다. 서울로 치면 난지도의 하늘 공원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주말이어선지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여럿 보였다.

한 나들이객에게 추모비의 위치를 물었더니 주저 없이 손으로 가리켰다. 과연 이곳에 꼭 가보라고 추천한 분의 말마따나 모르는 이가 없는 듯했다. 공원 내엔 남북 방향으로 산책로가 곧게 뻗어있는 데다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게 없어서 추모비 찾아가기가 조금도 어렵지 않다.

도톰하게 흙을 돋운 자리 위에 탑을 세우고 희생자의 명단과 사건의 개요를 적은 비석을 병풍처럼 둘러놓았다. 외양으로만 보면 그다지 특이하달 게 없는 추모비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원한을 달래는 위령의 글을 한시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이곳에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게 하나 있다. 만약 '희대의 사건'이라는 말을 곱씹지 않았다면, 나 역시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6.25 전쟁 중 진주 인근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의 개요와 진상규명 과정을 상세히 적어놓은 안내문이 그것이다.

역사 교사로서 현대사 관련 유적을 두루 답사해오고 있지만, 이만큼 상세하고 거침없이 써 내려간 소개 글은 본 기억이 없다. '국뽕'으로 활용할 게 아니라면, 지금과 가까운 현대사일수록 두루뭉술 눙치고 넘어가는 게 상례다. 하물며 우리 정부가 자행한 민간인 학살 사건임에랴.

6.25 전쟁 전후 정부에 의한 학살임을 분명히 밝혔고, 최소한의 법 절차도 무시한 인권 유린 행위였다는 점도 적시했다. 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명령이었다는 헌병대 간부의 증언도 소개했고, 4.19 혁명 직후 정부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는 사실도 새겨놓았다.

더욱 놀라운 건, 희생자 유족들의 피맺힌 요구를 군홧발로 짓밟은 박정희 정권의 만행을 낱낱이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5.16을 군사 쿠데타로 명토 박은 뒤, 유족회 간부들을 투옥하고 합장묘를 훼멸했으며 연좌제로 묶어 유족들의 사회활동을 제약했다는 사실까지 적었다.

이어 2000년대 이후 비로소 유족들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점도 소개했다. 희생자의 유골을 수습한 대학교수의 실명까지 밝히며 본격적인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혀 놓았다. 노무현 정부 때 출범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공을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아가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 중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믿어지는 이도 있다는 점도 새겼다. 정부가 은폐하고 지우려 한 사건들은 머지않아 모든 진상이 밝혀질 거라면서, 그것이 역사의 진리이자 심판이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안내문이 아니라 한편의 연설문을 읽는 듯했다.

곧장 안내문에 적시된 민간인 학살터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니 차로 20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진주 시내에서 산청 방향으로 뻗은 국도변 골짜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물론, 도로에 표지판이 없어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는 찾아갈 수 없다.

학살터는 진주 시내를 갓 벗어난 고갯마루에 있다. 주변엔 덩그러니 새뜻한 물류창고와 작은 주유소 하나뿐이다. 분명 근처까지는 왔으나 입구가 어딘지, 어디다 주차를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주유소 직원에게 물었다.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가는 길과 도로변 주차할 곳까지 상세히 일러주었다.

알려준 대로 가던 길을 유턴했더니 그제야 갈색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왕복 4차선의 도로변엔 잠시 주차해도 좋다는 듯 갓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대형 버스라면 몰라도, 차량 통행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공간은 된다. 비상등을 켜놓은 채 차에서 내려 골짜기에 들어섰다.

빨갱이 낙인에도 의연했던 김장하 선생
 
진주 명석면 용산고개 학살터 입구에 세워진 낡은 표지판. 같은 내용의 안내판을 왕복 4차선 도로변에도 세워놓았는데, 부러 찾는 경우가 아니라면 눈에 띄지 않는다.
 진주 명석면 용산고개 학살터 입구에 세워진 낡은 표지판. 같은 내용의 안내판을 왕복 4차선 도로변에도 세워놓았는데, 부러 찾는 경우가 아니라면 눈에 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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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숲을 헤치고 오르니 도로변에 세워둔 것과 같은 낡은 안내판이 보인다. 유족회가 세운 것으로, 글자 색이 바래고 벗겨진 채로 방치돼있다. '진주 지역 민간인 학살 현장'이라는 글씨가 나뭇가지 덤불에 가려진 상태다. 봄 지나 여름이 되면 울창한 숲에 덮여 보이지 않을 듯싶다.

유해 발굴이 진행 중이라는 걸 강조하고 있지만, 주변 분위기는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근래 이곳을 찾아온 이가 아무도 없는 듯 골짜기에는 잡풀만 무성하다. 순간 진주시민 중에 이곳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주유소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빨갱이'라는 낙인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는 거다.

민간인 최소 수백 명이 이곳에서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무고하게 학살됐고 유족들은 연좌제에 묶여 수십 년 세월을 피맺힌 고통 속에 살아왔다. 그 역사적 사실이 명명백백 밝혀졌는데도 시민들은 여전히 숨죽인 채 눈치를 보고 있는 셈이다. 부디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유해 발굴 사업이 그들의 잔뜩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돌아오는 길, 다시 초전공원의 민간인 희생자 추모비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느닷없이 '빨갱이'로 내몰려 무참히 학살된 추모비 속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더불어 '빨갱이'라는 낙인에 의연하게 맞섰던 김장하 선생에 대한 존경심도 보탰다.

6.25 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이유였던 '빨갱이'라는 용어가 이젠 10대 아이들끼리의 욕설처럼 쓰이고 있는 듯하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지 하루 만에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동급생에게 조롱하며 내뱉은 말이라고 한다. 한술 더 떠, 그가 다니던 학교의 교장은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자리에서 아이들끼리 흔히 사용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빨갱이'를 욕지거리 삼고 조롱하는 모습을 보며, 역사 교사로서 현대사 교육이 부재한 현실과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질곡의 우리 현대사를 제대로 공부했다면 나올 수 없는 망언이라는 생각에서다. 단언컨대, '빨갱이'라는 맹목적인 혐오를 걷어내지 않고서는 우리 현대사는 결코 바로 설 수 없다. 이곳 진주의 '어른 김장하'가 더욱 위대해 보이는 이유다.
 
용산고개 민간인 학살터에서 내려다 본 풍경. 진주와 산청을 잇는 국도 너머로 진주 시내가 보인다.
 용산고개 민간인 학살터에서 내려다 본 풍경. 진주와 산청을 잇는 국도 너머로 진주 시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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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민간인 학살, #진주 초전공원, #용산고개 민간인 학살터, #과거사 진상규명 위원회,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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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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