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출신 감독이 여럿 있다. 개중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들겠으나 그 말고도 많은 배우가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할리우드만 보더라도 벤 에플렉, 조지 클루니, 안젤리나 졸리가 꾸준히 연출작을 발표한다. 알 파치노, 조디 포스터, 안소니 홉킨스, 멜 깁슨 같은 배우들도 한때 메가폰을 잡은 이력이 있다. 한국에서도 김윤석, 이정재, 하정우 같은 이가 있으니 배우와 감독은 기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한 부문을 넘어 작품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권한은 영화가 곧 감독의 예술임을 입증한다. 이야기와 촬영, 편집, 음악, 연기, 미술 등 영화 안에 들어가는 온갖 것들을 감독이 통제하는 것이다. 캐릭터의 표현을 넘어 작품 전체에 관심을 둔 배우라면 한번쯤 연출에 욕심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호주 출신으로 세계적인 명배우가 된 러셀 크로우 역시 감독을 꿈꾼 배우다. 종종 허술한 각본이나 밋밋한 연출을 트집 잡아 촬영장에서 종종 해프닝을 빚곤 했던 크로우였기에 그가 언제고 감독에 도전할 거란 평가가 끊이지 않았다. 이는 결국 현실이 되어 2014년 <워터 디바이너>를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직접 주연까지 맡은 영화는 상업적 성공과 평단의 평가 모두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포커페이스 포스터

▲ 포커페이스 포스터 ⓒ 와이드 릴리즈(주)

 
러셀 크로우, 그 두 번째 연출작
 
첫 작품 이후 연기에 치중해온 크로우다.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여러 영화에 얼굴을 비췄다. 장르 역시 다양해서 판타지와 로맨스, 코미디와 드라마를 가리지 않았다. 사생활 역시 다사다난, 이혼 뒤 스물일곱 연하의 여성을 만나 세간을 놀라게 했다. 그토록 바삐 달려온 지난 몇 년이지만 그럼에도 갈증은 있었던 걸까. 그는 8년 만에 두 번째 연출작을 내놓기에 이른다.
 
<포커페이스>는 죽음을 앞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온라인 포커게임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대부호가 된 제이크(러셀 크로우 분)가 그 주인공이다. 중년의 나이에 회복 불가능한 췌장암 진단을 받은 그는 어릴 적 가까웠던 친구들을 제 저택으로 불러 모은다. 그렇게 모인 친구는 제이크까지 모두 다섯이다. 제이크는 그들에게 각각 500만 달러(한화 65억 원 상당) 어치 칩을 준 뒤 승자가 모두 갖는 포커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이야기는 점입가경이다. 집 안 와이너리에서 기분 좋게 술을 한 잔씩 하는 듯도 하더니 친구들이 하나둘씩 식은땀을 흘린다. 제이크는 아무렇지 않게 제가 잔에 독을 묻혀놓았다고 이야기한다. 친구들은 경악하지만 제이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뻔뻔하게 행동한다. 영화는 제이크가 왜 그와 같은 행동을 하였는지를 조금씩 풀어내기 시작한다.
 
포커페이스 스틸컷

▲ 포커페이스 스틸컷 ⓒ 와이드 릴리즈(주)

 
거액 걸린 포커판 습격한 무장괴한
 
영화는 거액이 걸린 포커게임판에 무장한 이들이 난입하며 전환점을 맞이한다. 제이크와 친구들은 집 안에 설치된 안전한 공간으로 대피를 하지만 상황은 안심할 수 없게 돌아간다. 침입자들이 포커판에 놓인 불붙은 시가를 발견한 탓이다. 빈집을 털러 온 이들이지만 집 안에 사람이 있단 걸 확인하곤 계획을 달리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일까. 외출했던 제이크의 아내와 딸까지 돌아오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영화는 침입자로부터 제게 중요한 것을 지키는 한 편의 액션영화이며, 친구와 가족 앞에서 죽어가는 이의 선택을 내보이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중 러셀 크로우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관계에 대한 것임이 명백해 보인다.
 
크로우가 두 번째 영화로 포커를 선택한 것도 흥미롭다. 과거 호주에서 도박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도 했던 크로우가 초장부터 부유함을 강조하고 도박의 긴장감도 잔뜩 힘주어 보여주는 이 영화를 찍어냈다는 사실이 낯설게까지 느껴진다.
 
포커페이스 스틸컷

▲ 포커페이스 스틸컷 ⓒ 와이드 릴리즈(주)

 
숨가쁜 전환보다 확실한 메시지

<워터 디바이너>와 <포커페이스>까지, 이제 두 편으로 늘어난 크로우의 필모그래피는 그가 어떤 영화를 추구하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영화적 기교보다는 드라마의 힘을 믿는 듯하다. 숨 가쁜 전환보다는 찬찬히 전해지는 메시지에 더 공을 들인다. 배우 출신이라서 연기에 더 힘을 싣는가 싶게 서사보단 캐릭터 구축에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세련되고 속도감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크로우의 영화가 둔하고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나마도 몇 개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탓에 영화의 완성도 또한 높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그 같은 평가가 절대 틀렸다고 할 수 없을 만큼 <포커페이스>의 단점은 뚜렷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집중하는 이야기가 제법 선명하긴 한 만큼 한 번쯤 시간을 내보아도 나쁠 것은 없겠다. 평생을 연기에 바친 대배우가 직접 메가폰을 들어 만든 영화는 나름의 승부수 한둘 쯤은 감추고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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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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