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27 04:55최종 업데이트 23.03.27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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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젊은 층'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고 참여도가 낮은 것에 대한 한탄은 꽤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 10년도 더 전,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20대가 문제'라는 이야기가 돌았으니 말이다.

정부는 무슨 일을 하는지 국회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던 친구들을 보며 당시에는 나 또한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약간의 비약을 감수하고 추측해본다면 지금은 이해가 된다.


일단 내가 10대 시절 받은 한국의 공교육은 학생들에게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그리 강조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정치 제도에 대한 교육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부분 형식적인 선에서 그쳤고 그러니 제도는 잘 이해하지만 정치적 의견을 가지고 있는 또래는 전무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이만 먹는다고 사람이 달라질 리가 있을까.

다른 이유도 있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던 친구들은 종종 '정치가 어렵다'는 말을 하곤 했다. 맞는 말이다. 정치는 어렵다. 정당과 정치인에 따라 사람들의 의견이 정말 다양한데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무엇이 답인지 판단하기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정치적인 의견이 없는 건 아니지만 판단을 유보하는 경우도 정말 많다. 모르거나 알아도 어렵거나. 하지만 그것이 정치의 단점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정치가 어렵고 복잡한 건 필연적이다. 정치는 사회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고 사회적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인 개인과 집단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 대립과 충돌은 당연하고 조정과 협상은 필수다. 공존을 지향하는 정치의 언어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엉뚱해 보이는 해답에서 발견한 위험

여기서 잠시, 정치가 필연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말을 반대로 뒤집어보자. 이는 정치가 단순하고 쉬울수록 본연의 성질에서 멀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독재'는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쉬운 통치 방식이 아닐까. 권력 분립도 복잡한 의결 과정과 통치 체제도 없다. 그러다 보니 토론도 협상도 표결도 없다(형식적으로는 있을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없다).

하지만 독재는 이걸 '정치 체제'라고 불러도 괜찮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것이고 사실 그렇게 분류해서는 안 되는 체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골머리를 앓다가 관심을 거두는 일이 생긴다고 해도 정치는 어렵고 복잡한 게 낫다.  

이런 맥락에서 얼마 전 발견한 소식을 공유하고 싶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외국인 가사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는 내용 등을 담은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소식이다. 월 100만 원의 임금을 지급하고 가사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건 표면적으로 보기에도 반(反)인권적인 문제가 많은 발상으로 보이는데, 아니나 다를까 법안이 논란을 빚자 공동발의에 참여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2명이 이탈해 법안이 철회됐다가 같은날 국민의힘 의원 2명이 바로 가세해 재발의됐다.

외국인 노동자는 물론 가사 노동자의 삶의 질을 현격히 낮추는 것 외에 이룰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이런 법안을 왜 발의했을까. 궁금증에 살펴보니 조 의원은 이 법안을 통해 육아를 하는 맞벌이 가정이 일과 가정의 양립이 위협 받는 문제를 해결하고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 남소연

 
기사를 읽고 처음에는 궁금증이 들었다. 뻔히 놓여 있는 문제를 외면하고 왜 저 단계까지 가서 답을 찾으려 했을까. 육아를 하는 맞벌이 가정에서 일과 가정의 양립에 어려움을 겪어 결국 여성이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는 걸 막으려면 이미 주장된 해법만으로도 가능하다. 일단 노동 시간을 줄이고 출퇴근 유연제를 정착시키면 된다. 맞벌이를 하는 다른 한쪽, 남성들 또한 육아와 가사 노동을 공평히 분담하도록 만들면 된다.

공공보육 시설을 확충하고 보육 교사들이 과로 없이 자신의 전문성을 충실히 발휘할 수 있도록 인력을 충원하고 급여를 적정한 수준으로 지급하면 된다. 즉, 여성에게 할당된 육아와 가사 노동의 무게를 분담하고 그 일을 할 시간을 주면 된다. 이런 해결책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오랜 시간 주장되어 왔다. 외국인 가사 노동자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왜 조정훈 의원은 엉뚱한 곳에서 말도 안 되는 '해법'을 찾으려고 한 걸까. 너무나 궁금한 마음에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며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러자 내 이야기를 듣던 동료 하나가 이렇게 얘기했다.

"제일 간단하잖아요, 누구도 설득할 필요가 없고 대부분 강하게 반대하지 않을 거고."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그 말이 맞았다. 노동 시간을 줄이려면 결국 기업과 협상해야 한다. 공공시설과 운영인력 확충을 위해 세금을 더 쓰려면 정부 부처는 물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맞벌이 부부 중 유독 여성에게만 육아와 가사노동의 쏠림이 심한 문화를 바꾸려면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을 설득해야 하고 사실 그들 중 대다수는 남자들일 것이다.

논쟁도 협상도 없이 간단히 해결?

하지만 그들이 순순히 정치인의 말을 따를까. 당연히 반대와 반발이 심하고 비난과 공격까지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고 가사와 노동을 맡길 수 있도록 만들면 앞서 말한 모든 저항을 피함과 동시에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를 '해결'했다는 '정치적 치적'을 쌓을 수 있다(물론 실질적으로는 해결이 아니라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다).

갖은 편법을 동원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말도 안 되는 저임금으로 부려 먹는 일이 지금도 한국 사회에는 비일비재하다. 또한 이런 상황에 자주 노출되는 동남아시아권 외국인이나 한국계 중국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도 심한 편이다. 매우 슬프게도 이런 이들에게 최저임금조차 주지 말자고 주장한들 강한 반발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들은 한국 사회의 약한 고리다.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켜 문제를 해소하고 어떠한 논쟁도 협상도 하지 않는 것. 이건 아주 조용하고 간단한 문제 해결 방식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보자. 이런 행위를 과연 진정한 의미의 정치라고 볼 수 있을까.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보면 지금과 같은 일들은 종종 벌어져 왔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과정도 비인간적이었거니와 결국에는 정치를 오염시켜 사회가 파국으로 치닫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단순한 기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한국 사회는 지금도 특정 국가 출신의 외국인을 비롯하여 사회적 약자에 대한 멸시와 배제가 심한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은 기울어진 사회의 반대편에서 무게를 잡고 모두가 함께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 과정이 아무리 복잡하고 어렵고 격렬하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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