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도연, 정경호 주연의 tvN 새 주말드라마 <일타스캔들>이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일타스캔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건 아니다. 주연배우 전도연의 전작이었던 jtbc드라마 <인간실격>이 2%대의 시청률로 종영했고 영화 <비상선언> 역시 200만 관객에 그치는 등 최근 전도연의 흥행성적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닐슨코리아 및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전도연은 마치 21년 전에 출연했던 SBS 드라마 <별을 쏘다>의 한소라를 연상케 하는 사랑스러운 매력을 뽐내면서 단숨에 시청자들을 사로 잡았다. 전도연이 조카 남해이(노윤서 분)를 딸처럼 키우며 일타강사와 사랑을 키우는 남행선 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일타스캔들>은 4%의 시청률로 시작해 17%의 높은 시청률로 막을 내리며 '전도연 파워'를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일타스캔들>을 성공적으로 끝낸 전도연은 3월의 마지막 날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변성현 감독의 신작 영화 <길복순>에서 전설적인 킬러로 변신할 예정이다. 전도연은 연기하는 캐릭터마다 새로운 매력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데 그런 그녀의 대표작 한 편을 꼽으라면 아마도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선택할 것이다.

전도연에게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안겨준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다.
 
 <밀양>은 미 영화평론사이트 로튼로마토에서 신선도 점수 94%를 받았다.

<밀양>은 미 영화평론사이트 로튼로마토에서 신선도 점수 94%를 받았다. ⓒ 시네마 서비스

 
한국영화와 칸 영화제의 깊은(?) 인연

지난 1946년부터 개최된 칸 영화제는 이탈리아의 베니스 영화제, 독일의 베를린 영화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3대 국제 영화제로 불린다. 한국영화가 1960년대부터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소식을 전해왔고 베니스 영화제에서도 1987년 <씨받이>의 고 강수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과 달리 칸 영화제에서는 1990년대까지 수상은커녕 장편영화 경쟁부문에 작품을 진출시키지도 못했다.

그러던 2000년 한국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을 통해 처음으로 칸 영화제 장편영화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2002년에는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며 칸 영화제와의 인연에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2004년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를 통해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당시 황금종려상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이었다).

<올드보이> 이후 3년이 지난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이신애를 연기한 전도연은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칸 영화제에서 아시아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2004년 <클린>의 장만옥 이후 전도연이 역대 두 번째였다. 한국영화는 2009년 박찬욱 감독이 <박쥐>로 심사위원상, 2010년 이창동 감독이 <시>로 각본상을 수상하며 칸 영화제에서의 강세(?)를 이어갔다.

한국은 2010년대 들어 임상수 감독의 <하녀>와 <돈의 맛>,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와 <그 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이창동 감독의 <버닝> 등이 경쟁부문에 진출했지만 수상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그렇게 8년 동안 무관에 머물렀던 한국영화는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우수작품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기생충>은 기세를 몰아 이듬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4관왕을 차지했다.

2022년은 한국영화의 칸 영화제 도전사에서 최고의 경사를 누린 해였다.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배우 송강호는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한·일 합작영화 <브로커>를 통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미 칸 영화제에서 두 번의 수상 경력이 있는 박찬욱 감독도 박해일, 탕웨이 주연의 <헤어질 결심>을 통해 감독상을 수상했다. 

전도연의 열연, '비밀의 별' 돼 준 송강호
 
 전도연은 실제 아이를 잃은 듯한 엄마 연기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전도연은 실제 아이를 잃은 듯한 엄마 연기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시네마 서비스

 
영화 <밀양>은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서편제>와 <축제>의 원작 소설을 쓴 고 이청준 작가가 1985년에 쓴 단편소설 <벌레이야기>를 이창동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이다. 2002년 <오아시스>를 통해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배우 문소리를 베니스 영화제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상(신인 배우상)의 주인공에 올려 놓은 이창동 감독은 <밀양>으로 전도연을 '칸의 여왕'으로 만들었다.

영화 제목인 <밀양>은 경상남도에 위치한 밀양시에서 따온 것으로 '비밀의 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칸을 비롯한 해외에서 상영될 때는 < Secret Sunshine >이라는 영어제목으로 번역됐다. 하지만 각본을 쓴 이창동 감독은 밝기는 물론이고 온도도 함께 포함하고 있는 '볕'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한 영문 제목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만큼 '볕'이 주는 따스한 느낌은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밀양>의 가장 큰 감상포인트는 전도연과 송강호라는 대배우들이 보여준 발군의 연기다. <밀양>으로 칸 영화제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휩쓴 전도연은 유괴사건으로 아들을 잃고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는 이신애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특히 아들의 유괴범 면회를 다녀온 후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 인간을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라고 절규하는 장면은 전도연이기에 가능했던 엄청난 호연이었다.

<반칙왕> 이후 출연했던 대부분의 영화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을 연기했던 송강호는 <밀양>에서 오랜만에 스토리의 중심에서 벗어나 심한 트라우마를 겪는 신애를 지켜 보는 카센터 사장 종찬을 연기했다. 지금까지 송강호가 출연했던 영화들에 비해 캐릭터가 지나치게 평범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언제나 신애의 편을 들어주고 신애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일편단심 연기로 종찬은 신애가 기댈 수 있는 '비밀의 볕'이 돼 주었다.

<밀양>은 유괴 살인자가 신에게 용서를 받았다고 고백하는 내용과 주인공 신애가 신에게 맞서는 듯한 이야기 때문에 '개신교를 모함하는 영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밀양>은 종교를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라 종교를 받아들이고 이용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 가깝다. 실제로 종찬은 신애가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교회를 꾸준히 다니고 영화에 등장하는 개신교인들은 대부분 신애의 어려움을 도우려는 선량한 인물로 나온다.

피해자 아닌 신에게 용서를 구한 가해자
 
 신애의 아들을 죽인 유괴 살인범 박도섭은 평온한 표정으로 신애에게 "나는 하나님에게 용서 받았다"라고 이야기한다.

신애의 아들을 죽인 유괴 살인범 박도섭은 평온한 표정으로 신애에게 "나는 하나님에게 용서 받았다"라고 이야기한다. ⓒ 시네마 서비스

 
박찬욱 감독이 '영화 역사상 가장 잔인한 장면 중 하나'로 평가했던 <밀양>의 면회 장면은 실제로 극장을 찾은 많은 관객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아들을 유괴하고 살해한 범인을 용서하기 위해 용기를 내 면회를 갔지만 범인에게 "저는 이미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 마음이 편안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어머니의 마음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신애가 영화에서 감당하기 힘든 큰 충격을 받은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었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90년대 후반부터 영화로 활동범위를 넓힌 배우 조영진은 <밀양>에서 용서할 수 없는 악역연기를 선보였지만 그가 모든 작품에서 악역 연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는 김지영과 조은지가 속했던 핸드볼 감독으로 출연했고 <바람>에서는 정우가 연기했던 짱구의 아버지로 출연해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부당거래>의 김회장 역시 관객들의 뇌리에 남은 배우 조영진의 대표작이다.

<밀양>에는 당시 비중이 작은 조·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오늘날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들도 많이 출연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양철 회장을 연기한 이성민은 종찬과 친구로 지내는 주방장 역으로 출연했고 <더 글로리>에서 강현남 역을 맡았던 염혜란은 신애의 시동생 역으로 짧게 등장한다. <밀양>에서 신애와 유괴범 면회를 함께 가는 박명숙 역의 장혜진은 12년 후 <기생충>에서 종찬 역의 송강호와 부부로 재회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밀양 이창동 감독 전도연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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