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간의 경제활동의 부산물은 '재화'라고 이야기한다. 재화의 구분은 개인과 사적인 소유인지 아니면 공동과 사회의 소유인지에 대해서 크게 '사적재'와 '공공재'로 나뉜다. 아주 쉬운 용어와 개념 정의다. 그러나, 쉽고 간단한 설명이 늘 유효한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 사회의 공공 서비스와 자유경제 활동에 대한 이슈로 '공공재'라는 용어가 밑도 끝도 없이 쓰인다.
공공재(public goods)란?: 
'정부의 재정으로 공급된 재화나 서비스'로 개인 모두가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다. 즉, 사적재(private goods)에 비해서 소비의 비(非) 경쟁성(non-rivalness) 과 비배제성(non-excludability)이라는 2가지 특징을 갖는 재화나 서비스를 공공재 또는 집합재(collective goods)라고 한다. 비경쟁성(또는 공동 소비성)이란 어떤 개인이 일정의 재화를 소비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동일한 재화의 소비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비배제성이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그 재화가 공급되는 것을 가리킨다. -두산 백과사전-
   
비경쟁성과 비배제성이 일상의 용어가 아니다 보니 좀처럼 감이 오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면 교통 신호등은 이 2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공공재의 예로 들 수 있다. 신호등의 신호는 그 지점을 통과하는 차량 등이 그것 덕분에 사고의 우려 없이 통행할 수 있는 것으로서 다른 차량도 마찬가지로 그 신호등의 혜택을 받는 것에 어떤 방해도 끼어들 수 없다. 그래서 비경쟁적이다. 또한 신호등이 있는 지점을 통행하는 차량과 행인이라면 누구든 그 신호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비배제적이다.

여기까지 멈추게 되면 어설픈 학습에 그치고 만다. 가끔 어설픈 학습과 지식은 용감한 무지를 드러내게 된다. 공공재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라는 정의는 딱 중학생용이다. 공공재에 대한 해석과 정의는 경제의 범주를 넘어섰다. 공공재의 해석은 정치의 영역이다. 공공재에 대한 정치적 해석은 '정부의 재정, 혹은 공공의 재정'으로 구성원의 정치적 동의를 거친 비경쟁성과 비배제성을 지닌 재화와 서비스를 말한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만 충족하는 '혼합재'도 공공재의 영역으로 함의한다.

공공재에 관한 이론은 원래 폴 사무엘슨(Paul Samuelson) 등 일부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렇지만 현대의 정치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 된 지 오래다. 이유는 경제의 가장 기본 핵심인 '시장'의 기능이 공공재에서는 발휘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는 이유는 '이기적'이라는 표현과 맞물린다. 합리적인 시장 경제활동은 공공재에 대한 부담을 가능한 회피하고 편익만 최대로 누리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은 시장경제의 코어다. 그렇게 된다고 보면 사람들은 이른바 '무임승차 행동(free riding)'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장주의자들과 소극적 공공주의자들은 공공재를 딱 중학교 수준의 정의에 머물게 하고 싶어 한다. 정부가 제공하는 재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렇게 되면 여러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대의 국가들은 공공의 재화와 서비스는 수익자인 국민이 세금을 지불하고 중앙 혹은 지방 정부가 시장을 대신하여 집행하는 구조를 가진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정치의 역할로서의 공공재의 공급이 대두된다.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의 수정론에서 1980년대 이후에 정교화된 신 제도론에 이르기까지 현대 정치학의 기초가 되는 문제의식을 함께 한다.

정치가 필요한 이유

앞에서 정의한 공공재의 두가지 특징을 완전하게 충족시키지 않는 재화도 있다. 그것들을 순수 공공재, 순수 사적재로 구별하여 혼합재 등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가스와 전기 같은 자원 서비스가 있다. 소비자들에게 누구나 사용에 접근할 수 있는 비경쟁성은 충족시키고 있지만, 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기에 비배제성을 유지하지는 못한다. 반대로 '코로나19 지원금'의 경우는 한정된 예산의 소진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대상이 되는 소상공인들에게는 비배제적이지만 손실의 정도나 선착순, 그리고 시급성에 따라 지급 우선순위가 결정되기에 비경쟁성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재화에 대해서는 수익자가 '모두'나 '전부'가 될 수 없다. 순수한 공공재와는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한 재화의 공급을 어느 수준까지 정부가 담당하고 어디서부터는 민간 부문에 위임할지 선택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재화에 대한 효율성과 더 많은 대상이라는 보편성이 부딪히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과 실행의 평가를 둘러싼 입장과 견해의 대립이 발생한다. 그래서 '큰 정부', '작은 정부' 같은 정치적 지향의 문제가 된다. 

지금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가 의료 서비스를 어떻게 보는가다. 의료는 혼합재적 공공재가 확실하지만, 이를 둘러싼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대립하고 있다. 큰 정부론에서는 의료는 순수 공공재로 확정하여 공공의료와 의료보험 등 사회 보장성 보험의 확대를 주장한다. 반대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의료 공급자들은 "의료는 공공재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엄연히 시장이 존재하는 사적재의 교환 재화라는 입장이다. 절대적인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다. 다만 정치적인 판단과 선택이 중요한 지점이다.

공공재의 개념을 정치학에 체계적으로 도입한 것은 집합행위 이론을 제창한 맨커 로이드 올슨(Mancur Lloyd Olson)이다. 사람들이 집단을 조직하거나 집단에 참여하는 근본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전의 사람들은 사람들이 집합을 구성하는 이유가 '공명심'이라고 단순화했다. 그러나 올슨은 일부의 경제학에서 적용된 집합재(集合財)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개념을 정의했다. 집단이란 구성원이 누릴 수 있는 집합재를 제공하기 위해 형성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의 조직 이유가 '임금 인상'이라고 가정한다면, 조합은 조합원 모두라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는 집합재를 제공하는 집단이어야 한다. 그러나 조합원 한 사람이 지불하는 조합비는 아주 작기 때문에 자신이 지불하지 않아도 집합재를 누리는 데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무임승차 행동은 번지게 되어 노동조합 기능이 마비된다. 이를 확대하면 사회 기반 인프라는 물론 정책과 안전보장 동맹 까지 이런 집합재를 누리는 입장에서 설명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앞의 설명을 기반으로 볼 때. 정치의 측면에서 공공재라고 언급한 경우 이 혼합재를 가리키고 있는 경우로 받아들여진다. 구성원의 숫자나 분류로 분리되어 취급될 수 있는 공공재는 순수 공공재가 아니다. 몇 해 전에 여성 생리대에 대한 개념을 공공재로 볼 것인가에 대하여 지금의 야당 대표와 보수 정치인 사이에 뜨거운 공방이 있었다. 생리대는 여성이라면 대체로 필수적으로 필요한 재화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생리대는 수요, 공급의 한계로 비경쟁성을 상실할 수도 있고 가임기 여성이라는 국한된 집단에 해당하므로 비배제성을 내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재화에 대해서는 수익자가 어느 정도 한정되기 때문에 순수한 공공재와는 다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한 재화에 대해서는 그 공급을 어디까지 정부가 담당하고 어디까지를 민간 부문에 위임해야 하는지, 그것은 어떻게 하면 재화가 효율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지에 문제가 도출된다. 이의 해소를 위해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적 함량이란 이 지점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관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관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대통령실 제공

관련사진보기

시장주의자의 큰 정부론을 어떻게 믿을까

최근 금융기관의 '돈놀이, 성과급 잔치' 논란이 거듭되었다.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져 가는데 정작 금융기관, 특히 시중은행들의 이자 수익 등 이익은 연일 우상향을 찍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대통령이 직접 '은행은 공공재의 성격'이라고 꼬집으며 은행들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은행업은 본디 공공에서 시작한 것은 맞다. 그리고 국민들의 일상과 국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공공성에 대한 논의는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섣부르게 공공재라고 정의하는 일은 좀더 신중해야 한다. 은행은 누구나 접근하여 이용할 수 있는 비경쟁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정부가 그를 보전하거나 지원할 수도 없다. 또한 대출이나 예금의 대상을 제한하고 분리한다고 해서 그들의 사업에 태클을 걸 수도 없기에 은행업은 비배제성을 유지할 수 없다.

은행이 마치 공공재처럼 느껴지도록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에는 정부의 역할이 필연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모습이 '관치' 즉 정부가 은행을 지배하는 형태는 곤란하다. 은행업이 주도하는 대출과 기타 금융서비스를 정부가 어디까지 공공으로 흡수할 것인지, 거기에서 도출되는 재화의 한계를 어디서부터 민간에 위임할지 새로운 판을 설계하는 것부터가 필요하다. 진보 진영에서 이야기해온 '시민은행'이나 '국민 주주은행'에 대해 철저하게 시장 논리로 반대해온 현 정권과 여당이 갑자기 '공공재 논리'를 앞세운 데에선 심한 비약과 왜곡이 드러난다.

은행이나 병원을 공공재로 규정하여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은 정치적인 방향이다. 그러나 일관된 정치 방향이 적용되어야 한다. 어느 자리에서는 시장주의자가 되었다가 다른 자리에서 큰 정부론을 이야기하는 정부는 신뢰할 수 없다. 문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함에 있을 수도 있다. 대한민국 정치의 문제는 진보와 보수,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립이 아니라 진정한 '정치 활동'이 실종된 데에 있다.

태그:#공공재, #은행, #정부정책, #윤석열, #자유시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로벌 IT컴퍼니(IBM, NTT)에서 비즈니스 디벨로퍼로 퇴직 ; 바람들어 사랑하는 아내 여니와 잘 늙어 가는 백수를 꿈꾸는 영화와 야구 좋아라하는 아저씨의 끄적임. 정치.경제.사회 그리고 일상에 대한 글을 나눕니다. <원순씨를 부탁해>의 저자. 다수의 독립잡지에 영화, 드라마 리뷰, 비평 작성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