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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대학에 들어가 공부는 뒷전이었다. 동아리 활동에 푹 빠졌다. 매일 선후배와 도원결의하듯 어울려 다녔다. 중학교 때 독학으로 배운 기타를 맘껏 쳤다. 덕분에 학교 축제 때 노래하거나 대학가요제 출전 기회를 얻었다. 

또 다른 행운은 노래하다 시를 처음 접한 것이다. 당시 입학하거나 졸업하면 책과 시집을 선물하거나 받는 것이 유행이었다. 난 시집을 책장 어딘가에 처박아놓았다. 선물한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시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후회하는 것이 젊었을 때 시를 감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 무렵 송창식 가수가 '그대 있음에'라는 곡을 발표했다. 김남조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송창식 팬으로 그 곡을 즐겨 불렀는데 가사가 유명한 시였다니 새삼 놀랐다.

아마추어 가수가 선곡한 노래를 섭렵하려면 가사에 대한 해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대 있음에'는 다른 유행가 가사와는 느낌이 달라 국문과 친구의 도움을 얻어 시가 담고 있는 뜻을 배우기도 했다.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 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리움이여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 잡게 해"


김남조 시인은 내가 대학시절 노래할 때 다가왔고 '그대 있음에'는 내가 알고 있는 시의 전부인 양 기억한다. 시인은 지금까지 <목숨>, <겨울바다>, <사랑초서>, <시로 쓴 김대건 신부>, <충만한 사랑> 등 19권의 시집을 냈다.

1927년생인 원로시인이 오랜만에 우리 곁에 나타났다. 자신의 시에 중견화가 윤정선(52) 그림을 초대해 우리 마음 안에 숨어있는 사랑의 감성과 의지를 불러내고 있다. 성큼 다가온 봄에 어울리는 시화전이다. 
 
김세중미술관 기획시화전
 김세중미술관 기획시화전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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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김남조 시인의 <편지> 옆에 윤정선 화백이 그린 <편지를 부친 뒤>가 있어 시상(詩想)이 풍성하게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김세중미술관 기획시화전
 김세중미술관 기획시화전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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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중미술관 기획시화전
 김세중미술관 기획시화전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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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시인은 새봄에 어울리는 시 하나를 특별히 소개하고 있다. 

<다시 봄에게>

올해의 봄이여
너의 무대에서
배역이 없는 나는 내려간다
더하여 올해의 봄이여
내게 다른 연인이 생긴 일도
나는 알아 버렸어
(중략)
올해의 봄이여
너의 새순에 소금가루 뿌리러 오는
꽃샘눈 꽃샘추위를
중도에서 나는 만나
등에 업고 떠나고 지노니


김남조 시인의 시화전 <사랑하리, 사랑하라>전이 서울 용산구 김세중미술관에서 5월 7일까지 열리고 있다. 김원영 학예실장은 "2006년에 출간된 시화선집 중에서 30여 점의 아름다운 시와 그림을 골라 전시했다"고 말했다.
 
김세중미술관 중심에 상수리나무가 있다. 나무 사이에 김세중 조각가 작품인 유엔자유수호상이 보인다.
 김세중미술관 중심에 상수리나무가 있다. 나무 사이에 김세중 조각가 작품인 유엔자유수호상이 보인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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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중미술관 3층에는 김세중 조각가가 1968년에 만든 이순신 장군상이 있다.
 김세중미술관 3층에는 김세중 조각가가 1968년에 만든 이순신 장군상이 있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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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중미술관 3층에는 김세중 조각상 수상작품들이 전시돼있다.
 김세중미술관 3층에는 김세중 조각상 수상작품들이 전시돼있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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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동네 곳곳에 '숨어있는' 미술관이 있다. 김세중미술관이 그런 곳이다. 3층 키보다 훨씬 큰 상수리나무가 미술관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나무를 중심에 두고 설계했다. 미술관 역시 이순신 장군상을 만든 김세중(1928~1986) 조각가 명성답게 깎고 다듬었다.

시화전을 보고 김세중 조각가 작품과 김세중 조각상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 가옥은 2014년 서울시로부터 '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우리 곁에 화사한 봄꽃만 있지 않다. 시화전과 함께 조각 작품을 마실 가듯 구경하면 좋겠다. 관람료 무료.

주요 지리정보

태그:#김남조 시인, #윤정선 화백, #사랑하리 사랑하리, #그대 있음에, #김세중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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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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