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28 11:59최종 업데이트 23.03.30 11:09
  • 본문듣기
저는 27년 간 종사한 기자생활을 끝내고 지난해 9월부터 노가다를 시작했습니다. 말로만 듣고, 눈으로만 스쳐지나가던 막노동을 하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인생의 희로애락을 몸소 체득하고 있습니다. 몇 차례에 걸쳐 직접 겪은 땀의 현장을 전합니다.[기자말]

현장 게이트를 빠져나온 노동자들이 퇴근 길을 재촉하고 있다. ⓒ 나재필

 
"주말이면 영국인들은 리치먼드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서 줄을 선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보트 줄을 서고, 차 마시기 위한 줄, 아이스크림 줄, 그다음엔 그냥 재미 삼아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줄을 선다. 그리고 다시 버스 정류장에서 줄을 서고 시간이 남으면 그제야 자기 삶을 위해 시간을 보낸다." - 조지 마이크의 <외계인이 되는 법>의 일부
 

영국인은 줄 서는 데 평생 6개월을 쓴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줄서기는 '국가적 열정'이다. 줄서기는 의무가 아니라 습관처럼 변했다. 옛 소련(러시아)에선 국민들이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연간 400억 시간을 줄서기로 허비한다는 분석도 있었다. 1인당 연 200시간 이상 줄을 선 셈이다.

내가 일하는 대기업 반도체증설 공사현장(일반 건설 현장이 아님)도 날마다 줄서기 전쟁이다. '줄서기에서 시작해 줄서기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노동 현장은 줄서기 전쟁터

콩나물 시루 통근버스서 내린 노동자들은 공장 출입구부터 줄을 선다. 게이트 입구를 통과할 땐 사진촬영을 봉쇄하는 스마트폰 스티커 부착 여부를 검사받는다. 근로자들이 밀릴 경우 자연스럽게 줄이 생긴다.


또 주차장에 주차하기도 쉬운일은 아니다. 주차장이 넓은데도 차를 수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일부는 주차전쟁을 피하기 위해 출근을 1~2시간 앞당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도로변, 화단, 인도, 풀숲 등 장소를 안 가리고 틈만 있으면 바퀴를 걸쳐놓는다. 불법주차 딱지를 떼이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이렇게 되면 0.5공수(7만~8만 원)가 사라지니 일할 맛이 떨어진다.

차(車) 줄서기는 퇴근 때 더 극심하다. 1분이라도 더 빨리 빠져나가기 위해서 주차장 일대는 아수라장이다. 러시아워와 맞물려 그야말로 혼비백산이 된다.

점심시간도 줄서기는 이어진다. 1시간에서 2시간 가량 흡족하게 주어지는데 30% 이상 줄서기로 허비한다. 노동자들은 게이트 밖 식당을 향해 종종걸음친다. 어떤 이는 뛰어가기도 하고,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 5~10분은 줄을 짧게 서느냐, 길게 서느냐의 갈림길이다. 자칫 방심했다간 지옥의 줄서기를 맛보게 된다. 30m 이상 늘어진 줄을 보노라면 입맛도 달아날 지경이다.

수많은 노동자의 입을 감당할 식당은 3~4곳뿐이다. 밥 먹는 것이 전쟁이다. 식당 안도 줄서기다. 식권을 내거나 장부에 사인을 하는 것도 줄, 식판에 음식 담는 것도 줄, 빈자리를 찾아가는 것도 줄, 먹고 난 후 잔반 버리는 것도 줄, 커피믹스 자판기 앞도 줄이다.

편의점에서도 불편한 줄서기는 계속된다. 먹고 싶은 거 고를 때도 줄, 계산할 때도 줄, 컵라면 물 받는 것도 줄, 전자레인지에 넣는 것도 줄이다. 특히 전자레인지의 경우 5분 이상 사용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줄 서다가 지친다. 나도 컵라면과 햄버거를 데우지 않고 먹은 적이 여러 번 된다. 그건 끼니가 아니라 허기만 살짝 비껴가는 요식행위다. 노동자들이 입사 전 필수적으로 거치는 간이 건강검진센터도 한 바퀴 돌려면 줄·줄·줄이다. 음료수 자판기 앞도 줄, 정수기 앞도 줄이다.

인분 아파트, 현장에 화장실은 몇 개였을까

줄서기의 가장 큰 고초는 화장실이다. 2000명대의 근로자가 이용하는 화장실은 20여 개 안팎에 불과하다. 한창 공사가 활황일 때 근로자는 1만 2000여 명에 달했다. 아침 출근길에 보면 무언가를 배급받는 사람들처럼 장사진을 이룬다. 컨테이너를 8~9개 이어 붙인 화장실은 안쪽에 4~5개의 구역으로 또다시 나뉜다.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특이한 반수세식이다.

줄 선 사람들의 표정은 절박하다. 출근 전 뱉어내지 못한 어제의 꿈 조각들을 괄약근으로 막아내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듯하다. 참다 참다 다급한 사람은 '빨리 좀 나와~~~요'라며 다그친다. 그러나 요지부동(똥)이다.

'오, 하느님~~~' 마음속에 없던 종교까지 생긴다. 실제로 화장실 안에는 '빨리 좀 싸라 OOO, 그러는 너나 빨리 싸라'는 문구와 '오, 제발, 제발~~~'이라는 읍소형 문구가 고통스러운 '싸기'의 시간을 대변해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이다.

하지만 이미 화장실 안 똬리를 튼 당사자는 문밖의 절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스마트폰 탓이다. '볼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세상사 돌아가는 '볼일(뉴스)'들을 느긋하게 즐긴다. 이 때문에 대다수는 출근 전에 집(숙소)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이곳 현장에선 최근 발생한 이른바 '인분아파트'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당시 입주민들은 어디선가 악취가 나자 현장조사를 의뢰했고, 그 결과 마감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인분을 아파트 천장 등 내부에 숨겨놓은 사실이 확인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어려운 행동이지만 동시에 그 현장은 화장실이 몇 개였을까,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을까 싶어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부실 시공과 인분 논란이 노동자들을 향한 손가락질 대신 노동 현장에 대한 재정비로 이뤄지길 바란다. 물론 여기에는 먹고 싸는 등 인간의 기본 욕구를 인간답게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줄서기는 공중도덕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다. 그러나 내 앞의 숫자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짜증은 물론 혈압이 차오른다. 순서가 늦게 오면 제때 생리적인 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니 몸속에서 참을 인(忍)이 새겨진다. 줄서기는 '언젠가'라는 단서가 붙지만 반드시 내 차례가 온다는 희망 때문에 가능하다.

정치권이나 권력에서의 줄서기와는 질감도 다르다. 정치꾼들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비겁한 줄서기를 한다. 하수인을 자처하니 간과 쓸개까지 빼서 바친다. 아부의 줄이다. 굳이 정의하자면 '줄서기'라기 보다는 '줄 대기'에 가깝다.

그들의 줄은 잘되면 순서가 바뀌는 절묘한 새치기이지만, 잘못 서면 이용당하다가 버려진다. '쓸모'와 '쓸모없음'이 한순간의 줄서기로 유명을 달리한다. 노가다 현장의 줄서기는 때때로 지겹고 불편하지만 내 줄은 곧 내 순서가 되니 손해 볼 장사가 아니다.

서로의 바람을 막아주는 노동자 펭귄
 

노동자들이 줄지어 출근하고 있는 모습. 지금은 공사가 막바지라 다소 한산한 모습이다. ⓒ 나재필

 
줄서기의 절정은 퇴근이다. 퇴근하려는 사람들이 게이트에 한꺼번에 몰리면 길게는 100m 이상의 줄이 생긴다. 개중엔 새치기하려는 사람도 종종 있다. 그럴 땐 '뭐야, 저 쥐새끼'라며 험한 소리가 오가기도 한다. 특히 혹한 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노라면 악소리가 난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지난 겨울 어느 날 밤, 퇴근을 위해 긴 줄 속에 묻혀 있는데 야간조명이 달덩이처럼 빛났다. 그런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치 남극의 펭귄 같았기 때문이다. 서로의 등에 의지한 채 한풍을 막고 체온을 유지하는 극한의 생존법이 본능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바로 허들링(huddling)이다.

노동자 펭귄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열과 오를 맞춰 중앙으로 모였다. 안쪽 펭귄은 자신보다 바깥에 있는 펭귄들이 눈 폭풍을 막아줘 상대적으로 따뜻하다. 물론 바깥쪽 노동자 펭귄들은 눈 폭풍을 맨몸으로 견뎌야 한다. 때로는 미어캣처럼 머리를 쭉 빼고 게이트 쪽을 바라보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 먹고 살기 힘들다. 누군가에게는 이 함박눈이 낭만일 테지만, 칼바람을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노동자들에겐 그저 설국의 줄서기일 뿐이다.'

오늘도 노동자들은 길게 줄을 선다. 미증유의 그 줄은 내 생을 지탱하는 하루짜리 동아줄이다. 내 앞줄은 어느 이름 모를 가장의 '등'이다.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지, 어느 아픔을 안고 있는지 모르지만, 열심히 살아가려는 소시민의 무거운 등짐이다. 

타인의 등짝을 보며 살아간다는 건 내 등짝의 무거움을 확인하는 일이다. 내 등은 사막의 쌍봉낙타와 닮았고,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야크와 닮았다. 오늘도 가족의 건사를 짊어진 채 비탈길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으니 그렇다. 오늘도 이 한마디를 읊조린다.

"그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결과는 아무도 모르니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