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진짜가 나타났다>의 한 장면.

KBS2 <진짜가 나타났다>의 한 장면. ⓒ KBS2

 
KBS2 TV의 토, 일 8시 주말드라마는 스테디셀러였다. 이 문장의 '였다'처럼, 이제 KBS2 주말 드라마의 인기는 과거형이 되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진짜가 나타났다>는 20% 내외의 시청률을 오르내리며 고전하는 중이다. 요즘처럼 공중파 시청률이 '가뭄'인 때 20%라면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말 저녁 온가족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편하게 즐기던 30~40%를 넘나들던 주말 드라마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온가족이 모여앉아 보던 시대가 흘러서?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 시간에 이제는 더 재미있는 예능을 많이 하니까?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외적 요인을 넘어서, 주말 드라마 자체의 딜레마가 시청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아닐까? 
 
<진짜가 나타났다>, 그 태생적 딜레마 
 
 KBS2 <진짜가 나타났다>의 한 장면.

KBS2 <진짜가 나타났다>의 한 장면. ⓒ KBS2

 
<진짜가 나타났다>를 시청하다 도대체 누가 저런 설정을 만들었을까 의아해서 찾아봤다. <공주의 남자>와 <너도 인간이니?>를 쓴 조정주 작가였다. 당대의 인기 드라마이고, 나름 문제작이었던 드라마였는데, 주말 드라마라는 허들이 작가에게는 너무 높았던 것일까? 

주말 드라마라 하면 떠오르는 설정이 있다. 할머니에서 중, 장년, 그리고 젊은 세대까지 대가족이 얼크렁 설크렁 어우러져 해프닝이 벌어지고, 결국은 가족의 행복을 찾아간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그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최근 드라마들에 이르러서는 거의 스릴러급이다. 2017년 45%를 넘는 시청률로 화제가 되었던 <황금빛 내인생>이 내 자식의 행복을 위해 자식을 뒤바꾼다는 설정이 논란이 되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논란은 옛말이다 싶게 자극적인 내용들이 범람한다. 

우선 <진짜가 나타났다>의 경우 여주인공을 미혼모로 설정한다. 남자 친구와 사귀다 헤어진 오연두(백진희 분)는 아이를 가졌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일타 강사'로 이제 막 이름을 날리던 학원에서 쫓겨나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 사이에서 궁지에 몰린다. 

학원에서 제법 인기가 있던 강사가 혼전에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쫓겨난다는 설정도, 자신의 딸이 아이를 가졌다고 집에서 내쫓다시피한 가족도 지금 시대에 과연 어울리는 설정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여주인공의 선택이다. 
 
 KBS2 <진짜가 나타났다>의 한 장면.

KBS2 <진짜가 나타났다>의 한 장면. ⓒ KBS2

 
학원 강사까지 할 정도의 '커리어'를 가진 여성이 하루 아침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는 게 현실적일까? 이제는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젊은이들이 스스로 자기 삶을 가꾸어 가는 게 더는 이상하지 않는 시대이다.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사유리처럼 결혼을 하지 않은 이가 당당하게 자신의 아이를 낳아 키우기도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연두는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물론 정략 결혼을 할 처지의 남자 주인공 공태경(안재현 분)을 지켜주기 위해서라지만 그의 결혼식장에 난입하여 자신의 아이 아버지가 공태경이라며 결혼을 파투 놓은 여주인공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위해 그와의 정략 결혼을 선택한다. 심지어 그를 위해 공태경의 본가로 들어간다. 

아이를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 한 이 선택, 과연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드라마는 잘못 꿰어진 설정을 드라마적 갈등의 주된 요소로 쓴다. 서로 편의에 의해서 정략 결혼을 한 오연두와 공태경은, 본의 아니게(?) 들어간 본가에서 본가 식구들과의 갈등을 빚게 된다. 

시집살이 잘 헤쳐나가는 게 미덕?
 
 KBS2 <진짜가 나타났다>의 한 장면.

KBS2 <진짜가 나타났다>의 한 장면. ⓒ KBS2

 
드라마는 오연두의 거짓 결혼이라는 기본적 딜레마에 고집스런 시어머니의 시집 살이를 얹는다. 시집가자마다 맞이한 첫 제사 날, 할머니 은금실 여사는 멸치전을 해야 한다고 난리를 치고, 질투난 큰 동서의 함정으로 오연두는 혼자 멸치를 다듬는 고생을 하게 된다. 이건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2023년에 여전히 드라마는 그 예전 '시집살이'의 레시피를 복기한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처음엔 자기도 아이를 데리고 재혼했다며 연두의 편을 든 시어머니 이인옥 여사마저 오해로 인해 연두를 오해하고 시집살이 모드에 들어선다. 

그런데 착한 며느리 오연두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시집식구들의 행패에도 의연하고 꿋꿋하게 자기 몫을 다한다. 그나마 달라졌다면 이제 오연두는 자신의 입장은 분명하게 밝힌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시집살이라는 토네이도에 자신을 맡기는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가짜 남편 공태경도 마음을 열고, 이제는 오연두 대신 상상 입덧을 하기에 이른다.

여전히 드라마는 두 사람의 사랑을 여는 '키'를 꿋꿋하게 시집살이를 잘 헤쳐나가는 며느리 오연두에서 찾는다. 드라마는 여전히 이런 모습이 우리 가족의 미덕이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외려, 드라마를 보다보면, 이 드라마는 가족 드라마가 아니라, 아이를 가지지 말고, 결혼도 하지 말라는 결혼, 출산 방해 프로파간다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KBS2 <진짜가 나타났다>의 한 장면.

KBS2 <진짜가 나타났다>의 한 장면. ⓒ KBS2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드라마는 오연두의 연적을 등장시킨다. 공태경의 집안 NX그룹의 비서실장인 장세진(차주영 분)이 그 주인공이다. 회장은 물론, 가족 모두의 찬사를 받을 정도로 일 처리가 똑부러지는 그녀이지만, 드라마는 그런 그녀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선택한 동앗줄을 '사랑'과 '결혼'에 놓는다. 

정략 결혼이라도 좋으니 공태경과 결혼하려던 그녀는 그게 수포로 돌아가자, 이제 오연두 보고 아이만 낳고 나가라고 하며 그 자리를 노린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금수저'였다는 자신의 과거에 연연하는 그녀는 사업 실패한 아버지를 떠밀듯 내몬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엄마, 아빠의 이혼까지 종용한다. 

대기업의 비서실장 정도의 스펙을 가진 여자에게 성공이 재벌 집안의 며느리가 되는 것이라니. 극중 결혼을 못한 장세진에게 회장은 미국 지사 자리를 권한다. 미국 지사장으로 갈 정도의 능력을 가진 여자인데, 그걸 박차고 돌아와 자기 부모를 이혼시키면서까지 재벌 집안에 들어가려 한다. 이미 대기업 비서실장에, 미국지사장이면 그 자체로 '금수저'가 될 만큼 능력자가 아닐까.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선택을 하라면 그런 집안에서 수발을 드느니 훨훨 미국으로 날아가는 걸 택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녀는 자기 맘대로 돈 한번 펑펑 써보지 못했다고 가족들에게 쏟아붓는다. 드라마는 그런 장세진을 할머니와 짝짜꿍이 맞아 오연두를 내모려 음모를 꾸미는 전형적인 악녀로 만들어 간다.

<진짜가 나타났다>는 이러저러한 설정들로 가족 관계를 얽히게 만들었지만, 결국 그 안을 들여다 보면, 능력있는 여성은 여전히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을 하고, 인기 학원 강사가 되기 위해 애쓰던 여자인데도 결혼과 출산을 통해 행복을 얻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하려 한다. 무엇보다 오연두나 장세진 모두 그녀들의 행복을 자신이 아닌 그녀를 둘러싼 조건을 통해 얻으려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전히 관건은 '시집살이'를 통해 어른들과 남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낡고 오래된 이야기 구조, 그런데 문제는 지금이 그런 집안에 들어가 말도 안 되는 시집살이를 하느니 혼자 사는 게 낫다는 2023년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저런 캐캐묵은 가족 관계 속에서 고전하는 젊은이들의 스토리는 이젠 나이든 세대조차 공감하기 힘들지 않을까.
진짜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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