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2시다. 냉수를 한 잔 따라 옆에 놓고 위버스 앱(팬덤과 아티스트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연다. 침을 꼴깍 삼키고 '이벤트 신청 내역' 아이콘을 누른다. 초록색 바탕에 '당첨' 두 글자가 보인다.

꺄아아아악, 목구멍에서 입으로 터져나오지 못한 돌고래 고함이 목 뒤를 타고 머리 꼭대기로 발산된다. 6월 25~26일 양일간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릴 BTS 멤버 슈가의 솔로 콘서트 티켓을 살 수 있는 좌석 추첨제에 당첨되었다.

추첨이나 당첨 같은 단어가 들어가면 왠지 콘서트 티켓을 경품으로(즉 공짜로) 받을 것 같겠지만 그렇지 않다. 당첨이 되어야 콘서트 좌석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당첨된 좌석은 3층 구석이지만 그러면 어떤가. 그 공연에 내 자리 하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데. 이제 내 손으로 내가 만드는 굿즈(아래 내손내만 굿즈)를 만들 차례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콘서트 굿즈

새로운 콘서트 일정이 발표되거나 앨범 발매가 결정되면 로고 이미지를 이용해서 전사지를 만들어둔다. 그런 후에 그 시기에 만드는 옷이나 소품에 전사지를 붙이면 나만의 내손내만 굿즈가 된다.

옷이나 가방을 볼 때마다 그 옷을 입고 공연에 갔던 기억을 되살려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집에 있는 거의 모든 옷이나 가방이 다 내가 만든 것이다보니 언제 만들었는지 헷갈릴 때 붙어있는 전사지를 보면 어느 시대에 만든 것인지를 추정하기도 쉽다.

나는 2017년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소셜 아티스트 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한국의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JYP의 수장이 원더걸스를 미국에 진출시키려고 애썼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세대이기에 '그 어려운 미국 진출을 듣도보도 못하던 중소 기획사가 어떻게 해냈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간의 호기심이 일어 그들이 미국에서 한 인터뷰를 찾아보다가 리더 RM에게 반해 팬이 되었다. 지금은 그나마 조금 나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K-POP 팬들을 철없는 여자아이들로 폄하하던 시절이었다. 리더 RM은 영어를 잘해서 질문을 받으면 멤버들에게 통역을 해주고 멤버들의 답을 다시 영어로 전달하는 역할도 했다.

내가 반했던 포인트는 이것이다. '너희 팬들이 한 가장 미친(crazy) 짓이 뭐냐?'라는 질문을 '팬들이 한 일 중에 제일 감동받은 일이 뭐냐'고 바꿔서 물었다. 그러니 멤버들은 그에 맞는 감동적인 일화를 예로 들어 답했고, 다시 질문자에게 전할 때도 '미친'이라는 표현 대신 멋진(amazing)이라고 표현하고 싶다고 답했다.

'아이돌의 팬들이란 모름지기 괴상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전제를 짚어내고, 굳이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으면서도 팬들을 배려하는 답으로 돌려주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팬이 아니었는데도 이 짧은 대화를 보면서 이 젊은이의 내공은 어디까지인가 궁금해지면서 이 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옷으로 읽을 수 있는 추억 한 자락

일곱명이 보여주는 선한 에너지가 좋아서 매일 유튜브에서 그들을 찾아보면서도 나 자신을 '아미'라고 인정하기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마음 속 턱이 있었다.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마음 속의 목소리였다. 그러다가 내가 덕후라는 것을 인정할 핑계를 찾아냈다.

음악 예능 <슈가맨>에서 그날의 슈가송 전주가 흘러나오는 순간, 점점 나이 들어가는 내 몸과 상관없이 순식간에 그 노래를 들었던 젊은 날의 나로 돌아가는 마법. 그 마법이 사십대가 된 내가 덕질을 할 때도 여전히 유효할까? 궁금했다.

40대가 된 내가 지금 이 가수들의 노래를 좋아하고 많이 들으면 그 노래들도 60대가 된 나에게 40대의 나를 소환하는 마법을 발휘해 줄까? 답을 아는 사람도 알려줄 만한 사람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니 어쩌겠나. 내가 해봐야지. 내가 궁금한 건 내가 알아보는 수밖에.

진정한 답은 60대가 되어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다시 들었을 때 비로소 알겠지만 올해 6년차 아미가 된 벌써 나는 그 마법의 일부를 경험하고 있다.
  
콘서트 때마다 만들었던 후드티
 콘서트 때마다 만들었던 후드티
ⓒ 최혜선

관련사진보기


Permission to Dance 후드티를 입으면 코로나를 뚫고 국경을 넘어 LA 공연을 보러갔던 2021년의 내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체류 기간 중에 덮친 오미크론 변이의 영향으로 갑작스레 10일 동안 자가격리를 해야했던 기억도.

Yet to come 후드티를 볼 때면 KTX를 타고 부산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콘서트 장으로 향하던 시간이 생생하다. 아시아드 주경기장의 대혼돈 속에서 '달려라 방탄'이라는 곡의 첫 퍼포먼스를 완전체로 보았던 2022년의 추억이 벌써 그립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고들 한다. 그리고 학자들은 그것에 대해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경험은 적어지고 매번 하던 것들을 반복하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이벤트가 거의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지금 훗날 기억에 남을 추억의 책갈피를 내 인생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꽂아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책갈피의 재료는 만든 옷 위에 찍은 방탄소년단의 앨범 로고인 셈이다.
 
슈가의 솔로 콘서트명 D-DAY 전사지를 붙인 후드티
 슈가의 솔로 콘서트명 D-DAY 전사지를 붙인 후드티
ⓒ 최혜선

관련사진보기


멤버들이 한 명씩 입대를 앞두고 있는 시기, 멤버 최초로 슈가가 어거스트디라는 이름으로 솔로 투어를 진행하고 있는 2023년 봄은 이 옷과 함께 기억될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 옷을 뒤집어 쓰고 매일 필라테스를 하러 다니는 2023년의 나도.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방탄소년단콘서트, #바느질러, #내손내만굿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읽고 쓰고 만드는 삶을 지향합니다. https://brunch.co.kr/@swordni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