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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늘 어렵다. 전 국민이 미식가인 사회에서 나의 음식 취향은 영화에 비유하자면 <리틀포레스트> 같은 느낌이랄까. 우리나라는 먹방이 하나의 문화이자 교양이 되어가고 있다.

쏟아지는 인기 메뉴들이 나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 최대한 나의 음식 취향을 숨기려고 하는 편이다. 배달음식 또한 나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혼자 살면서 딱 한 번 배달 음식이라는 것을 시켜본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아파서 도저히 몸을 일으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때의 메뉴는 죽이었다.

나는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하고, 건강한 음식을 좋아한다. 이런 나의 취향을 아는 친구들은 내 모습에 익숙해졌지만,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는 꽤 불편하다. 담백을 넘어 무색무취의 간을 좋아하는 내 모습에 무수한 질문과 참견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먹으면 맛이 있어? 아무 맛도 안 날 것 같은데."
"이건 이렇게 먹어야 맛있어. 그렇게 먹으면 맛없어."


아무 맛도 안 나는 그 본연의 맛을 나는 좋아한다. 이를테면 생양배추를 물에 깨끗하게 씻어서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고, 생으로 먹으면 단 맛이 난다. 그 맛을 좋아한다. 빙빙 돌려 말하는 중인데, 결론적으로 나는 음식에 간을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좋아한다.
 
나는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하고, 건강한 음식을 좋아한다.?
 나는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하고, 건강한 음식을 좋아한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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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하고 나서 이 부분이 가장 편했는데, 누구도 나의 식단에 간섭하지 않고, 충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냉장고에는 야채와 과일, 달걀, 물, 두부 등의 원재료들만 가득하다. 인스턴트 음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자나 주전부리 같은 것도 일절 구입하지 않는다.

나는 원래부터 간식을 먹지 않았을뿐더러 장을 볼 때도 딱 필요한 것만 정확하게 구입하기 때문에 음식이 남아서 버리는 일도 없다. 혼자 산다고 말하면 다들 요리를 잘한다고 생각하던데, 나는 사실 요리를 잘하지도 못할뿐더러 내가 먹는 식단들이 채소나 과일류가 전부라 요리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덕분에 내 집에는 남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조리도구나 조미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프라이팬이나 소금, 설탕 등등이 말이다. 나에게는 그저 원재료를 삶거나 데쳐먹는 것이 최고의 요리이자 맛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것은 회. 여기서 한 가지 더 말해보자면, 회를 먹을 때도 아무런 소스(초장, 간장, 와사비 등) 없이 있는 그대로의 회만 먹는다. 이쯤 되면, 저 사람에게는 맛집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물론 존재한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몇 년째 나 혼자만 꾸준히 방문하는 곳이 있는데, 내 최애 음식인 연어를 구워서 주는 샐러드 집이다.

매장 규모가 작은데도 크게 붐비지 않아서 혼밥을 좋아하는 나에게 안성맞춤이다. 주문 마지막에 내가 늘 하는 말이 '소스는 다 빼고 주세요'인데, 이제는 몇 년째 단골손님이라 그런지 내가 그 말을 하기도 전에 '소스 다 빼드리면 되죠?'라고 물어보신다.

과하게 친절을 베풀지도, 무뚝뚝하지도 않은 딱 적당하고 담백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신다. 나는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부담스럽지도, 차갑지도 않은 직원과 손님의 적당하고 담백한 거리 말이다.

보편적이고, 통일성 있는 음식문화를 추구하는 우리나라에서 극소수에 속하는 나의 취향은 때때로 눈총을 받기도 한다. '아 그냥 좀 대충 맞춰서 먹지 되게 까다롭네'라고 나무라는 어른들도 여럿 만났다. 특히 직장에서 점심메뉴를 고를 때는 다 같이 한 메뉴로 통일해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손을 들고 다른 메뉴를 외치곤 했다.

심지어 치느님이라고까지 불리는 전 국민의 최애 음식 치킨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참고로 나는 밀가루를 먹지 못하고, 피자, 치킨, 떡볶이, 라면 등등 모두가 당연하게 즐겨먹는 음식을 먹지 않은지가 몇 년 전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보통 만남의 자리가 있을 때는 건강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한식을 즐겨먹는 편이다.

<우아한 가난의 시대>의 김지선 작가는 "먹지 않은 인간에 비해 먹는 인간이 지나치게 우쭐댄다"라고 말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던 식생활을 돌아보게 했다. 전 국민이 미식가인 사회에서 음식에 열정이 없는 사람은 별종 취급을 받는다. 누구를 만나도 오늘의 메뉴에 대한 의견이 있으며, 그룹채팅방에서는 '뭘 먹을까'에 대한 논의가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의 식문화가 품위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도장 깨기'를 하듯이 맛집을 탐험하고, 음식을 앞에 두고 대화보다는 사진을 찍느라 바쁘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음식을 넘나들며 맛보고, 어려운 음식 언어로 허세를 부리며, 다 먹지도 못할 만큼의 메뉴를 주문한 후, 다음 달 카드값을 낼 때 후회하는..... 우리가 브리야사바랭의 말을 떠받들며 간과한 점은 우아한 음식이 우아한 사람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뭘 먹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질리도록 해 왔으니, 이제는 품위 있게 먹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 그것이 우리가 돼지와 다른 점일 것이다.

김지선 작가에게는 지나친 미식주의가 싫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 음식 자체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친구인데, 그 친구는 이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오랫동안 다사다난한 권유를 받아 왔다고 전한다.
 
그녀에게 식사란 주유 이상의 의미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그녀를 위한답시고 무수한 동정과 권유를 해왔다. 왜 안 먹냐, 먹어 보면 생각이 바뀔 거다, 도대체 인생의 즐거움이 뭐냐, 기타 등등. 

누구에게나 취향은 있다. 모두가 좋아하는 보편적인 음식이라고 해서 반드시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소수는 있기 마련이고, 그 소수가 내가 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일례로 내 친구는 술을 한 잔도 못 마신다. 술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우리나라 특성상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점을 말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고 한다. 심지어 그 친구는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 쪽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쪽 회식문화에서는 술이 빠질 수 없었기 때문에 더 곤란했다고. 이제는 직급이 높아져서 그런 자리도 유연하게 대처하곤 하지만, 그걸 매번 해명하듯이 말해야 하는 그 상황이 참 답답했다고 말한다.

나에게 좋은 것이 상대방에게는 싫을 수도 있다는 것,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는 싫어할 수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굳이 설명하지 않고도 통용되는 사회(특히 식문화에서)가 되길 바라게 되는 것은 욕심일까. 나의 취향을 해명하듯 설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존중받는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가 더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태그:#식문화, #예절, #취향, #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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