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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문명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일어나 '언약의 궤'로서 오성을 깨쳤으며 '호기심의 캐비닛'으로 현대의 패권을 잡았다. 서양에서 15~17세기는 박물학의 시대였다. 전 세계에서 약탈하여 그러모은 진귀하고 기이한 물건들을 장식장 안에 모아놓고 '호기심의 캐비닛(Cabinet of curiosities)'이라 불렀다.

인류에게는 태생적으로 수집에 대한 욕구가 있으며 남에게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도 강하다. 상류층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이 유행은 훗날 박물관과 미술관, 도서관을 탄생시키게 된다.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을 탄생시킨 Museum Wormiani Historia 1655.
▲ 호기심의 캐비닛(Cabinet of curiosities)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을 탄생시킨 Museum Wormiani Historia 1655.
ⓒ Wellcome Collection 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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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수탈의 잔인함이 극렬하게 드러날 뿐만 아니라 부의 상징이자 허영심의 표출이기도 하며 사교와 오락의 공간으로서 작용한 호기심의 캐비닛을 통해 예술가와 학자들은 창의적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분류 체계를 구성하여 자연과학을 발전시켰으며 예술가는 영감을 얻어 여러 걸작품을 창조해냈다. 조선이 신사임당으로부터 김홍도로 이어지는 시기에, 유럽에서는 요리쉬 호프나겔(Joris Hoefnagel)과 얀 반 케슬(Jan van Kessel)이 등장하여 곤충을 화폭에 정교하게 담으면서 이름을 드날렸다.

왕가의 분더캄머가 된 호프나겔의 작품

벨기에 플랑드르에서 활약한 호프나겔은 화가이자 인쇄업자이며 부유한 상인으로서 이후 정물화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역동감 넘치는 동물 그림과 장식적인 곤충 묘사를 통해 정물화를 독립된 장르로 발전시켰다. 그의 작품은 당시 유럽을 다스리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컬렉션을 구성할 정도로 인기를 독차지했다.
 
Mira calligraphiae monumenta.
▲ 요리쉬 호프나겔의 판화 모음집. Mira calligraphiae monumenta.
ⓒ J. Paul Getty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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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색깔의 애벌레는 호프나겔과 케슬이 즐겨 그린 소재다.
▲ 꽃술재주나방 애벌레. 화려한 색깔의 애벌레는 호프나겔과 케슬이 즐겨 그린 소재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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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가문은 15~20세기 초까지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 영토를 다스렸다. 6대 황제 루돌프 2세는 나약하고 무능한 황제로 평가 되지만 과학과 예술을 사랑한 인물이었다. 그는 연금술과 점성술 같은 미신에 빠져 올바른 정치를 하지 못하고 사치품과 미술품, 보석 등을 수집하느라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였다.

미니어처 화가로 정평이 난 호프나겔은 궁정에서 채식사(Illuminator, 책 속에 그림을 넣는 사람)로서 여러 작품을 남겼다. 호프나겔의 정물화에는 온갖 곤충이 장식적인 텍스트 디자인과 더불어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려지지 않은 곤충을 찾아야 할 만큼 종류가 다양하다.

48점으로 출판 된 그의 판화 모음집(Archetypa studiaque patris Georgii Hoefnagelii)은 후대의 동물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휴대용으로 제작된 분더캄머(Wunderkammer 또는 Kunstkammer, 독일어로 호기심의 캐비닛)로서 52개의 판에 양피지로 제본하였다.
 
Archetypa studiaque patris Georgii Hoefnagelii
▲ 호프나겔의 판화 모음집 Archetypa studiaque patris Georgii Hoefnagelii
ⓒ National Galler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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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꼴에 예술을 입히고 디지털 세상에 녹아듬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로 유럽에서 인쇄술이 크게 융성하면서 책의 수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종이 재질은 거칠었기 때문에 가독성이 높은 활자의 필요성으로 블랙레터(BlackLetter 혹은 Gothic)가 탄생하여 이후 글꼴(로만체, 벰보체, 가라몬드체 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고딕체는 가독성 뛰어난 궁정 서기관의 손글씨를 모방한 디자인이다. 중세시대에 태어난 블랙레터는 성경을 찍어내기 위한 정형화된 폰트로서 19세기까지 널리 사용되지만, 20세기 들어와서는 히틀러의 나치즘을 상징하는 글자가 되어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지면서부터는 로만(Roman)과 벰보(Bembo), 가라몬드(Garamond)가 출판의 글꼴을 주도하면서 발전한다. 이 서체들은 20세기에 들어와 디지털 혁명의 바람을 타고 컴퓨터의 기본 글꼴로 장착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

호프나겔은 이 시기의 활자를 예술의 경지로 이끄는데에도 이바지했다. 알파벳을 장식한 그의 정교한 곤충 그림은 지금 보아도 감탄을 금지 못하게 한다.
 
고르그 보츠게이와 요리쉬 호프나겔의 콜라보 작품.
▲ Guide for Constructing the Letters m and n. 고르그 보츠게이와 요리쉬 호프나겔의 콜라보 작품.
ⓒ J. Paul Getty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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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 페르디난트(Ferdinand) 1세의 서기관이었던 고르그 보츠케이(Georg Bocskay)는 글씨체의 교과서를 만들어냈다. 약 30년 후 페르디난트의 손자인 루돌프 2세는 호프나겔에게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 채식을 하도록 의뢰했으며 이 작품이 루돌프 황제의 쿤스트캄머를 구성한다.

이렇게 궁정 서예가와 화가의 협력으로 세상에 나온 작품이 <Mira calligraphiae monumenta>이며 현재 박물관(J. Paul Getty Museum)에 자료가 오픈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한국우취연합의 월간 우표에도 같이 등록됩니다.


태그:#JORIS HOEFNAGEL, #JAN VAN KESSEL, #GEORG BOCSKAY, #호기심의 캐비닛, #분더캄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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