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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빼앗길 대로 빼앗기고 당할 대로 당한 농민들에게
눈덩이처럼 불어난 농가부채안고 가슴 졸이는 농민들에게
식민지 조국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자동차나 핸드폰 파는데 너희는 희생양 죽어줘야겠다고
신자유주의 날 세운 방패 피 묻힌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우리곁을 떠난 전용철 홍덕표 열사여!
식민지 이 땅에 태어나서 뿌리 뽑힌 농민으로 살며
수탈의 한 포기 나락을 거두던
거친 손길로 식량의 자주를 외쳐 부르던
순박하고 가난한 그러나 아름다운 농부여!"(한도숙 추모시 '강물되어 흐르소서' 중에서)


▲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는 문경식(호상)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 박준영
▲ 영결식에 모인 사람들은 두 농민열사의 희망을 실현하고 말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주먹을 굳게 쥐었다
ⓒ 박준영
언제쯤 이 땅에서 '열사'의 행렬이 끝날까. 2005년을 보내는 마지막 날에도 이 땅은 두 분의 열사를 땅에 묻어야 했다. 40여일에 가까운 헌신으로 대통령이 사과를 했고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경찰청장이 사퇴했다. 전국민에게 전용철, 홍덕표 농민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알렸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닦으며 이를 악물고 40여일을 싸웠건만 두 열사의 영결식에 자리한 사람들의 표정은 여전히 결연했다.

"열사의 죽음은 이 나라 농업의 죽음과 일치합니다. 정부-국회-농민이 합심하여 한국 농업을 민족농업으로 회생시켜야 합니다"라며 두 사람을 추모하는 오종렬 범대위(농업의 근본적 회생과 고 전용철 고 홍덕표 농민 살해규탄 범국민대책위) 공동대표의 마음과 영결식장에 모인 1천여 명의 마음이 똑같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전용철 농민과 홍덕표 농민의 영결식장에서는 추모의 노래보다는 굳게 움켜쥔 주먹이 더 높이 솟았으며, 눈물보다는 결의가 넘쳐났다. 이렇게 31일 오전 11시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열린 고 전용철, 고 홍덕표 열사의 영결식은 비장했다.

▲ 영결식장에는 우리 농업을 지키겠다는 참가자들의 결심을 담은 피켓들이 넘쳐났다
ⓒ 박준영
▲ 두 농민열사를 향해 굳은 결심의 맹세를 하고 있는 사람들
ⓒ 박준영
▲ 두 농민의 목숨을 빼앗아갔던 폭력의 현장, 여의도에서 노제가 열렸다
ⓒ 박준영
영결식에 참석한 서산농민회 나진생씨는 "해결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농업회생을 위한 근본적 대책이 수립되지 않은 한 제2, 제3의 전용철 홍덕표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11월15일 두 농민이 집회에 참가했던 이유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사과를 하건, 경찰청장이 물러나건 농민들은 계속 집회를 하기 위해 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350만 농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놓은 듯 영결식장을 가득 메운 70여 개의 검은 만장은 '식량주권 사수' '신자유주의 반대' '쌀시장 개방 반대' '열사의 한을 풀자'며 거센 겨울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서 있었다. 이외에도 '쌀은 민족의 생명', 쌀은 지키고 농민의 희망을 만들어가겠다는 결의인양 젊은 대학생들이 든 피켓이 자리를 지켰다.

치열했던 지난 40여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듯 무대에 오른 문경식(호상)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두 열사의 영정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움직일 줄을 몰랐다.

ⓒ 박준영
▲ 상여와 만장은 국회의사당 앞에 잠시 머물렀다. 그러나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국회는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 박준영
고개를 든 문경식 의장은 "살을 에는 칼바람에도, 뼛속을 파고드는 살인한파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는 두 분 농민열사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혀내고 책임자를 단죄하는 성과를 쟁취했습니다. 우리는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두 분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만 투쟁해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투쟁해온 진짜 이유는 개방의 파도에 대책 없이 무너지는 농업농촌을 지켜내고 농업회생의 전기를 마련하여 식량주권을 지켜내고자 하는데 있었습니다. 이 길만이 두 분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며 농민들의 가슴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절망을 이겨내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두 열사의 영정에 국화꽃을 올리는 사람들은 두 열사가 알려준 승리의 비결을 가슴속 깊이 새기려는 듯 묵념을 올리는 고개를 들 줄 몰랐다.

땅밖에 모르고 땅만 믿고 살았던 순박했던 두 농민이 경찰의 방패와 곤봉에 무참히 쓰러졌던 그날의 여의도에서 두 분의 열사를 보내는 노제가 열렸다.

"어~야, 디~야. 저 세상으로 편히 가소…."

한과 눈물이 맺힌 상여꾼의 소리가 여의도에 퍼졌다. 상여를 맨 사람들은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원망의 국회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뭐가 그리 무서운지 전경차로 수 겹을 에워싸 정문도 보이지 않는 국회의사당의 처참한 현실은 가신 분의 뜻을 이어 산 자들이 해야 할 몫이 많음을 또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고 전용철 고 홍덕표 농민이 평생을 일구고 죽음으로 지켰던 우리 쌀과 우리 농업 사수의 꿈과 희망이 이제 전국민의 행동으로 실현되게 하겠노라고 여의도 하늘아래서, 국회의사당을 향해 사람들은 다짐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자주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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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자전국회의에서 파트로 힘을 보태고 있는 세 아이 엄마입니다. 북한산을 옆에, 도봉산을 뒤에 두고 사니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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