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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상류에도 무자년 새해가 열리고 있다.
 쪽빛 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상류에도 무자년 새해가 열리고 있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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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의 해가 오고 있다. 무자년(戊子年), 쥐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쥐는 번식력이 강하고 숫자가 많아 농사꾼에겐 골칫거리이지만, 한 편으로는 다복(多福)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쥐띠를 ‘자천귀(子天貴)’라 하여 식복을 타고난다고 믿어 왔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눈치가 빠르고 어려운 여건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습성에서 비롯된 말일 것이다.

쥐띠는 12간지 중 맨 앞에 나온다. 쥐는 영민해 앞날을 예고해 주는 영물로 알려져 신성시해왔기 때문이다. 쥐는 화산, 홍수, 산불 등 자연 재해를 미리 알려준다. 예부터 집안에 쥐가 없어지면 불길할 징조로 여겼고, 어부들은 배 안에 쥐가 보이지 않고 울음소리가 그치면 출어를 삼갔다.

쥐는 앞발가락이 4개, 뒷발가락이 5개이다. 합치면 아홉 행운의 숫자이기도 하다. 산삼을 캐는 심마니들은 쥐를 ‘서산’ ‘노승’이라 부른다. 서산은 서산대사를 연상시키고 노승으로 평가할 만큼 높이 부르는 이유는 산삼 있는 곳을 안내해 주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용화산 끝자락에 살고 있다. 오늘따라 아침 해오름이 이리 찬란할 수가 없다.
 나는 용화산 끝자락에 살고 있다. 오늘따라 아침 해오름이 이리 찬란할 수가 없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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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들은 시궁창이나 하수구에 살지만 질서가 정연해 부부침실, 아기 방, 화장실, 곡식창고 들이 따로 구분되어 생활하고 있다. 두엄을 파내고 집동을 치우다 보면 쥐 집과 쥐똥 자리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쥐의 날은 몸을 사리는 날이다. 삼국시대부터 정월의 첫 쥐(子)날은 만사를 제쳐놓고 근신하고 조신하는 풍속이 있어왔다. ‘몸을 사리는 날’ ‘설날’도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풍년을 기원하고 풍년의 저해요소인 쥐, 까마귀, 멧돼지 등을 금기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지 않나 싶다.

지금 내가 자고 있는 오막살이 천정에 생쥐가 한 마리 들어와 소란을 피우고 있다. 천정에 뭐 먹을 게 있다고 들어와 온갖 재랄들을 떨며 보스락대고 토닥거리는지 모르겠다. 생쥐는 언제나 잽싸고 약삭빨라 눈치가 이만저만 아니다.

사람이 나타날 기미만 보이면 냅다 숨었다 움직임이 없으면 작은 눈빛을 반짝이며 바스락거린다. 그래서 약삭 빠른 사람을 보고 ‘생쥐 같은 놈’이라고 하나보다. 그나저나 올 한 해만은 생쥐 같은 소리를 듣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하며 몸단속을 해본다.

난 아직도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한다. 두엄장도 화장실 옆에 있다. 화장실, 두엄 장, 볏 똥 가리 등은 쥐들의 천국이다. 얼마 전 며느리가 화장실에 들어가 볼 일을 보는데 쥐가 나타난 모양이다. 쥐구멍으로 우연히 눈길이 갔나보다. 그런데 아, 거기 쥐구멍에서 생쥐가 막 나오려다 며늘아기를 쳐다보고 있었단다. 어쩌나 무섭고 놀랐던지 ‘악, 생쥐가 나를 쳐다봐요’ 하고 엉겁결에 소리치는 바람에 집안이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다.

며늘아가가 화장실 가기가 겁나 시골집을 다녀갈 수 없다니 이를 어찌할꼬. 그때마다 난 ‘쥐가 쳐다봐, 고얀 놈 같으니, 감히 울 며눌 아가를 쳐다보다니’ 하고 허풍 아닌 너스레를 떨며 웃어보곤 한다. 그 때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쥐약을 놓고, 쥐구멍을 밤송이로 막아 놔야 한다. 그리고 쥐들에게 겁을 주기도 한다. ‘너희들, 정말 이리 극성부리면 고양이 데려 올 거야.’ 해보지만 알아듣기나 하는 건지….

여명이 밝아오면 오막살이 아침 군불을 때며 생쥐떼와 참새들을 깨워야한다.
 여명이 밝아오면 오막살이 아침 군불을 때며 생쥐떼와 참새들을 깨워야한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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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신정 첫날은 경자(庚子)날이고, 구정 앞날(2.6)은 병자(丙子)날이다. 공휴일이고 보니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여행하고 흥청거려도 좋지만 새해를 맞아 분수에 넘치는 행동은 모두 조신하고 삼갈 일이다.

쥐는 ‘약자의 대변자’이고 희망과 행복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 무자년 올해는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해이기도 하다. 부탁하건대 굶주린 백성들에도 제발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오기를 두 손 모아 학수고대해 본다.

희망찬 무자년, 오늘도 생쥐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이야기'를 클릭하면 농촌과 시골을 사랑하는 많은 님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태그:#생쥐, #무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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