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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2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03년 6월 2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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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박근혜 대통령 기자회견 직후 11년 전인 2003년 6월 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 동영상이 화제다. 두 동영상은 11년의 시간이 말해주 듯이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화면에 등장하는 당시와 지금의 화제가 같지 않기에 두 대통령의 기조연설 내용, 기자들의 질문 내용에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대통령의 말투나 원고를 보는 횟수도 매우 상이했다. 그 중에서 가장 달랐던 점은 날이 선 기자들의 질문이었다.

55분간 진행된 당시의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은 먼저 8분 동안의 모두발언을 했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100일이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기간이었다고 말하며 취임 초부터 한미 문제, 북핵 문제 그리고 SK글로벌 문제로 분주했다고 취임 초기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산적한 현안 이슈에 대해 "거창한 약속이나 구호보다 한 걸음, 한 걸음 목표를 달성해가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심정으로 국정운영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8개 언론사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질문 내용을 보면 사전에 조율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질문자와 대통령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첫 질문은 KBS 기자가 했다. 그는 11년 후 <연합뉴스> 기자처럼 '소회'를 묻지 않았다. 한가롭게 향후 국정운영 구상을 묻지도 않았다.

KBS 기자의 질문은 처음부터 공격적이었다. 그는 노 대통령에게 "지금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인가 아닌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어서 "이 부분에 대한 한국정부의 정보가 부족한 상태인지"에 대해 확인을 요청한 후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실하게 판명되면 한국의 선택은 어떤 것인가"를 물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지금처럼 협상이 진행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의 노력이 집중되는 시기에 이 같은 해결 노력에 별 도움 안 되는 단정적 인식과 정보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큰 원칙은 이미 서 있다"며 "북한 핵은 용납하지 않는다,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한다, 북한을 개방하게 도와준다" 등을 열거했다.

노 대통령은 누구처럼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당시 북핵으로 불안해 하는 기자와 국민들에게 '큰 원칙'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준 것이다.

<동아일보>의 막 나가는 질문, 대통령의 생생한 대응 

11년 전 참여정부 '100일 기자회견'의 백미는 두 번째 질문자로 나선 <동아일보> 기자의 질문과 함께 시작한다. 질문할 기자를 지명한 청와대 담당자는 <동아일보> 기자가 무슨 질문을 할지 사전에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전에 알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질문을 바꾸든지 아니면 기회를 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기자는 매우 악의적인 질문을 던졌다. 노 대통령이 부정선거 의혹이라도 받고 있었던가. 기자는 "대통령 후원회장이었던 이기명씨의 용인 땅 매매와 개발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이런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소극적으로 해명함으로써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분명한 입장을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질문인지, 취조인지 헷갈릴 정도로 날이 서 있었다. 

이 질문을 받은 화면 속 노 대통령은 다소 흥분한 듯 언성이 커졌다. 노 대통령은 "의혹을 제기하는 근거가 뭔가"라고 되물으며 "인가권은 용인시장, 경기도지사가 가지고 있는데 용인시장이 민주당 시장이냐, 노무현 측근이냐, 그렇지 않다. 경기도지사도 한나라당이다"라고 의혹을 일축했다. 이어서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를 보수언론이 확대재생산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일보>의 말투 공격, 이에 대한 대통령의 장황한 해명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노무현 대통령.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노무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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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과 악수를 하며 퇴장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과 악수를 하며 퇴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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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한국일보> 기자는 노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인 말투와 표현 문제를 질문의 소재로 삼았다. 기자는 "(대통령의) 거친 화법이나 역설적, 반어적 표현이 문제로 거론되기도 한다"면서 "일부에서는 대통령 발언이 불필요하게 국정혼란 원인이 된다거나 관련 장관들의 앞서가는 발언이나 다변이 시스템 작동을 마비 혹은 편향되게 간다는 지적이 있다"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탈권위 문화는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추구해보고 싶은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아직 이중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 후 "미국 대통령은 자주 TV에 나오는데 거부감이 없으면서 한국 대통령은 너무 자주 나온다고 해서 제가 요즘 못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노 대통령은 '쪽수' '깽판' 등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말하며 "제가 대중집회, 대중강연을 좋아하다 보니까 (그런 발언을) 버리지 않고 많이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제어하지 못해서 때때로 표출된다고 하며, 때로는 노동자와 얘기할 때 자연스러운 소통을 위해 사용한다고 부연했다.

당시 질문을 한 언론사 중에는 11년 후 박근혜 정부로부터 '유사언론'으로 낙인 찍히게 된 <기독교방송(CBS)>도 포함돼 있다. <기독교방송> 기자는 "언론과의 긴장관계를 강조했고 오늘도 그런 언급이 있었다"면서 "그런데 최근 오찬에서는 언론의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고 언급하며 "언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시기로 한 의향을 밝힌 건지"를 물었다.

노 대통령은 언론과의 관계는 '원칙적 관계'로 가겠다고 답변했다. 화가 나는 일이 있지만 감정적 대응을 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그는 "기사에 대해 대응할 것은 대응해 나가고 원칙대로 할 것"이라며 "그 밖에 다른 수단도 동원할 생각 없다"고 답했다. 이어서 "정말 의혹 있는가 확신 있을 때 기사를 써달라"면서 "나는 신문도 없고... 억울하게 당한 사람 없게 기사 써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11년 후, 12개 언론사의 질문... '퇴근 후 뭐하나' 등 화기애애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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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후인 2014년 1월 6일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12개 언론사에서 질문을 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너무 화기애애했다. 첫 질문부터 심상치 않았다. <연합뉴스> 기자는 소회를 물었다. 소회를 물은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박 대통령은 '외교적 성과'를 홍보했다.

<채널A> 기자는 박 대통령에게 "업무가 끝난 다음 관저에 가면 무엇을 하는지 소개해 달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박 대통령은 매우 긴 대답을 했는데 "국정을 최종 책임진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하면 개인적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다"고 답해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개인 일 따로 있고, 국정 따로 있지 않고 자나깨나 그 생각하고 거기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고 그러면 어떤 분은 '너무 숨 막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국정에 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55분과 80분, 2003년과 2014년. 두 기자회견은 그렇게 달랐지만 11년 전 기자회견의 분위기가 더욱 생동감 있고,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노 대통령이 언변이 특출나서가 아니다. 목소리나 말할 때의 태도가 좋아서도 아니다.

이유를 꼽아보자면, 11년 전 기자들의 질문이 더 생생했다. 대통령 앞에서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의혹'을 제기했다. 눈을 마주치며 '맞나 틀리나'를 노골적으로 물었다. 그에 대한 대통령 답변 역시 생생했다. 때로 언성이 커지기도 했지만 이내 화면 속 노 대통령은 웃었다.

그 속에서 '건강한 긴장관계'를 확인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11년 전 동영상에 누리꾼들이 더 큰 호응을 보내는 이유 말이다.


태그:#노무현 , #취임 100일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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