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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조지아 주를 많이 여행했습니다. 아주 솔직하게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인종차별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절대로 또 다시 흑인 어린아이가 의료, 교육, 혹은 사회적 혜택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해서는 안 됩니다." (I've traveled the state more than any other person in history and I say to you quite frankly that the time for racial discrimination is over. Never again should a black child be deprived of an equal right to health care, education, or the other privileges of society.)

미국 조지아 주에서 인종차별을 거론한 이런 얘기가 나온 건 1970년이었다. 대중들에게 이 같이 말한 사람은 지미 카터 당시 주지사 당선자였다.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된 바로 그 사람이다.

약 10개월간 북미대륙을 떠돌아다니며 만난 사람들 가운데, 잊지 못할 이를 꼽으라면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전직 대통령이이거나 주지사여서가 아니다.

나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카터 전 대통령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교회 청중(신도)들 사이에 섞여 그와 나눈 딱 두 마디의 대화로 바탕으로 이렇게 판단하는 건 아니다.

그의 생가가 있고, 지금도 그가 살고 있는 조지아 주의 시골 마을을 돌아보면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지미 카터를 몸으로 느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조지아 주 남서부의 '플레인스'라는 곳이다. 인구가 800명도 못 되는 한촌이다. 마을 한복판에, 지금 기억으로 교통신호등이 하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할 정도로 한적한 동네다.

플레인스 중심에는 수십 년 전 운행이 중단된 철도가 있다. 그리고 낡디 낡은 목조 간이역사가 있다. 카터는 1976년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들었을 때 비좁아 터진 이 간이역사를 선거본부로 썼다. 정치 엘리트들이 득실득실한 워싱턴 정가에서 '땅콩 농장' 집 아들로 촌뜨기 취급을 당할 만한 행보였다.

플레인스에는 그의 유일한 제수씨도 산다. 사이빌 카터가 그다. 듬직하면서도 인상 좋은 사이빌은 시숙인 카터에 대해 거의 무한한 신뢰를 내비쳤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지미나 집안에서 지미가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이빌은 지미 카터의 사저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다. 후줄근한 부랑자 모습의 나를 스스럼없이 친절하게 대해주는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었다.

사람 차별 하지 않는 것은 카터 가문의 내력인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사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카터의 생가에서 그런 생각을 더 굳히게 됐다. 카터의 아버지는 1900년대 초반 기준으로 보면, 획기적으로 동등하게 흑인 일꾼들을 대했던 사람이었다.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카터의 아버지는 노예나 다름없던 흑인 노동자들에게 권투시합 라디오 중계를 듣도록 했다. 백인 선수가 흑인 선수에게 몰매를 맞다시피 할 정도의 중계방송 청취도 물론 허용했다.

카터는 훗날 "우리 집 농장 주변에 살던 흑인 노동자들이, 그들의 집으로 돌아간 뒤에야 (흑인 선수가 백인 선수를 이겨서 백인 농장주인 집에서는 참고 있다가) 환호성을 내질렀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흑인들의 환호성도 받아들일 정도로 카터 집안은 인간의 천부적인 권리를 존중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카터는 이런 일들로 인권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인간 존중은 그 집안의 기질 같다. 천부적으로 타고 났다는 말이다. 궁벽할 정도의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 사는 것이나, 또 약자를 돕고, 책을 펴내는 등의 대외적인 활동을 제외하곤 여느 촌로와 같은 삶을 사는 게 그가 뼛속부터 사람 차별을 하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라는 걸 방증한다.

카터는 주지사 취임 직전인 1970년 인종차별의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했다. 하지만 아직도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본거지인 남부에서 인종차별의 기운이 싹 사라진 건 아니다.

조지아는 정서상 미국 남부의 수도 같은 곳이다. 그러나 '어디 이런 사람 또 없나요'라는 말이 저절로 입밖에 나올 정도인, 카터 같은 사람이 조지아 출신인 걸 떠올리면 조지아가 밉게만 보이는 건 아니다.

미국 재즈의 전설, 레이 찰스가 부른 '조지아 온 마이 마인드'(Georgia on my mind)라는 노래가 있다. 흑인들에 대한 박해로 유명한 조지아지만, 그는 흑인 특유의 감수성으로 조지아를 읊조린다. 평화가 없는 땅에서는 평화가 더 간절하다. 평등한 시각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약자에 대한 베풂을 실천하는 조지아 출신의 카터 때문에, 조지아는 오래도록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간이역사
 간이역사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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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주 플레인스의 낡은 간이역. 왼쪽으로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이 보인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선거전에 뛰어들었을 때 본부로 사용한 건물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면 소재지보다 작은 외진 시골의 버려진 간이역을 대통령 선거 본부로 사용한 발상이 이채롭다.

선거전
 선거전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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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사 안의 모습. 지미를 환영한다는 문구와 함께 선거전 당시 사진과 신문기사 등이 벽에 붙어 있다. 부인 로절린 카터 여사와 함께 대선에서 승리한 자신의 기사가 나온 신문을 들어 보이는 카터 전 대통령의 사진(아래 왼쪽)과 주지사 선거 때 기자들이 포착한 사진도 볼 수 있다.(아래 오른쪽)

카터 제수
 카터 제수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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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대통령의 유일한 제수, 사이빌 카터. 오랫동안 몸을 씻지 못한 데다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영락없는 부랑인 행색인 나를 옆 자리에 앉으라며 따뜻하게 맞아줬다. 시숙인 카터 전 대통령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무척 존경했다. 카터 대통령의 사저 바로 옆에서 2006년 겨울 당시 결혼을 하지 않은 듯한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농장
 농장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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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대통령의 생가 입구. 미국 국가사적지로 보호되고 있다. 현재의 카터 사저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공짜로 돌아볼 수 있었다. 마을 길 한쪽에 서 있는 땅콩 인형. 땅콩 농장 집 아들인 카터 대통령의 입모양을 딴 조형물이다.(오른쪽)

생가
 생가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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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장이 딸린 카터 대통령의 생가. 멀리 오른쪽으로 가게였던 건물이 보인다. 흑인 등을 상대로 한 잡화점포로 이용됐던 건물이다. 복원한 잡화점포의 내부 모습. 카터 대통령은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하기 이전까지 여기서 틈틈이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예배
 예배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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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 성경공부 시간에 교회에서 설교하는 카터 대통령. 종종 손을 앞에 모으고 있는 등 겸손함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다. 일요 예배가 끝난 뒤 카터 대통령 부부와 악수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아래 사진 맨 왼쪽의 흰머리가 비칠 듯 말 듯한 사람이 카터 대통령이다.

덧붙이는 글 | 세종시 닷넷(sejongsee.net)에도 실렸습니다. 세종시 닷넷은 세종시의 주요 전화번호, 소식 등이 담긴 커뮤니티 포털입니다.



태그:#카터, #대통령, #조지아,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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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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