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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기 '문학의 겨울'을 이겨낸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 여수 앞 바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오마이뉴스와 계간 <실천문학>이 '제1회 인터넷 신춘문예'를 계획할 때 가졌던 '인터넷 공간에서 진행되는 문예공모에 문학성과 진지성을 갖춘 작품들이 과연 얼마나 투고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했다.

2001년 10월4일부터 12월20일까지 두 달 남짓 진행된 공모. 시 부문에는 400여 명의 투고자가 2000편에 가까운 작품을 보내왔고, 소설과 시나리오 부문에도 각각 150여 편과 250여 편의 작품이 몰려들었다. 기대를 넘어선 것은 응모 편수만이 아니었다. "일정 정도의 수준에 도달한 작품이 여타 신문의 신춘문예 못지 않게 많다"는 평가는 각 부문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제1회 인터넷 신춘문예' 각 부문 당선작과 당선소감, 심사평을 소개한다. 각 부문 당선작은 계간 <실천문학> 2002년 봄호에도 수록될 예정이며, 시상식은 1월 중순에 열린다.

시 부문 당선작(공동당선)

마른 아구
- 김경

얼마나 기다렸는지
물기가 달아나고 없다
앙상한 눈빛, 기억을 털고
처마 밑에 매달려 있다
비오는 날 마루에 앉아
민화투를 치는
저 老妓, 참 오래도 매달렸다.


당선소감:
빈집은 겨우내 얼어 있다. 봄 햇살에 녹으면서 갈라지고 조금은 무너져 빈틈이 보이는 집, 포르르 어느 새 날아온 제비들이 지푸라기를 물어다 집수리를 한다. 지푸라기와 흙 분비물로 수리된 동그란 행복 안에서 지지배배 지지배배 아기 제비들의 야무진 옹아리, 슬레트 지붕 아래 온 식구들 오순도순 피워대던 구들장도 이미 떠난 가족들, 따뜻하게 피우던 아랫목의 온기.

옛날을 그리는 나는 텅 빈 시간을 수리하고 싶어 겨우내 얼었던 마음의 빗장 풀 준비를 한다. 응모 당시에는 기대를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설마 했는데 당선이 되었다. 항상 그랬다. 욕심을 쥐고 있으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다 놓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어느 틈인가 행복이 들어와 있었다.

생명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어머니에게 당선 소식을 전했을 때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올해는 어머니의 병환으로 집안에 어두운 그림자가 떠나지 않았는데, 이번의 기쁜 선물로 가족들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감사해야 될 사람들이 너무 많다. 처음 시의 길을 열어주신 전문수 교수님과 낯선 땅, 울산에서 따뜻하게 그늘이 되어주신 정일근 선생님과 겨울숲 동인들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 아직 미흡한 나를 믿고 뽑아주신 오마이뉴스와 실천문학사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게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김경, 본명 김혜경)

고문(拷問)
- 채수진

참꼬막을 삶는다
펄펄 끊는 물 속으로
입을 앙다물고 몸을
갑옷으로 무장한 그들은
쳐 넣는다
입 벌려!
뜨거운 맛을 봐야 알겠어?
다문 입에서 허옇게 거품을 물고
그가 쩍 입을 벌린다
입 속에는 아무 것도 없다
텅 빈속에 겨우 쬐끄만 목젖하나 달고 있다
네 뱃속에 납덩이가 들어 있다고?
꿀꺽한 수천 억원이, 쬐끄만 목젖이
진주가 되고 있다고?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다
눈물 흘리며 반성문 쓴 놈
시간이 지날수록
누런 혐의들을 내 뱉는 놈들
그런데 주둥이에 주름 잡히도록
입을 꽉 붙이고 있는 놈이 있다
폭탄선언을 하면 여럿 다친다고
참을 수 없는 애국정신에 입각해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고......
아무리 불꽃을 돋우워도 놈은 꿈쩍도 않는다
찬물에 옮겨 달래 보아도 소용이 없다
독한 것!
나는 그 고집스런 주둥이에 예리한 칼끝을 찔러 넣는다
순간, 놈은 퉤하고 얼굴에 뻘물을 내뱉는다
억지로 받아낸 자백은 온통 썩은 뻘물뿐이었다.


당선소감:

오래 전부터 내 안에 또 다른 말을 하는 목젖하나 자라고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세계너머 보이지 않는 것들의 상처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았을 때 슬픔 속에 둘러싸여 있는 그것들과 뒤엉켜 지내왔다. 하지만 더디게만 자라 더듬거리는 말들은 알아들을 수 없었고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겨울 해는 내 얼굴에 차압딱지 같은 붉은 도장을 찍어대며 자꾸만 등을 밀어내고 있었다.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말들을 구겨 넣으며 바닥이라고 생각했을 때 당선 소식이 오고 끝은 또 다른 시작임을 느꼈다. 내 어두운 말들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고 가르쳐 주신 강형철 교수님, 시인의 길로 삶의 방향을 틀어주신 이경림 선생님 그리고 지도해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서툰 말을 알아듣고 고개 끄덕여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그리고 실천문학과 오마이뉴스에 감사드리며 그 뜻에 보답하는 길은 썩은 뻘물 같은 말이 아닌 좋은 시를 쓰는 것이라고 다짐해 본다
(채수진, 본명 채수옥)

시 부문 심사평

예심을 통과한 13명의 작품을 읽으며 우선 즐거웠다. 한결같이 일정한 작품 수준을 획득하고 있었고 세상과 사물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신춘문예는 기존의 공모방식과는 다르게 모든 것이 공개되어 진행되었기 때문에 다소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작품으로서의 완결성과 신인다운 패기를 지닌 작품을 찾아보자는 데 합의하고 본심에 오른 작품을 꼼꼼하게 읽었다. 그중 박병준 김경 채수진 유수 전이현 씨의 작품이 당선권에 들어 있다고 판단하고 다시 한번 엄밀하게 검토하였다.

전이현 씨의 작품 중에는 "진달래, 부평,"을 흥미롭게 읽었다. 노동운동의 열기와 의미를 진달래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는데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의 한 상징으로 진달래를 차용하는 일은 다소 진부하다. 주류적인 시적 경향을 거스르는 것은 해볼 만한 일이나 그 경우 새로운 모색이 절실하다.

유수 씨의 "노량진 역"은 버들피리를 파는 할머니 얘기를 통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흔치 않은 사랑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고 같이 투고한 "환절기"라는 작품이 오늘의 구체적인 국제정세나 사회현실을 시로 받아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작품의 후반이 너무 상식적이었다.

이들에 비해 박병준 김경 채수진 씨의 작품들은 한 단계 높은 미학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되었다.

"봉천동 산 5번지에 남아있는 불빛들"을 투고한 박병준 씨의 시는 '깨진 유리창문은 포장테이프가 간신히 붙들고 있다'에서 보듯 이미 익숙한 서정의 세계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그 무엇을 보여주고 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 대한 섬세하고도 따뜻한 시선이 참으로 눈물겨웠다. 더욱이 '마당 에 고인 물 속 하늘이 할마이 치마색 같네요'("얼굴 없는 기억")라는 구절에서 보듯 범상한 일상에서 우리들 마음 가운데 연면한 본원적 미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낡은 언어의 외피를 걷어내고 그 언어 속에 내재된 리듬을 불러내기도 한다.

김경 씨의 "마른 아구"는 선자들의 눈을 환하게 틔워주었다. 처마 밑에서 건조되는 아구를 잔잔하게 이야기하다가 거기에 비가 들이치는 순간 그 적막 가운데 들려오는 소리를 '민화투 치는 소리'로 슬쩍 바꿔치기 해 우리의 전통적 서정을 환기시킨 후 벼락같은 발걸음으로 마른 아구를 '老妓'라 명명하는 직관의 힘이 놀랍다. 허술하고 퇴락한 마른 아구가 갑자기 우리들에게 육자배기 가락으로 환생하는 기적을 이루었다는 생각이다. 또한 우리는 씨의 "남창가는 버스"를 보면서 경상지역 방언이 순하게 익어있는 것을 보며 감탄하기도 했다.

채수진 씨의 "고문"은 사회적인 문제를 시적 언어로 무리 없이 형상화한 능력이 돋보였다. '내가 입을 열면 많은 이들이 다친다'는 말을 하면서 자신이 저지를 잘못을 소위 물귀신 작전으로 버텨가는 우리 사회 일각의 비리 주범들을 통쾌하게 윽박지르는 솜씨가 보통을 넘었다. 물론 우리는 이 작품을 거론하기 전에 "그 호두나무에는 수 천 개의 방들이 있습니다"를 읽으면서 이 시인이 지닌 상상력의 치밀성과 그 폭을 주목하였고 작품을 끌고가는 오랜 연찬의 흔적에도 안심한 바 있었다.

선자들은 세 명의 작품을 놓고 여러 가지로 고심하였다. 세 명을 공동당선자로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도 있었고 언어형상화능력이 빼어난 작품을 선택하자는 의견, 사회의식이 건강한 작품으로 하지는 의견이 제시되어 당선작을 내는데 난항을 거듭하였다.

결국 우리는 응모한 여타작품이 다소 느슨하다는 판단으로 박병준 씨를 제외하고 김경 씨와 채수진 씨를 예술적 완결미와 건강한 사회의식의 측면에서 격려하는 동시에 서로에게 무엇이 약점일 수 있는가를 참고하라는 의미에서 공동으로 당선시키자는 데 가까스로 합의하게 되었다. 자랑스럽게 시인의 길을 걸어갈 두 분에게 이 말을 덧붙이는 이유는 두 분이 모두 다 훌륭한 시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두 분의 대성을 빌고 낙선한 분들에게도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심사위원 강형철, 이재무)

소설 부문 당선작(공동당선)

차상원 <1366153 마나사>-소설 22번 투고작.
이호경 <임실댁 상경기>-소설 101번 투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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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실천문학 공동주최 <인터넷 신춘문예> ⓒ오마이뉴스

소설 부문 당선작은 위 배너를 클릭하고 들어가 '응모작품보기'를 누르면 나타나는 소설 응모작들 속에서 볼 수 있다(투고작 번호 참조).

당선소감

견뎌내지 못할 시련은 없다고 했던가요? 당선소식을 접하는 순간, 저는 이 말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소설가의 길? 그건 태어났다는 값을 하라는 건지, 생각하고 말을 하고 글을 쓸 줄 아는 값을 하라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또다시 시련의 길로 들어섰다고, 그것도 제 발로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잘 견뎌왔던 만큼 저는 앞으로도 잘 견뎌나갈 것입니다. 그 동안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지만 남은 시간은 제게 더욱 소중하다는 걸 압니다. 이제 이 소중한 시간을 우리네 삶의 이야기로 절절이 엮어서 세상에 펴 보이는데 전력투구하겠습니다. 저는 그런 시련은 얼마든지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제 습작 시절 용기를 주셨던 이동하 선생님, 심상대 선생님, 박상우 선생님, 김형수 선생님, 강경호 교수님. 정말로 고맙습니다. 수많은 시간을 공부하면서 우의를 다져온 문우들과도 이 기쁨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또한 제 글을 선택해주신 심사위원 두 분 선생님께는 치열한 작가 정신으로 글을 쓰는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차상원, 본명 차인숙)

당선소감

추운 겨울입니다. 뙤약볕 아래 노점상들이 늘어서서 제게 소설의 주인공 임실댁을 떠올리게 했던 거리에도 매서운 추위가 한창입니다. 그 거리에는 며칠 전부터 누더기를 걸친 한 걸인이 엎드려 있습니다. 그 옆을 지나가면서 깡통 속에 백 원짜리 동전 세 개를 땡그랑 떨어뜨렸습니다. 원래 색을 알길 없는 누더기 옷을 걸친 채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있는 그가, 무스탕 입고 푹신한 깃을 높이 세운 모습을 볼까봐 얼른 발걸음을 옮깁니다.

열 걸음쯤 걷다가 그를 되돌아봅니다. 다음 날은 그가 나오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제도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저는 두터운 누비 코트에 숄까지 둘렀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지갑 홀랑 털어 주며 이렇게 추운 날엔 따뜻한 곳에서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등대고 자라고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갑은커녕 숄 하나 벗어주지 않은 채 동전 서너 개 땡그랑 넣고 황급히 자리를 뜨는 알량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글을 쓸 때만큼은 부끄럽지 않은 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제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나마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부족한 제 글에 과분한 점수를 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구요, 앞으로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이호경)

소설 부문 심사평

12월 예심에 넘겨진 작품은 80편이 넘었다. 수작들도 많았다. 본심에서 다시 읽을 작품으로 여덟 편을 골랐다. 응모 마감시간인 12월 20일 오후 6시 이후에 접수된 작품들의 처리방법에 대해서 약간의 고심이 있었다. 심사에 포함하여 응모자가 자기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주되 최종 당선작에서는 배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12월 예심을 통과하여 본심 대상에 합류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

① 82번 SIDH의 [작은 저항](중편)
② 101번 이호경의 [임실댁 상경기]
③ 106번 남수의 [카프카 A-320]
④ 109번 박연의 [십오세]
⑤ 118번 김순화 [침입자]
⑥ 150번 mm의 [토요하루79]
⑦ 152번 현담의 [침묵의 산하]
⑧ 154번 김은덕의 [오광패 별곡]

[인터넷신춘문예]의 월별 예심제도는 오프라인 신문의 신춘문예와 같이 단 며칠만에 투고작 전부를 읽어야 하는 부담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었다. 단 며칠만에 수 백 편의 작품을 '작품으로'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성실한 독자가 되어 한 작품 한 작품을 그 작품의 내적 질서 속에서 감상해나간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소설읽기의 즐거움으로부터 가장 철저한 소외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바로 소설장르의 심사위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가능하면 투고작들에 대한 '심사위원'이 아닌 성실한 '독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19편의 본심 대상 작품 중에서 먼저 우리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한 작품은 7편이었다.

강병융의 [변태](13번)는 재미있게 읽히는 작품이었다. 표면에 드러난 이야기의 도발성이 특징적이었다. 그 '변태'적 상황설정에 대해 독자들은 호감을 느낄 수도 있고 혐오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에 있지 않고 그러한 도발성이 이야기 표면에 머무르고 있을 뿐 내용적 도발성으로 나아가지 못하다는데 있었다. 내용적 전투성이 없는 도발성의 거처는 선정주의의 영역을 벗어나기 어렵다.

구절초의 [겨울손님](16번)은 한 뜸 한 뜸 뜬 듯한 성실하고 안정된 문장이 돋보였다. 그러나 너무 오래 되풀이 되어온 이야기가 걸어가는 진부한 서사의 통로를 끝내 피할 길이 없었다. 그의 중편소설인 [독종](72번)은 집요하고 일관된 진술의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겨울손님]에서 보여준 저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인기작가가 사용해서 널리 유포되고 이미 식상해져 버린 유아적 문장을 이 작자가 왜 사용하고 있는지 못내 궁금했다.

'연희,......'하는 문장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문체의 참신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 맛이 특별히 발휘되는 것도 아니다. 다루고 있는 세계도 이미 일군의 작가들에 의해 90년대를 풍미한 너무 익숙한 영역이었다. 작자가 지닌 역량이 안타까웠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일가를 이루겠다는 야심의 표현이 아닐까.

박종영의 [악몽](24번)은 직장인들의 일상을 다룬 아주 평이한 전반부와 휠링당원들이 출현하는 후반부의 비약이 아주 대조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 비약은 매우 야심적이었지만 근거와 필연성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작품의 전체적 통일성이 아쉬웠다.

김미상의 [a piece of gum](30번)은 풍부한 표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무대를 팔레스타인으로 설정했다면, 팔레스타인과 이 소설을 읽을 우리를 연결하는 공감의 부교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남수의 [카프카 A-320](106번)은 현실과 가상세계의 벽을 허무는 프로그램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보안수색대원의 현실과 가상의 셰계를 넘나드는 일상을 깔끔하게 그려낸 문체가 좋았다. 마지막 반전도 인상적이었지만 이야기를 기술적인 문제에서 인간의 문제로 끌어올리려는 관심의 부족이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mm의 [토요하루79](150번)은 짧고 튀는 문장이 인상적이었으며 예민한 감수성도 느껴졌다. 그러나 완성되지 못한 채(완성하지 않은 채?) 방치된 문장들은 새로움의 영역이 아닌 부족함의 영역에 속한다. 그 감수성이 기성의 문장들에 포획되지 않으면서 자기 완성도를 획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다음으로 남은 12편 가운데 다시 8편이 우리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다.

그래도의 [거미는 거미줄에 산다](39번)은 세태를 실감 있게 그려내는 솜씨가 돋보였고 문장도 능숙했다. 그러나 세태의 표면을 그리는데 머무르고 만 것이 이 작품의 한계였다. 일반적 상상력을 넘어서는 작가의 사유와 해석능력이 아쉬웠다.

오듕의 [무면허](12번)은 재치있는 발상과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이었다.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는 힘도 있었지만 다 읽고 난 다음, 남아있는 여운이 너무 작았다. 눈과 팔의 돌출이 지니는 의미를 확장시키려는 작자의 관심이 필요한 작품이었다.

정미영의 [갈증](6번)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 일상과 내면에 잠재한 위험성을 환기시키며 독자를 끌어당기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지극히 현실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아이의 피살사건과 그 이후의 환상적 기법으로의 '비약' 사이의 불균형이 너무 심해서 소설의 통일성이 훼손되었다. 타인에 의해 저질러진 매우 현실적 사건으로부터 사건이 시작되었는데 갑자기 남자보다 더 크게 충격을 받은 아내를 두고 집을 나가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아내의 태도 자체가 돌발적이어서 후반부의 '비약'이 설득력을 얻기 어려웠다.

현담의 [침묵의 산하](152번)은 투고작 중에서 드물게 분단의 비극을 환기시키는 무게 있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다소 피상적인 접근과 평면적인 결말이 흠이었다. 조금 더 일찍 발표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뒤따랐다.

SIDH의 [작은 저항]은 군대 내의 사망사고를 추적해가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그러나 소설 초반의 긴장이 후반으로 가면서 점점 약해지고 말았다. 기대되었던, 죽음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집요함과 반전의 묘미를 제공하는 대신 작자는 조직사회의 이기적 행태를 해설하는 안이한 길로 가버렸다.

박연의 [십오세](109번)는 비밀과외를 매개로 한 사춘기 소녀의 깜찍한 시선을 통해서 80년대를 그려낸 작품이었다. 소녀의 발랄한 시선과 경쾌한 문장이 돋보였다. 그러나 깔끔한 작품이지만 삽화적 수준을 머무르고 있다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참고로 함께 검토한 [마술]은 결말이 허술했다.

김순화의 [침입자](118번)는 아이를 잃은 여자의 가난에 찌든 노후를 집요하게 그려낸 수작이었다. 꼼꼼한 서술과 묘사가 뛰어났다. 그러나 갑작스런 장면전환에 의해 소설의 흐름이 끊기고, 기계적으로 짜여진 구성과 전개는 소설을 답답한 늪에 빠뜨리는 결과를 야기했다.

박남원의 [천식](54번)은 이혼을 앞둔 남자주인공의 처지와 심정을 잘 그려낸 작품이었다. 한 시대의 이상에 도전하려고 했던 주인공의 오늘날 일상은 깊은 쓸쓸함을 자아냈다. 소설 전반에 진정성이 스며 있었지만 수필적 감상에 머무르고 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소설적 힘이 떨어지는 결말이 특히 안타까웠다.

김은덕의 중편 [오광패별곡](154번)은 투고작 중에서 작가적 개성이 가장 뛰어났다. 특히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입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권이었다. 다루고 있는 세계가 다소 낡은 것이기는 하지만 작가로서의 능력은 의심할 바 없었다. 미련이 컸지만 마감시간을 넘겨 투고된 작품은 평가받을 기회는 부여하되 당선 대상에서 배제한다는 방침에 따라 마지막 경합 대상에서 이 작품에서 제외하였다.

최종적으로 우리 손에 남은 작품은 이호경의 [임실댁 상경기](101번)과 김선의 [크로스 스티칭](40번), 차상원의 [1366153 마나사](22번)이었다.

[임실댁 상경기]는 실패한 농사를 접고 서울로 올라와 붕괴된 아들네의 자식들을 돌보며 부잣집의 파출부로 살아가는 임실댁의 애환이 깃든 삶의 이야기다. 자신의 불우한 손주들보다 훨씬 나은 대접을 받는 사장 집의 애완견을 미워하지만 종내는 그 애완견의 처지가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해가는 과정이며 자식의 파괴된 가정을 추스려가는 그녀의 고단한 일상이 눈물겹다. 그러나 농촌 이야기 대목의 식상함과 집나간 며느리가 갑자기 돌아오는 감상적인 결말이 흠으로 꼽혔다.

[크로스 스티칭]은 국경을 넘어서는 여성들의 상처입은 삶을 잔잔하게 그려낸 수작이었다. 여성이 지닌 봉건의 짐을 이국 땅에 와서도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벗어나지 못했던 필리핀 출신 할머니를 장사지내고 새로운 삶에의 의지를 다지는 주인공의 모습도 좋았고 문장도 안정되어 있었다. 문제는 필리핀 출신 할머니만 확연하게 소설적 성격을 획득하고 있을 뿐 나머지 인물들의 성격 형상화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인물들이 자기 성격을 가지고 매 상황에 참여하여 그 성격을 드러내고, 그들의 성격에 의해서 상황이 전개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전개의 필요에 따라 인물이 배치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흐릿한 인물들의 성격이 외국이라는 무대의 거리와 겹쳐지면서 소설의 실감을 약화시켰다.

[1366153 마나사]는 IMF 이후 위기에 몰린 도시 서민의 힘겨운 삶을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자기 삶의 터전으로부터 추방당한 평범한 부부가 나중에는 어린 여학생들한테까지 모욕당하고 패배하며, 결국에는 위폐범이 되는 과정은 우리 시대에 대한 한 편의 깊은 은유이기도 하다. 서민의 삶을 꼼꼼하게 포착해낸 실감있는 디테일과 시대를 개괄하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임실댁 상경기]와 [크로스 스티칭]은 각기 장점과 약점을 뚜렷이 지니고 있고, 서로의 관심도 전혀 달라서 어느 한 쪽을 지지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결국 우리는 [임실댁 상경기]로 기울었다. [크로스 스티칭]에 비해서 오히려 더 분명한 약점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었지만 장점 역시 더 분명했기 때문이다.

고단함 속에서도 스스로 손주들과 애완견의 비빌 언덕으로 남아, 마침내 그 언덕으로 집 나간 며느리를 불러들이는 임실댁의 생명력이 지닌 미덕을 우리는 외면할 수 없었다. 옹호할 가치가 있는 인간을 옹호하는 것이 소설이 지닌 위대한 미덕의 하나라면 스스로가 생명이고 스스로가 둥지인 사람, '임실댁'은 마땅히 그 미덕의 세계에 속해 있다 할 것이다.

[1366153 마나사]는 지나치게 평이한 전반부와 신인다운 패기의 부족이 우리를 마지막까지 망설이게 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문장과 구성, 주제를 다루어 나가는 솜씨가 가장 안정된, 약점이 가장 적은 작품임에는 분명했다.

우리는 결국 [임실댁 상경기]와 [1366153 마나사]를 공동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두 작품이 거두고 있는 성과와 함께 이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가능성에 주목했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한다. 아울러 아쉽게 탈락한 분들에게도 위로의 인사를 전한다. 우리는 우리가 소설을 읽는 절대적인 능력을 지녔다고 믿지 않으며 우리 눈의 어두움으로 인하여 소중한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 묻혀버리지 않았을까, 걱정한다.
응모한 투고자 모두가 문학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을 발휘하여 의미있는 결실 이루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김영현, 방현석)

시나리오 부문 가작

심용학 <포스트카드>.

시나리오 부문은 아이디어 도용 등의 문제로 당선작은 공개치 않고, 당선소감과 심사평만을 공개한다.

당선소감

79년 80년을 배경으로 한 암울한 이야기를 읽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인터넷 공모 운영진들에게 먼저 감사를 드린다. <포스트카드>는 80년에 있었던 한 시대의 폭력에 대해서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보내는 작은 엽서 같은 느낌으로 썼다. 당시 변방에서 살던 우리 가족이나 이웃들은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몰랐다.

그 날 방송에서 중계했던 권투 중계에 열광하고 부산에서 일어난 부녀자 토막살인에 대해 얘기를 했다. 정보가 차단되고 진실이 날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 시대의 거대한 폭력성이 가려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전염병처럼 우리의 일상 속으로 스멀스멀 들어와 버젓이 낯짝을 들고 우리의 가족 누구를 할퀴고, 혹은 학교 안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활개를 치고 다녔을 것이다.

그럭저럭 행복한 집안, 이러저러한 친구,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느 집 아이와 다름없는 평범한 소년조차도 그 당시 만연했던 폭력에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었다는 내용을 담고 싶었다. 이것이 <포스트카드>를 쓰게 된 동기다. 더 열심히 작품을 써 나가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고 꾸준하게 작품을 쓰겠다. 그리고 제1회 인터넷 신춘문예의 수상자라는 기쁨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심용학)

시나리오 부문 심사평

12월 예심 대상작은 12월3일부터 최종 마감일인 12월20일까지 접수된 148편이다. 마감 직전 응모가 집중되는 공모전의 속성대로 예심 대상작이 늘어난 만큼 소재와 장르도 이전 예심 때보다는 훨씬 다양해졌으며,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12월 응모작 역시 시류를 좇는 관습적인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개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16편을 본심에 올리기로 했다. 12월 예심 결과가 최종 심사평과 같이 공개되는 점을 감안해 개별 작품에 대한 약평은 생략한다.

--12월 예심 통과작
<눈물>(김서령)
<그들만의 외침>(김태곤)
<코드명 와이>(김재희)
<달리는 건 즐거운 일이다>(이인미)
<푸른 별의 사라센인>(이지원)
<허니문>(장은미)
<세계의 바닷가>(윤여름)
<사랑은 없다>(이동호)
<팻 크래프트(Fat Craft)>(니체타)
<알게 모르게 밝혀지는 택조씨의 비밀>(주원옥, 주원규)
<오후만 있던 일요일(A Killers Holiday)>(evis)
<나비야 어딨니>(니체타)
<지 아이 최(G.I.Choi)>(이찬복)
<아직 말 못해>(채설화)
<고마워요>(채지혜)
<유리서사(Librairie Yuri)> 도희서

총평은 한마디로 상향 평준화. 시나리오를 쓰는 수준과 응모작의 완성도는 전반적으로 안정적이었으나, 읽는 이를 매료시키는 돋보이는 작품은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조직 폭력배, 깡패, 양아치와 경찰, 형사 등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코믹 액션과 수사극이 많았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스포츠, 통일, 노동문제 등을 비롯해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사회성 드라마, 대체역사극, 청춘 멜로영화 등도 있어 소재와 형식은 비교적 다양한 편이나 이에 걸맞는 주제와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구현하는데는 미흡한 작품이 많아 아쉬움이 컸다.

작품 내적으로는 미스터리하거나 정신착란, 가정범죄에 의한 트라우마 등의 사회병리적인 요인으로 상처받은 인물과 정서를 묘사하는 무거운 분위기가 강했다. 형식적으로는 영화적인 설정이나, 드라마, 인물 만들기에 있어서도 관습과 유행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 많았고, 폭력, 연쇄살인, 테러 등의 둔탁한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특히 예심에서 걸러내긴 했지만, 이미 익숙한 영화의 시각적 이미지를 답습하거나, 기존 영화들의 스타일과 스토리 라인에서 착상한 듯한 작품과 심지어 TV드라마나 다른 영화에서 모티브와 소재, 인물, 공간 등의 설정을 그대로 따오거나 부분적으로 표절 의혹을 살 수도 있는 정제되지 않은 작품도 있었으며, 제작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SF, 판타지 대작도 일부 있었다.

총 응모작 총 211편 중 예심 통과작은 33편(10월 7편, 11월 10편, 12월 16편). 심사기준은 현실적인 영화화 가능성을 주요하게 검토하지만, 소재와 영화적 설정의 참신함, 시나리오의 완성도, 대중성 등도 중요한 평가 근거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예심 통과작 33편 중 <포스트카드>(심용학), <의심을 버려라>(김미나), <아줌마 부활하다>(신수원), <오후만 있던 일요일>(evis) 등 4편이 최종심사 대상작으로 좁혀졌다. <의심을 버려라>는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부부가 서로 의심하며 범인으로 몰아가는 설정이 흥미롭다 는 평가를 받았지만, 반전이 극적이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입체적이지 못하다는 비판 또한 적지 않았다.

또 아줌마라는 호칭이 상징하는 억압과 상처를 극복하고 자기 생활을 찾아나가는 여성을 이야기하려는 시도가 긍정적 이라는 이유로 추천된 <아줌마 부활하다> 역시 소재가 참신하지 않고, 시나리오가 후반에 가면서 급격하게 무너지는 것이 큰 결함으로 지적되었다.

한편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직업은 킬러지만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일상과 순수함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미덕이 있지만, 일부 설정에 무리가 있고 킬러라는 소재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 감점 요인이었다.

반면 <포스트카드>는 80년대 한국사회의 폭력성과 아픔 등 어려운 이야기를 가족, 학교, 아이들의 이야기로 잘 풀었으며, 간단치 않은 주제의식을 야심만만하게 밀어붙인 신인다운 패기가 돋보인다는 호평을 받았다. 게다가 과격한 야심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높고, 특히 캐릭터 묘사, 대사, 신(scene)구성 등이 좋아 작가적 역량이 기대된다는 평가에 이르렀다.

그러나 광주항쟁 등 시대적 폭력, 학교폭력, 가족문제 등을 모두 싸안고 있는 현재 시나리오의 과욕과 20년 전 이야기에 대해 어떤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느냐는 과제와 주요 등장인물이 어린이들이라는 점,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 등, 대중상업영화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판단해 가작으로 뽑기로 했다.

심용학 님의 입선을 축하하고, 심사위원들의 뜻을 모아 모든 응모작가들에게 감사와 격려 인사를 전한다. 더욱 정진해서 좋은 작품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심재명, 오기민, 조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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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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