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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책표지.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책표지.
ⓒ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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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이 내년에 베트남으로 열흘 정도 해외이동 수업을 갈 예정입니다. 학교에서는 사전 학습의 일환으로 베트남과 관련한 책 몇 권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라고 했습니다.

반레의 장편소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도 그 과제 중 하나입니다. 책을 찾아봤으나 벌써 십몇 년 전에 나온 데다 세인의 관심을 끄는 베스트 셀러도 아니었던 탓에 이미 절판되었더군요. 인터넷 중고서점에서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지역 도서관 전체에 딱 한 권이 있어 서둘러 대출을 받았습니다. 읽고 난 후 아들과 책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말이지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생각들...

인간의 인식이 이미지 조작에 얼마나 허술한 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생각들이 바로 그것인데 영화나 소설을 통해 우리는 이 전쟁이 마치 미군이 독일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승리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지요. 제2차 세계대전의 총 사망자를 약 5300만 명 정도로 추산하는데 이중 43%인 2300만 명이 바로 구 소련, 즉 러시아인들의 죽음입니다. 이중 소련군 전사자는 760만 명 정도로 전체 미군 전사자 수의 26배, 영국군 전사자 수의 19배라고 합니다.

소련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하루 평균 7950명 병사의 목숨을 독일군에게 바쳐야 했고 스탈린그라드와 쿠르스크 단 두 번의 전투로 미군과 영국군이 대전 전 기간에 걸쳐 입었던 손실과 비슷한 병력을 잃었다고도 합니다.

어쨌든 사상자 수만 놓고 봤을 때 이 전쟁은 독일과 소련이 민족의 운명을 걸고 맞서 싸웠던 것이고 영국, 미국 등 그밖의 전쟁은 주변에서 벌어진 변두리 전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2차 세계대전 하면 간악한 독일군과 정의의 수호신 미군과의 전투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이는 일종의 상징 조작일 것입니다.

이런 인식에 반기를 들고 처음으로 변화를 시도한 것이 1993년에 나온 요셉 빌스마이어 감독의 <스탈린그라드>였습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각자의 처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그는 독일 사람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본 것이지요.

람보 활약상만 보여준 베트남전... 실체는

베트남전 역시 이런 형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계 최강 미국을 최초로 패퇴시킨 전쟁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늘 람보나 청룡부대 백마부대 용사들의 활약상만을 떠올렸지 어떻게 그들이 승리할 수 있었는지를 심각하게 따져 보지 않았습니다.

반레의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은 실제 이 전쟁에 10년 동안이나 참전했던 작가의 실감나는 상대적 시각을 보여 주는 전쟁 소설입니다.

본명이 '레지투이'인 작자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자원 입대해 미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제대 후 작가로 활동하며 필명으로 쓰는 '반레'는 이런 와중에 전선에서 만난 친구로 틈만 나면 시를 쓰고, 시집을 읽었던 시인 지망생이었다고 합니다. 아깝게 전사했다고 하는데 친구의 못다 이룬 꿈을 살아 남은 '레지투이'가 필명으로나마 대신 이룬 셈이지요.

1966년 반레의 군 입대동기는 총 300명이었는데 종전 때까지 살아 남은 사람은 불과 다섯명. 이 소설의 주인공 '응웬꾸앙빈'으로 표현된 '호앙'은 그의 고향 친구이자 입대 동기였는데 역시 전사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반레는 295명 전사한 친구들을 위한 진혼곡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우리도 여성들이 학교 이성 선배를 '오빠'라고 부르곤 합니다. 소설 속 베트남에도 이와 비슷한 풍습이 전해지는데 오히려 우리보다 더 강도가 높아 군대에서 조차도 상급자를 '형'이나 '오빠'로 부르는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곤 합니다.

이외에도 죽은 영혼에게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이 있고 배를 타고 건너야 비로소 저승으로 갈 수 있다는 것, 그럴 때 뱃사공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 것, 망자를 위해 제사 지내는 것 등등 우리나라와 베트남이 같은 유교 문화권에 속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문화적 동질감이 곳곳에 나타납니다.

베트남 전쟁-저자는 베트남 사람들이 전쟁을 원한 것도 아니고 프랑스와 미국인들이 억지로 들어와 싸움을 걸어 온 것이므로 베트남전이란 명칭에도 반대한다고 합니다-을 베트남 사람의 눈으로 들여다 본 흔치 않은 이 소설을 통해 우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참혹했던 전쟁의 한 단면을 찬찬히 훑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결론은 평화! 책 제목처럼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전쟁없는 곳에서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기를 작가는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반레 (지은이) | 하재홍 (옮긴이) | 실천문학사 | 2002-12-25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반레 지음, 하재홍 옮김, 실천문학사(2002)


태그:#베트남전, #반레,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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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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