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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화두 삼아 2014년 한 해를 돌이켜보면 그저 참담할 따름이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심각한 관권 부정 선거였음이 제기되면서 그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고자 하는 시민 사회의 노력이 해를 두 번이나 바꿔가며 이어져 왔지만, 이미 권력을 장악한 이들은 이를 집요하게 방해해 왔다.

권력의 카르텔에 저항해 부정 선거의 진상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검찰 총장은 청와대 권력이 주도한 사생활 시비 끝에 불명예를 잔뜩 뒤집어쓴 채 자리에서 쫓겨났고, 그와 의기 투합했던 수사 팀장도 보직 해임 당했다. 대법원은 스스로 규정을 어겨가며 시민 사회가 제기한 대선 무효 소송 판결을 미뤄 왔고,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촛불 시위는 좀처럼 경찰 버스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민주주의는 인권과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깊고도 넓게 얽혀 있다.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은 곧 시민이 '정치권'을 누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민주 정부는 각종 자유와 권리 등 시민의 '공민권'을 보호하고자 애쓸 가능성이 크고, 적어도 이를 침해할 필요를 느낄 가능성이 작다. 나아가서 민주 정부는, 독재 정부에 비해 시민의 '사회권' 요구를 경청할 가능성이 크다. 공명 선거는 민주주의의 한 기둥이니 부정 선거가 치러졌음은 인권의 보루인 민주주의의 근간이 훼손됐음을 의미한다.

18대 대통령 선거 이래 한국의 인권 상황에 악영향을 미친 중대한 사정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관권 부정 선거는 시민의 '정치권'을 유린했고, 시민이 여기에 항의하자 정권은 이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각종 자유와 권리를 탄압해 왔다. 거기다 부자 감세, 법인세 증세 반대, 세원 넓히기 등 신자유주의 조세 정책 밀어붙이기와 각종 복지 공약 파기를 통해 시민들의 '사회권'도 위축했다.

2014년 인권 참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불법 대선 개입과 간첩 조작 공작의 면면이 밝혀지면서 청와대와 국정원이 한참 곤경에 몰려 있던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적절히 대처했다면 전원을 구조할 수 있었지만, 구조 당국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대다수인 300여 명의 시민을 사실상 수장하는 철저한 무능력을 보여주었다. 부정선거 신비로 정통성이 취약해진 데다 시민의 안전마저도 지키지 못하는 무능을 드러냄으로써 위기에 빠져든 정권은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단식까지 불사하며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시민에 대해 무시와 기만으로 일관하는 등, 정부와 여당은 진상 규명을 방해하느라 안간힘을 썼고, 무능한 야당은 여당에 끌려 다니기만 했다. 300명이 넘는 시민이 수장 당했지만, 제대로 책임지는 이는 없었고, 진상 규명은 요원하기만 하다. 세월호 참사로 유일하게 구조 받은 것은 국정원이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곤경에 처한 정부와 여당이 극우 언론을 앞세워 전가의 보도인 '종북 몰이'를 벌임에 따라 많은 이가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카카오톡이 검열 당하고, '일베' 고등학생이 '종북'을 빌미로 시민 콘서트에 폭발물을 투척하는 상황,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사건'으로 위기에 부딪친 대통령이 이 명백한 백색 테러를 우려하기는커녕, 스스로 이 시민콘서트를 두고 '종북'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18대 대선 2주년에 때를 맞춰 나온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은 정당 활동 및 사상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많은 법학자가 지적하듯,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결을 내렸으니, 헌재야말로 학자들이 2014년을 압축해서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지정한 '지록위마'의 정점을 찍은 셈이다.

산업 노동 쪽으로 눈길을 돌려보면, 노동권 침해가 일상화돼 있음을 볼 수 있다.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턱없이 부족한 정부와 재벌이 신자유주의 지구화를 빌미삼아 노동 시장 유연화를 힘으로 밀어붙여 온 결과, 한국은 이제 OECD 나라 중 노동 시장이 가장 유연화 되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가 됐다. 2014년 정부 발표 공식실업률은 3.1%였지만, 국제노동기구(ILO)의 새 기준을 적용해서 조사한 실업률(체감 실업률에 더 가깝다)은 무려 10.1%였다. 숨겨져 있던 실업자 대부분은 구직 단념자 등 청년 실업자였다. 구조 조정, '알바' 채용, 비정규직 채용이 일상화된 가운데, 신자유주의는 이제 노동자의 의식 속에 내면화돼 있다.

한국 노동자들은 OECD 최고율의 산업재해 발생을 감수하면서 OECD 노동자 가운데 최장 시간을 일하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역시 가장 심하다. OECD 최고 수준의 빈곤율, 자살률, 이혼율,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세계 최저 수준의 체감 행복지수 등이 이와 같은 노동권 침해와 깊게 관련되어 있는 것일 터인 데도 자본과 국가의 반노동적 자세는 요지부동이다.

최근 발생한 대한항공 부사장의 승무원과 사무장에 대한 '슈퍼 갑질'은 오랫 동안 노조 설립 자체를 허용하지 않은 삼성그룹의 행태와 더불어 2014년 오늘 대한민국 '천민 재벌'의 전근대적 노동자관의 민낯을 보여줬다. 대자본의 이익이 걸린 사안에서는 늘 작아지기만 하는 법원은 쌍용차 정리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고, 이에 항의해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시작하던 날, 또 한 명의 해고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26번째 '해고에 의한 사실상의 살인'이었다.

국가-시민관계, 노사관계 영역뿐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여전히 인권 사각지대가 널려 있다는 점도 거듭 확인되었다. 2014년은 특히 군대 내부 인권 침해가 유독 심하게 문제가 되었던 한 해였다. "참으면 윤 일병 되고, 못 참으면 김 병장 된다"는 말이 군내 인권 상황의 심각성을 실감할 수 있게 해줬다. 여군 대위의 자살 사건은 여군에 대한 성추행이 간부라고해서 피해 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었고, 대학 교수에 의한 제자 성추행도 빈번하게 회자됐다.

그밖에 일일이 거론할 수 없는 수많은 인권 침해 사례들이 알려졌다. 이 사례들은 아직 인권에 관한 인식, 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와 관행이 성숙하지 못한 2014년 대한민국에서 인간이 만나는 장 어디에서나 크고 작은 인권 침해가 일상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반화해서 말하자면 폐쇄적인 집단, 위계가 엄한 집단일수록 '을'에 대한 '갑'의 인권 침해가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 2014년 대한민국 인권 실상은 이처럼 참담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권2014, #사회권, #정치권,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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