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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프팅하러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 황폐한 돌 산 위에 푸른 밭과 집 몇 채가 기적처럼 놓여있었다.
 래프팅하러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 황폐한 돌 산 위에 푸른 밭과 집 몇 채가 기적처럼 놓여있었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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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병의 위험을 무릅쓰고 라다크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셋으로 분류해 보자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를 읽고 라다크를 방문한 사람들과, 판공초를 비롯한 천혜의 자연을 만끽하러 온 사람들, 그리고 고산병을 감수하면서까지 온갖 종류의 야외 스포츠를 즐기러 온 이들이다.

<오래된 미래>의 라다크를 상상하며 이곳에 온 나는, 이 높은 곳에서 어떤 야외 스포츠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더욱 레 시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여행사들을 보며 의아했다. 그리고 그들의 주 수입이 각종 투어와 트레킹 같은 여행 상품에서 온다는 데 깜짝 놀랐다.

라다크를 방문한 이들의 99퍼센트는 판공초를 방문하지만, 시간적 여유와 더 큰 모험을 원하는 이들은 누브라 벨리나 초모리리와 같이 판공초보다 더 멀지만 그만큼 외부인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으로 2박 이상의 여행을 가기도 한다. 숙소에서 만난 한 스페인 부부는 1주일 일정의 트레킹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로서는 아직 꿈도 못 꿀 일이다.

오며 가며 레 시내에서 마주친 한국인 여행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평판이 좋은 여행사를 알게 됐다. 만나는 이마다 그 여행사의 얘기에 엄지를 번쩍 들기에 J와 나도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창스파 로드를 쭉 따라 걷다 보니 유리창에 낯익은 한국어가 적힌 종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게가 보였다. 이곳이 바로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여행사 '히말라얀 타메르(Himalayan Tamers)'다.

한국 고향 선물 받은 이 남자의 '따뜻한' 여행사

여행자들에게 늘 친절한 용해씨.
 여행자들에게 늘 친절한 용해씨.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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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행자들에겐 '용해네'로 더 알려져 있는 사무실로 들어서니 활짝 웃는 모습의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키가 좀 더 작은 쪽이 이 여행사의 주인인 용해씨, 큰 쪽이 옆 기념품 가게 주인이자 용해의 '베스트 프렌드'인 톈진이다. 사무실 안은 말 그대로 '한국' 투성이다. 태극기, 한국어로 쓰인 감사 편지, 한국인들과 찍은 사진이 벽과 책상 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용해씨에게 한국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된소리 가득 들어간 한국어로 대답을 한다. "쪼끔. 쪼끔 알아요" 왜 이름이 용해냐고 물었더니 이전에 이곳을 찾았던 한국인 청년이 용해씨에게 '강용해'라는 이름과 전라북도라는 한국 고향까지 만들어줬다고 한다.

용해씨와 톈진과 함께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곳에 왜 그리도 많은 여행자가 몰리는지 알 것 같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드는 용해씨와 톈진은 유쾌하고 밝은 사람들이었다. 그의 여행사를 이용하지 않아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누구에게나 기꺼이 정보를 주고, 도와주는 친절함까지. 옆에서 보면서 '저런 정보까지 다 알려주어도 되나?' 싶을 정도다.

여행은 언제나 낯섦과 마주하는 일상의 연속이기에 그 속에서 만나는 '마음 둘 곳'은 더 큰 반가움과 고마움으로 다가온다. 쉽게 믿었다가는 코 베이기 십상인 여행길에서 선의를 가지고 정직하게 일하는 이들을 만나는 건 인도에서 깨끗한 시트가 깔린 침대에서 자게 되는 일만큼이나 황송한 일이다. 그런 의미로 용해씨의 사무실은 여행자들에게 믿을 만한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듯했다.

하물며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도 달라지는 게 사람의 간사한 마음인데, 자신의 필요를 충족한 이들이 인사 없이 훌쩍 떠나는 일이 일상인 관광지에서 볼일 끝난 로컬 여행사의 사장에게 진심 어린 편지를 남기고 간 이들이 여럿이라니. 용해씨는 한결같이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나 보다.

그의 책장에 있는 몇 권의 한국 책들은 알고 보니 용해씨의 한국인 친구들이 쓴 책이었고, 거기에는 그와 텐진의 이름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도 함께 쓰여 있었다. 책이 출판되고 라다크까지 책을 보내줬다는 한국인 친구들의 얘기를 하며 그는 웃었다.

라다크에 도착한 후 믿을 만한 누군가를 찾고 있다면, 넘쳐 나는 여행사들 속에서 갈피를 잃었다면, 자신 있게 용해씨네 사무실에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어느새 친구가 되어 톈진의 농담에 웃으며 함께 수다를 떨다가 라다크를 떠나는 날 많은 이가 그랬듯 이별 편지를 한 장 건네게 될 것이다.

용해씨의 단짝 친구 텐진. 레 시내에서 제일 유머러스한 사람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용해씨의 단짝 친구 텐진. 레 시내에서 제일 유머러스한 사람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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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당신, 무례함이 지나쳐 무식해 보이네요

길 가다 만난 한국 여행자들에게서 얻은 또 하나의 솔깃한 이야기는 바로 '래프팅'이었다. 보통 일박 이상이 소요되는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당일 아침 일찍 떠났다가 해 질 녘에 돌아오는 짧은 일정 덕에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기엔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자주 간단다. 래프팅을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멋진 풍경과 짜릿하게 물살을 타는 래프팅이 기대보다 더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 말에 귀가 솔깃해진 우리는 그날 밤 결국 래프팅을 예약하고 말았다.

설렘 가득 품고 나선 아침, 20인승 버스 한 대가 여행사 앞에 멈춰 섰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피하려 사무실 안에 들어가 청소를 하는 여성 직원과 얘기를 나누는데, 딱 봐도 한국인으로 보이는 20대 남자 한 무리가 벌컥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서 하는 행동이 정말 가관이다. 청소를 하고 있던 직원에게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퉁명스러운 말투로 한마디를 툭 던졌다.

"Where is toilet(화장실 어디에요)?"

미처 알아듣지 못한 그녀가  "Sorry?(뭐라고요?)"하고 되묻자 인상을 팍 구기며 짜증이 잔뜩 묻어난, 정말이지 무례한 말투로 문장도 아닌 단어만 하나를 또 툭 내뱉는다.

"Toilet(화장실)."

그녀가 문밖으로 나가서 오른쪽으로 돌라고 설명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그 사람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홱 하고 등을 돌려 나가버렸다. 아니 여기 화장실이라도 맡겨 놓으셨나? 같은 한국인이라는 게 부끄러워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우리가 "미안하다" 대신 사과하고 사무실 앞에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탔더니 가장 뒷자리에 아까 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래프팅은 시작도 안 했는데 젖은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의자에 앉은 양 기분이 찝찝하다.

떼 지어 뒤에 앉은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가장 앞줄에 앉은 내가 옆에 앉은 J의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같은 버스에 탄 이들이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눈치도 못 채는 듯했다. 그들도 비용을 지불했으니 이 여행을 즐길 권리가 있지만, 그들이 버스 안에서 요란하게 '쿵쿵따 게임'을 즐기는 동안 창밖의 풍경을 조용히 감상하고 싶었던 다른 이들의 권리는 침해당한 셈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신경을 긁어대던 진상들의 마지막 한 수는 초콜릿이었다. 래프팅을 시작할 장소에 도착해 제공된 다이빙 슈트로 갈아입고, 구명 조끼와 헬멧을 착용한 후 주의 사항 등을 듣고 있는데, 포장지 밖으로 터진 초콜릿이 녹아서 자갈 위에 범벅이 돼 있는 걸 보았다. 몇 분 전에 '그놈'들이 하나씩 나눠 먹던 그 초콜릿이었다. 래프팅을 하다가 간식으로 먹으려고 챙겨 놓았다가 더운 날씨에 초콜릿이 녹아 버리자 처치하지 못해 그냥 바닥에 버린 모양이었다. 정말 이 정도면 무례하다 못해 무식한 사람들이었다.

"아니, 어떤 양심 없는 놈이 이런 걸 여기다 버려둔 거야? 녹아서 못 먹더라도 자기가 치워야지 이렇게 버리는 무식한 사람들이 아직도 있나? 이거 누가 버렸어? 혹시 본 적 있어?"

들으라고 일부러 크게 한마디 던지자 그 사람들은 바닥에 터져 있는 초콜릿과 나를 슬쩍 번갈아 바라보더니 영어를 못 알아들은 척하는 건지, 아닌 척하는 건지 고개를 휙 돌려버린다. 예의도 없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으며, 자연에 대한 존중도 없는 여행자들이라니.

여행자가 아니어도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상식조차 없는 듯 보였다. 어떠한 배려와 배움의 자세도 없이 오직 자신의 즐거움과 편안함만 좇는 1차원적 쾌락, 그뿐이었다. 저렇게 여행해 놓고도 돌아가서는 히말라야도 갔다고 속 빈 무용담만 늘어놓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곳에 머물며 쓰레기 말고는 아무런 자신의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으면서.

래프팅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지만 분하고 속상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날 저녁, 용해씨네에 들러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무례한 여행자들이 오거든 국적에 상관없이 절대 도움 같은 건 주지도 말라고, 그런 한국인이 많았다면 우리가 대신 너무나 미안하다고. 용해씨가 웃으며 대답했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들도 있는 법이잖아요? 물론 모든 한국인 손님이 좋은 기억만 준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건 다른 외국인도 마찬가지고요. 결국 국적이나 인종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세상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는 거고, 우리가 원하는 사람만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나는 한국 친구들이 참 좋아요. 확실히 정도 많고, 또 좋은 한국 사람들을 더 많이 봤거든요. 지금 내 앞의 소피와 J를 포함해서 말예요."

가능하다면, 그것이 윤리적이고 상식적인 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여행하는 곳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게 옳다고 본다. 그들의 땅을 더럽히지 않으며, 그들을 기꺼이 존중하고, 베풀어 주는 마음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떠나는 사람보다 남은 사람의 마음자리가 더 헛헛한 법인데, 수없이 반복되는 이별의 아쉬움을 알면서도 기꺼이 마음을 열어 새로운 사람을 맞아주는 용해씨 같은 사람들의 마음이 상처입지 않기를 조심스레 바랄 뿐이었다.

래프팅을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멋진 풍경과 짜릿하게 물살을 타는 래프팅이 기대보다 더 즐거웠다 말했다.
 래프팅을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멋진 풍경과 짜릿하게 물살을 타는 래프팅이 기대보다 더 즐거웠다 말했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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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정보
<히말라얀 타메르 Himalayan Tamers>
정 많은 용해씨가 경영하는 여행사. 판공초나 누브라 벨리 등으로 가는 일정에 한국인 동행을 원한다면 주저 말고 이곳으로 가도록 하자. 한국인 동행을 원한다면 한국어로, 다양한 국적의 일행을 구한다면 영어로 써서 사무실 유리에 붙이면 된다. 보호 구역에 들어가는 허가증(퍼밋)을 대신 발행해주고, 그 외 라다크에서 진행되는 각종 행사의 정보도 얻을 수 있다. 트레킹, 래프팅, 지프 사파리, 등반, 허가증 발급, 저렴한 패키지 투어 등을 취급한다.

주소 : Hotel Padmaling Complex, Changspa Road, Leh-Ladakh 194101 J&K
E mail : modernladakhtour@yahoo.com
연락처 : +91 9622274092 (cafe.daum.net/leh-ladakh)

<하얀 히말라야 Hayan Himalaya>
기자는 이 곳에서 래프팅을 이용했다. 한국인이 많이 방문하는 또 다른 여행사인 이 곳 또한 다른 여행사에서 취급하는 여행 상품은 다 가지고 있다. 한국말을 꽤 잘하는 멋쟁이 사장 개초가 친절하게 상담해준다.

주소 : Zangsti Road, Leh-ladakh
연락처 : +91 9906999135 (livinginleh@gmail.com)



태그:#라다크, #레, #판공초, #래프팅,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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