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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의 공존

하루하우스를 나와 다음 목적지인 교토아트센터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약간 이동한 뒤 교토 시내를 걷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교토 시내를 구석구석 볼 수 있었다. 우리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모습의 일본.

교토 시내를 활보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도심에 꽤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서울의 경우는 몇몇 주요한 건물을 빼고는 전쟁과 맹목적인 산업화 때문에 오래된 건물들이 거의 사라진데 반해 교토에는 큰 도로는 물론이요 작은 골목에까지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 저런 전통이 버젓이 살아있다
▲ 교토의 거리 거리 곳곳에 저런 전통이 버젓이 살아있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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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교토를 우리나라의 경주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했는데, 교토는 경주보다 더 근대화되어 있었고, 그럼에도 옛 것들을 그대로 잘 지켜내고 있는 듯 보였다. 기존의 기능은 잃어버린 체 박제화 되어 있는 우리의 건물들과 달리 교토는 아직도 그 옛 것들을 그 지역 주민들의 삶의 일부분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일본적인 걸 보기 위해서는 교토로 가라고 했던가. 교토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왜 그 말이 나오는지 새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역사가 단절되지 않은 채 이어져 온 일본의 저력이겠지.

폐교의 변신

85년 된 건물의 모습
▲ 교토아트센터의 위용 85년 된 건물의 모습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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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를 이용한 것으로 유명한 교토아트센터는 생각 외로 시내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폐교를 이용한 만큼 학교가 있을 만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을 것이라 으레 짐작했었는데, 웬걸 아트센터 주변에는 높은 빌딩이 즐비하기만 했다. 우리로 치면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인해 아이들이 사라진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학교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트센터 건물은 1869년 개교한 메이린(明倫) 소학교를 1931년에 재건축 한 것이었는데, 지어진 지 85년이라는 시간이 믿기지 않을 만큼 멀쩡해 보였다. 다만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만큼 딱딱한 근대양식이었는데, 아트센터 하면 으레 떠오르는 화려한 건물들과 비교하자니 오히려 참신한 느낌이었다.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
▲ 소학교의 흔적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
ⓒ 류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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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공간
▲ 교토아트센터 내부 낯익은 공간
ⓒ 류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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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참신함도 잠시, 아트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좁은 복도와 교실, 그리고 그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학생들이 오르내렸을 계단 등 그것은 대학시절 가끔 들렸던 1920년대 지어진 건물들과 비슷했다. 당시 학교 직원들은 건물이 사적으로 지정되어 에어컨을 다는 것부터 하나하나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며 불만 투성이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오히려 그것을 하나의 자부심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교토아트센터 소개를 담당한 관계자는 199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의 붕괴에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당시 교토는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도심 공동화 현상을 겪어야만 했는데, 그 결과 인구가 급감하게 되었고 이 지역의 5개 학교가 폐교 되었다고 했다. 교토시 전체적으로 30개 학교 중 20개 학교가 폐교되었는데 그 중 1/4이 이 지역에 집중되었으니 당시 지역주민들이 느낀 허탈감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자부심이 묻어나던 소개
▲ 교토아트센터 소개 자부심이 묻어나던 소개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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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된 학교의 운동장
▲ 아이들이 사라진 운동장 폐교된 학교의 운동장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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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의 아이들 웃음소리가 점차 사라지고 어느새 도심의 흉물이 되어버린 학교들. 교토아트센터는 바로 이와 같은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교토시민들 의지의 산물이었다. 학교가 폐교된 1993년부터 아트센터가 들어선 2000년까지 근 7년 동안 시민들과 교토시는 폐교의 활용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을 했는데, 그 결과 지금의 아트센터가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지역주민들은 건축 당시 좀 더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기부까지 했던 이 건물을 유지하고자 했으며, 또한 새로운 방법으로 지역의 활기를 찾고자 했다. 교토는 한때 일본 모직산업의 중심지로서 명성을 얻었었는데, 비록 그때와 같은 번영은 누리지 못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유출되었던 사람들을 끌어 모아 지역의 활기를 되찾고 싶어 했다.

교토아트센터는 바로 이 지역 주민들의 해답이었다. 폐교를 도서관, 노인복지시설, 만화박물관, 시민활동지원센터 등으로 이용하는 타 지역과 달리 이 지역주민들은 폐교를 아트센터로 전환시킴으로써 85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건물을 계속해서 보존하고자 했으며, 예술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새로운 교류의 장을 만들고자 했다.

교토시는 폐교들을 개조하는 대신 폐교가 지역 활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내걸었는데, 이에 맞추어 현재 교토아트센터는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마을문화제나 운동회를 열고 있었다. 소위 대중예술과 고급예술로 나뉘어 칸막이가 존재하는 우리 사회와 달리, 교토아트센터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숨을 쉬며 주민들이 예술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었다. 그 결과 현재 이 지역의 인구는 증가 중이라고 했다.

예술 제작실로 쓰이고 있는 공간
▲ 예전 강당 예술 제작실로 쓰이고 있는 공간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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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교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갔는지 알 수 있던 공간
▲ 다다미방 소학교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갔는지 알 수 있던 공간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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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아트센터의 연혁을 모두 듣고 난 뒤 우리는 관계자를 따라 천천히 건물을 돌아다니며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이 건물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가 공을 쏟았는가 설명을 들어서인지 예술 제작실과 갤러리, 식당 겸 카페, 도서실, 자료실, 회의실 등으로 변한 그 모든 공간 하나하나가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2층의 다다미방이었는데 우선 그 규모와 관리 상태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소학교 때부터 있었던 공간을 지금까지 최고로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정성이 있으니 아직까지도 이 건물이 굳건히 서 있을 수밖에.

폐교에 관한 우리의 정책

아트센터로 훌륭하게 변신한 일본 교토의 폐교를 보고 나니 자연스레 나의 고민은 우리의 현실로 돌아왔다. 과연 우리는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얼핏 생각해봐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일본의 폐교 문제는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장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얼마 있지 않아 한국사회는 인구절벽을 맞이할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같이 연수를 간 구의원은 강동구도 5년이 지나 작년에 입학했던 황금돼지 해의 아이들이 졸업하게 되면 교실이 남게 될 것이라고 아예 구체적인 수치를 댔다. 어쩔 수 없이 학교를 통폐합하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소박하지만 정겨운 풍경
▲ 교토아트센터의 첫인상 소박하지만 정겨운 풍경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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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없어서 학교 교실이 남아돌고, 도심의 학교마저 폐교해야 하는 상황.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폐교는 시골 분교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인 줄 알았는데 이젠 얼마 있지 않아 내 자식들이 겪어야 할 상황이라니 아득해졌다. 하긴. 59명과 한 교실을 쓰고 13개 반까지 우유배달을 했던 내가 35명 정원의 학급이 9개 밖에 남지 않은 현재의 학교를 상상이나 했던가.

답답해졌다.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이런 현실과 상관없이 죽어라 임용고시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재 모습일진대, 과연 누가 나서서 이런 엄혹한 현실을 되새기고 새로운 시대상을 구현하고자 할까?

심지어 일본마저도 10년을 고민해서 겨우 저와 같은 출구를 찾은 것인데, 공동체는 모두 파괴되고 각자도생과 무한 경쟁이 진리가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서 저런 새로운 시도가 가능할까? 과연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적경제와 마을공동체는 저와 같은 해답을 사람들에게 제시할 수 있을까?

불현듯 10년 전 인천문화재단에서 잠깐 일하면서 돌아다녔던 강화도가 떠올랐다. 당시 난 강화도 폐교들 중 예술과 문화 차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곳들을 돌아다니면서 조사하고 있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곳들과 이곳 교토문화센터가 가장 다른 점은 결국 그 지역성에 있었다. 강화도 폐교에 위치한 박물관이나 작업실 등은 대게가 도심에서 내려간 작가들의 공간일 뿐, 지역과 유리되어 있었다. 그러니 그것들을 기점으로 그 지역이 살아나기가 난망할 수밖에.

새삼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와 같은 지역성을 되살리는 일임을 떠올렸다. 결국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가 지향하는 것은 공동체의 복원과 그 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경제인데 이 모든 것은 지역을 기초로 한다. 지역과 괴리되어 있는 공동체는 그 자체가 모순이며, 지역이 뒷받침하지 않는 사회적경제는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교실의 변신은 무죄
▲ 교토아트센터의 예술품 교실의 변신은 무죄
ⓒ 홍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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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아트센터에서 나와 숙소로 향했다. 결코 먼 거리는 아니었으나 내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일본을 보면서 결코 다르지 않을 우리의 미래가 보였기 때문이며, 일본과 비교하여 전혀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아니 문제의 심각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삼성이 소니를 따라 잡았으니 한국과 일본의 국력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고? 일본과 한국의 환율이 비슷하니 이젠 일본이 우습다고?

일본에 온 지 기껏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느끼건대 그 모든 건 착각인 듯 했다. 비록 버블경제 10년이 지난 일본과 아직 버블이 채 꺼지지 않은 우리의 수준이 비슷하여 헷갈릴 수는 있겠지만 분명 일본 사회는 우리보다 10년 이상 앞서 있었다. 그들은 현재 우리가 걷고 있는 궤적의 사회변화를 먼저 겪으면서 더 많은 고민을 했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해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런 일본을 타산지석 삼아 최소한 현재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는 일일 것이다.


태그:#교토아트센터, #일본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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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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