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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국제뉴스를 주로 쓰는 시민기자다. 올해 내가 쓴 기사 가운데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은 불치병을 안고도 존엄사를 선택한 미국의 5살 소녀의 이야기였다(관련기사 : '병원 대신 하늘나라' 5살 딸 결정에 따른 엄마).

소녀의 엄마가 한국계 가족이어서 반향은 더욱 컸다. 포털 사이트 첫 화면에 걸렸고, 다른 언론사들도 비슷한 기사를 내놓았다. 독자들은 소녀와 가족의 사연을 안타까워했고, 존엄사를 두고 논쟁을 벌이며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때까진 아주 좋았다.

희귀 불치병을 앓고 있으나 병원 치료를 거부한 5세 소녀 줄리아나 스노우의 사연을 소개하는 CNN 뉴스 갈무리.
 희귀 불치병을 앓고 있으나 병원 치료를 거부한 5세 소녀 줄리아나 스노우의 사연을 소개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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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편집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전화를 건 편집기자는 'CNN 기사 원문에 소녀 엄마가 한국에 입양됐다는 내용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며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실 그 내용은 원문 기사가 아닌 소녀 엄마의 블로그를 보고 추가한 내용이었다. 알고보니, 의사인 소녀 엄마가 한국계 환자를 치료하며 쓴 일기 내용을 잘못 읽은 것이었다. 소녀 엄마는 입양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게 맞았다.

독자 지적을 받고 편집부에서는 확인 결과 내 기사의 내용이 맞다면 CNN에 정정보도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뉴스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농담이었다지만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기사는 연재소설이 아니기에, 99개의 기사를 잘 쓰고도 1개의 기사가 잘못되면 공든탑이 무너진다.

시민기자로 <오마이뉴스>에 국제 뉴스를 쓴 지 10여 년. 이런 나의 흑역사를 고백하는 건 국제뉴스의 출발은 정확한 번역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잘못되면 기사 전체가 잘못된다.

항상 정확한 번역을 위해 노력하지만, 실수가 나올 때도 있다. 가능한 그러지 않으려고 늘 긴장하고 고민하며 기사를 쓴다. 편집부는 시민기자들이 쓰는 단순 외신 번역 기사는 채택하지 않는다. 이런 기사는 통신사 속보에서도 밀린다. 시민기자들이 굳이 쓸 필요가 없다.
이런 이유로 나는 국제뉴스를 쓸 때 사건의 배경과 분석 그리고 이야기가 담긴 기사를 쓰려고 노력한다(편집부에서도 그런 기사를 더 환영한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뉴스를 다루는 과정과 약간의 팁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공부하듯 쓰는 국제 뉴스

나는 원래부터 나라 밖 소식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다닐 때 정치외교학이나 언론학을 전공하는 것도 아니면서 매일 외신 기사를 꾸준히 탐독했다. 어릴 때 해외여행을 자주 다닌 영향이 컸지만 다른 나라 사회와 사람들의 문화·사고방식·역사·정치 등을 배우고, 우리나라의 장·단점과 비교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국제뉴스를 읽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쓰기까지 하면 개인적으로 엄청난 공부가 될 수 있다. 가령, 아르헨티나 대선에 관한 기사를 쓴다고 하자. 단지 외신에서 보도한 어떤 후보가 나와 얼마큼 득표를 해서 당선됐다는 것을 넘어, 그 나라의 개황을 조사하면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

또 한 가지. 국제뉴스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나라 밖 정치·사회·경제·스포츠·문화 등 모든 것이 기사가 된다. 그때문에 국제뉴스를 쓰기 위해서는 기사 작성보다 더 많은 시간의 조사가 필요하다.

종종 시민기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국제뉴스를 잘 쓸 수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물론 기본적인 외국어 실력은 기본이다. 외신 기사나 인터뷰어가 말하고 있는 맥락이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사실 관계가 틀리거나 왜곡되지 않은 기사를 쓸 수 있다.

외국이 실력만큼 중요한 것이 우리말 실력이다. 독자들이 보는 국제뉴스도 결국 한글로 쓴다. 모든 독자의 외국어 실력이 출중하다면 국제뉴스를 쓸 필요가 없다. 외신을 직접 보면 되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우리말 어휘력이 풍부하고 문장력이 뛰어날수록 외국어를 번역하기도 편하고 매끄러운 기사가 된다. 외화 번역가의 중요한 덕목이 뛰어난 우리말 실력이라고 하지 않은가.

끝으로 의역의 문제. 개인적으로 번역할 때 약간의 의역은 필요하다고 본다. 내가 직접 외신을 읽고 끝내는 것이라면 직역해도 되지만, 이를 번역해 독자에게 전달해야 할 경우엔 의역이 더 효과적이다.

특히 영어는 우리말과 문장의 구조가 달라 의역을 해야 더 매끄러운 문장이 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일본어의 경우 한자어를 쓰기 때문에 의역의 여지가 없을 때가 더 많다. 서로 다른 사람이 번역해도 마치 베낀 것처럼 똑같은 문장이 나오는 이유다.

정보가 아닌 이미지와 스토리를 보여준다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기사를 쓰기 전 문단 구상한 노트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기사를 쓰기 전 문단 구상한 노트
ⓒ 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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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어떤 기사를 쓸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국제뉴스는 세상의 크기만큼이나 다양하다. 범위가 넓고, 사건도 많아서 꽤 긴 고민과 시간이 필요하다. 기사의 중요성, 시의성, 우리나라와의 관계, 흥미 등을 골고루 고민한다.

국제뉴스는 사실 전달이 아니라 하나의 스토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독자에게 사건의 배경, 원인, 결과, 전망 등을 모두 전달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정보 제공을 넘어 나라 밖 세상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해주기 때문에 이런 구성은 더욱 중요하다.

이럴 때는 노트에 미리 기사 전개 과정을 구상한다. 왜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됐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그리고 왜 중요한지, 더 나아가 앞으로의 전망 등을 문단으로 나누어 미리 내용을 결정한다.

각 문단의 내용이 정해졌다면 이제 기사를 쓴다. 문장은 최대한 짧게 끊어 쓰는 것이 좋다. 그러면 나중에 빠뜨린 내용을 보태기도 좋고, 읽은 사람의 호흡도 가볍다. 하지만 모든 기사를 다 이렇게 쓰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매끄러운 문장을 써야 하고, 특히 조사(助詞)를 선택할 때 많은 고민을 한다.

그리고 기사를 너무 길게 쓰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나 강의도 길어지면 지루하고, 내용을 기억하기 어렵다. 나 역시 다른 기사를 볼 때 너무 길면 읽기 전부터 부담스럽다.

국제뉴스에서 더 빛나는 '사진'

기사를 짧게 쓰면서 주제를 최대한 강렬하게 전달하는 도구는 뭘까. 그렇다. 바로 사진이다. 나는 잘 쓴 긴 글보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이 훨씬 더 좋은 기사라고 생각한다. 국제뉴스를 쓸 때 사진을 꼭 곁들이려는 이유다. 어떤 사진을 넣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기사를 작성할 때 드는 시간보다 더 길 때도 있다.

특히 국제뉴스는 나라 밖 소식을 전하기 때문에 더욱 생생한 내용 전달을 위해 사진의 역할이 크다. 베트남전에서 네이팜탄 폭격으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울부짖는 소녀 킴 푹, 터키 해변가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시리아 난민 소년 쿠르디 등 세상을 움직인 것은 문장이 아니라 사진이다.

꼭 보여주고 싶은 사진이 있어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다. 주제가 뚜렷한 좋은 사진이 있고, 3~4문단으로 간단한 설명만 곁들여도 그 자체로 훌륭한 국제뉴스가 될 수 있다. 오히려 불필요한 글이 사진을 망칠 수도 있다.

사진을 곁들일 때는 사진 자체만 올리는 것보다 외신 홈페이지를 그대로 갈무리하는 경우가 더 효과적일 때도 많다. 외신의 머리기사를 장식한 사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만으로 이 사건의 중요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뉴스를 쓸 때면 외국인, 제3자의 눈으로 그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나, 혹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관점을 덧씌우지 않으려고 한다. 앞서 말했듯 국제뉴스는 정보를 넘어 이미지를 전달한다. 기사 하나로 한 국가에 대한 호감 또는 편견을 갖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 일본 혹은 이라크 등의 이미지는 국제뉴스를 통해 얻어진 것 많다.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국제뉴스가 중요한 이유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국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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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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