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극장이 생기니까 지역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아요."

사창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아주머님은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내게 감사하지 마시고 군수에게 하세요"라고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사창리에 영화 개봉관을 만든 이유

산골 마을에 영화관이 생겼다.
 산골 마을에 영화관이 생겼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 내 고향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마을 주소를 말하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사내면 사창리 의미. 사내와 사창가? 그런 생각 때문일까, 다시 한 번 묻곤 야릇한 웃음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의미는 전혀 다르다.

사내면 사창리는 한자로 표기하면 史內面 史倉里다. 조선시대 군량미 비축을 위한 주요 창고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역사적으로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뜻한다.

그래서인지 지금 사내면 지역엔 2개 사단이 주둔해 있다. 전국적으로 2만여 명의 병력이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1970년대 중반까지 술집들이 많았다. 주요 고객은 군인이었다. 몇 푼 안 되는 봉급을 담보로 술집을 드나드는 것을 낙으로 여기는 군인들도 많았다. 막걸릿집, 맥줏집, 양줏집. 계급에 따라 드나드는 레벨도 달랐다. 업주들은 경쟁적으로 예쁜 종업원 모시기에 열을 올렸다.

"연화관을 만들면 어떨까?"

지난해, 최문순 화천군수는 느닷없이 영화관 이야기를 꺼냈다. 외출외박을 나온 군인을 비롯해 면회를 온 군 가족들을 지역에 머물게 하자는 의도다.

과거 위수 지역이란 게 있었다. 사창리에서 춘천이나 서울로 향하는 버스가 검문소 앞에서 멈추면 멋지게 옷을 차려입은 헌병이 올라탔다. 타깃은 군인들이었다. 복장이 불량한지, 허가된 외출인지 증명서를 확인했다. 그게 귀찮아 이곳에 사는 민간인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지 않았다.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위수 지역 개념이 지역적 범위에서 즉각 응소가능시간제로 바뀌었다. 외출외박을 나온 군인들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비상시 즉각 귀대가 가능한 지역으로 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외출·외박을 나온 군인들이 마을에 머물 이유가 없어졌다. 인근 춘천시로 물밀 듯 빠져 나갔다. 강제로 막을 수도 없는 일, 지역 경제는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들이 도심지로 나가는 이유가 뭘까, 설문조사를 했다.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지역에 즐길만한 문화가 없다'였다. 도시로 나간 장병들이 주로 뭘 하는지 분석했다. '커피 마시고, 영화 보고, 음식점에 들렀다가 귀대'. 사창리 마을은 군사 지역이란 특수성 때문인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매점들이 많다. 도시에서 유행하는 커피점도 수두룩하다. 서둘러 영화 개봉관을 만든 이유다.

극장에 담긴 슬픈 이야기

산골마을 극장, 연일 매진을 이룬다.
 산골마을 극장, 연일 매진을 이룬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과거 극장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70년대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이 하나 있었다. 군 부대에서 운영한다고 '군인극장'이라 불렸다. 영화는 개봉한지 몇 년 지난 것들이었다. 재개봉을 거쳐 동시상영 영화관을 돌다 폐기처분 될 즈음 들어오는 작품이 다수였다. 화면은 비가 내리는 것처럼 세로로 줄무늬가 출렁거렸고 영화 한편을 보면 2~3회는 필름이 끊어지는 일이 잦았다.

TV가 없던 시절, 영화 내용은 중요치 않았다. 사람들의 움직임을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50원 줄 테니 영화보고 짜장면 사 먹고 와"

내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어머님은 우리 삼형제에게 꼬깃한 5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쥐어주셨다. 신이 난 우리는 20여 리 산길을 달려 극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영화 관람료가 1인 기준 20원인 것이다. 짜장면은 고사하고 한 명은 영화를 볼 수 없는 상황. 어머님은 극장이 있다는 것만 아셨지 관람료를 모르셨다.

"이 영화 재미없대. 니들만 봐라"

나보다 두 살 위인 형은 동생들에게 양보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자 극장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형이 보였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영화 내용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영화를 못 본 형님에 대한 예의라 여겼다. 아무말 없이 터벅터벅 걷기만 했다.

단돈 오천 원으로 개봉영화를 본다

터미널과 면사무소 앞에 상영작 안내 게시판을 붙였다.
 터미널과 면사무소 앞에 상영작 안내 게시판을 붙였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안내판을 만들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에 걸어두면 좋을 것 같은데..."

최문순 화천군수는 시외버스 터미널을 말했다. 영화관 존재를 몰라 춘천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붙잡자는 의도다. 시골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면사무소다. 현관 앞에도 멋들어지게 붙였다.

"이런 시골에 개봉관이 생기다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극장을 들어선 시골 어르신들은 꼭 한마디씩 하신다. 옛날엔 개봉관은 정해져 있었다. 대한, 명보, 스카라, 단성사, 피카디리, 국도, 허리우드. 서울에 개봉관으로 유명했던 영화관들이다. 서민들이 개봉영화를 본다는 건 부담이 컸다. 언제 동시상영관으로 내려오나 기다렸다가 영화를 관람하곤 했다.

지금은 어떤가. 단돈 5000원으로 산골에서 개봉작 영화를 감상할 수 있으니 격세지감이란 표현이 맞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시민기자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장입니다.



태그:#사창리, #사내면, #토마토 시네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밝고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마이뉴스...10만인 클럽으로 오십시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