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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조심스럽습니다."

지난 23일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의 동생들 10여 명이 재학 중인 경기도 안산시 원일중학교에서 신대광 수석교사를 만났다. 416기억저장소 운영위원이기도 한 그는 희생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기록 중인 작가단의 요청으로 동생들 이야기를 처음 했던 지난 여름, "이 이야기를 많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하지만 신대광 교사는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인터뷰가 이미 많은 상처를 받았을 동생들에게 또 다른 아픔이 될까 한참을 주저했다.

"올해 2학기가 시작되면서 참사 이후 희생 학생들의 동생들이 따로 머물던 학교 내 공간을 닫았습니다. 그 뒤로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밥을 안 먹고 돌아다니는 걸 여러 번 보게 됐어요. 안 되겠다 싶어 왜 그러냐고 했더니 갈 데가 없다더라고요.

제 방(수석교사실)으로 오라고 했는데 와서도 그냥 있는 거예요. 밥을 타다가 줬더니 그제 서야 먹더군요. 담임교사와 학년 부장에게 이 아이들이 점심시간에는 제 방에 와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때부터 3학년 아이들 7, 8명이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신대광 안산 원일중 교사
 신대광 안산 원일중 교사
ⓒ 강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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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3층에 위치한 수석교사실 한쪽에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양치 컵, 칫솔, 치약이 한데 담겨있는 바구니가 눈에 띄었다.

참사 이후 경기도교육청은 희생 학생들의 동생들을 위해 원일중을 포함한 단원고 인근 3개 학교에 사회복지사를 상주 시켰다. 하지만 올해 1학기까지였다. 학교에서는 이들이 아이들 졸업 때까지 체계적으로 돌봐주기를 바랐지만 비정규직이었던 사회복지사의 무기계약 전환 불가 등의 이유로 사회복지사들은 2학기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를 방문하고 있다.

"사건 직후 부모님들은 팽목항으로 내려가시고 물에서 올라온 아이들 장례를 치른 뒤에도 국회, 광화문, 청운동으로 가셨잖아요. 애들 입장에서는 언니 오빠를 잃은 것도 가슴 아픈데 부모님도 집에 안 계시니 어려움이 컸을 겁니다. 한꺼번에 7, 8명의 형제자매를 잃은 학급도 있었어요. 그 슬픔의 공기란……"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희생된 형과 같은 이름을 가진 학급 친구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못 견디겠다던 동생은 결국 반을 교체했다. 

신대광 교사 방 앞에 아이들이 붙여놓은 출입금지 표시
 신대광 교사 방 앞에 아이들이 붙여놓은 출입금지 표시
ⓒ 강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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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의 상황은 모두 다릅니다. 수업을 듣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 노랑과 검정이 대비된 색 배열만 보면 울컥 하는 아이, 분향소와 장례식장의 경험 때문인지 향 냄새에 예민한 아이, 배나 바다 이야기가 나오면 참지 못하는 아이,…… 교직원 회의를 하며 특별히 강조하고 공유했던 내용은 죽음, 바다, 배에 대해 말할 때 조심하자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수업 중 저도 모르게 이 단어들을 언급하며 움찔할 때도 있습니다."

따르던 형을 보내고 방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잡고 잘 지내는 듯 보이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참사 이후 부쩍 말이 줄고 책상에 엎드리거나 멍하게 앉은 채로 하루를 보내는 아이도 생겼다.

"참사 이후 수학여행 등 각종 체험활동이 취소되면서 '너희들 때문에 수학여행 못 가게 됐다'는 말을 들었나 봐요. 몇몇 아이들은 밥을 먹으면서 혹여 사람들이 '형누나, 언니오빠가 죽었는데 밥이 들어가느냐'고 생각할까봐 걱정하고,…… 심리적으로 어려운 것처럼 보여요.

결국 소풍이니 체육대회 등 행사에는 가고 싶어 하지 않고,… 그 시간 내내 여기에만 와있던 아이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이 방에 오면 불을 꺼요. 왜 어둡게 있느냐고 물으면 그게 편하대요. 아이들이 자꾸만 숨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들을 보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교사들 역시 버거운 현실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 대부분은 단원고 인근 고잔동, 와동, 선부동 일대에 살았다. 골목 구석구석, 아파트 같은  동, 아이들의 흔적이 머물지 않은 곳이 없다.

그의 방에는 희생학생 동생들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용하는 칫솔과 치약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있다
 그의 방에는 희생학생 동생들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용하는 칫솔과 치약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있다
ⓒ 강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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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희생 학생들 담임을 하거나 가르쳤던 선생님 몇몇이 사석에서 아이들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조차도 최근의 일입니다. 희생된 아이의 학급에 동생이 앉아 수업을 듣고 있으니 희생된 아이가 자꾸만 생각나지요. 갑자기 감정이 몰려올 때면 잠시 심호흡을 하고 창밖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아이들은 모르겠지만요."

동생들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그는 자신의 이야기도 털어놓기 시작했다. 장애가 있었던 터라 오빠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참사 이후에도 깔깔대며 장난치던 동생을 보며 가슴 치던 이야기, 교실에서 동생을 볼 때마다 일을 나간 엄마아빠를 대신해 두 동생을 잘 챙겼던 희생 학생 생각에 울컥했던 시간, 동생들의 얼굴에 겹쳐 보이는 하늘로 간 제자들…….

그는 교육당국이 모든 일을 세월호 유가족 입장에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학교는 학교의 상황이 있기 때문에 유가족이 바라는 내용을 모두 수용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소통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이면 모르겠지만 안산이잖아요. 사건 이후 사람들의 상처를 모두 다 지켜본 이곳에서는 최소한 그랬으면 좋겠어요. 안산에서부터 세월호를 말하고 아이들의 아픔을 바라보고 온전히 그들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학교에서 단원고 교실존치 서명을 받던 동생들과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낸 친구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 아이들이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딱 한 번 아이들이 이곳에서 연예인 이야기를 하며 웃는 걸 봤어요. 그래 너희도 매일 연예인 이야기를 하며 웃을 나이인데 잊고 있었구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인터뷰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이야기를 마친 뒤 '아이들 이야기를 울지 않고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이야기를 마친 뒤 '아이들 이야기를 울지 않고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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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광 교사는 힘들 때면 생존 학생과 희생 학생 친구에게 만나자는 전화를 건다. 치유 공간 '이웃'에서 열리는 희생 학생 생일 모임에 가서 실컷 울기도 했다.

"희생 학생 친구들은 휴대폰에 친구들 사진과 동영상을 아직도 가지고 다녀요. 노래방에 가면 '얘는 분명히 이 노래를 불렀겠지' 생각하고, 어떤 순간에는 '니가 있었으면 이렇게 말했겠지' 상상하지요. 꿈속에 친구가 많이 온다는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합니다.

장례식장에 가서 이 방 친구에게 들렀다가 문 열고 나와 옆방 친구에게 가던 아이들의 아픔을 어떻게 잊을 수 있나요. 희생 학생, 유가족뿐만 아니라 형제자매, 친구, 이웃의 아픔을 더 많이 이야기 하면서 우리 사회가 이들을 포용해야 합니다. 아직 말도 못 꺼냈는데 이 사회가 세월호를 외면하고 덮으려 하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이들의 치유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희망>에도 보냅니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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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교육희망>의 강성란 기자입니다.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교육 소식을 기사화 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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