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 ⓒ tvn


결국 '남편 찾기'로 다시 한 번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한 tvN <응답하라1998>(이하 <응팔>)이 18.8%(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마무리 되었다. 공중파 드라마가 10%만 넘어도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 평가받는 요즘을 기억하면 놀라운 성과다.

그 보다 놀라운 것은 확연히 세대별 시청 프로그램이 갈리는 TV콘텐츠에서, 10대에서 50대까지 거의 전 세대를 아우르며 '인기'를 구가했다는 점이다. 이런 성과를 거둔 가장 큰 요인은 50대의 세대의 '추억'과, 시대적 특수성에도 변치않는 '사랑'이라는 두 화두를 적절하게 버무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엄마와 딸이 휴지로 흐르는 눈물을 닦고, 덕선(혜리 분)의 남편감을 두고 격의 없는 설전을 벌이는 세대 간 화해를 이루는 성취를 보였다. 극이 중반에 들어서며 드러난 서사의 빈 공간을 가족 에피소드와 남편 찾기의 떡밥으로 채워가서인데 이것은 <응답하라 1994>와 <응답하라 1997>에서도 적용된 일종의 강력한 클리셰다.

그래서였을까. 제작진은 극 초반, 전작을 독파한 시청자들이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라고 지레 결론 내리는 불상사에 대처하고자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상이한 결론을 맺었다. 그런데 이런 선택은 어남류임을 믿었던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했고, 심지어 <응답하라>시리즈가 가진 고유성마저 흔들어 버리고 말았다.

택이 택한 제작진, 새로운 전략?

2012년 개봉한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라는 작품이 있다. <응팔>처럼 고등학교 시절 풋풋한 소년소녀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인 커징텅(가진동 분)을 비롯한 같은 반 남학생들은, 쌍문동 골목길의 소년들처럼 같은 반의 여학생 션자이(진연희 분)를 좋아한다. 그리고 서로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경쟁한다.

남자 주인공 커징텅은 <응팔>의 정환(류준열 분)처럼 자꾸 그녀와 어긋나기만 한다. 두 사람은 잠시 사귀기도 하지만 결국 헤어진다. <응팔>처럼은 아니다. 영화는 말 그대로 십대 시절의 풋풋함을 사랑으로 표현한다. <응팔>의 정환은 가징텅처럼 그 시절의 대표적인 남학생인 듯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심지어 20회에 들어서는 존재감조차 미미해지고 말았다. 사랑의 타이밍을 놓친 죄일까. 자신을 찾아온 택(박보검 분)에게 "덕선을 사귀라"는 잔인한 덕담이나 하는 존재로 소모됐다.

물론 덕선의 남편이 택이로 정해진 후 드라마는 노골적으로 두 사람 관계에 집중한다. 눈 밝은 시청자들은 덕선과 택이의 사랑이 어느 날 갑자기 결정된 제작진의 결정이 아니라, 처음부터 차곡차곡 쌓아진 세월이라고 유추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간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덕선의 관점에 대한 해석이 덧대어지며 택이만이 덕선을 사랑할 자격이 있다고 확인사살하기까지 한다. 처음부터 '어남류'라 믿었던 시청자들은 그저 정환을 연기하는 류준열의 연기와 매력에 빠져 착각한 것일까.

그건 아니다. 극 초반부터 등장했던 '어남류'라는 말은 그저 '남편 찾기'에 대한 바람이 아니었다. 그간 <응답하라> 시리즈가 담아온 정서와 주제를 파악해 왔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당대성의 표상이었던 정환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 ⓒ tvn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자 주인공들은 그 시대에 살았을 평범한 녀석들이다. 비록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정우 분)나, <응답하라 1997>의 윤제(서인국 분)가 대한민국 상위 계층에 해당하는 의사가 되었다지만 말 그대로 싸가지 없거나 때론 쓰레기 같았을 인물들이다.

그에 비해 그들의 연적이었던 <응사>의 칠봉이(유연석 분)나 윤태웅(송종호 분)은 당대의 영웅이었다. <응답하라 1988>의 최택처럼 말이다. 이들은 한껏 여주인공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다가 어느 순간 드라마에서 사라지곤 했다. 상대가 아무리 잔인한 이별을 고해도 그들에게는 당대의 영웅으로 거듭날 그들만의 서사가 남아있으니까 말이다. 그들에게 몰입했던 시청자들은 그래서 위로받을 수 있었다. 평범한 이들은 사랑으로 가정을 꾸리고, 잠시 그녀를 사랑했던 영웅은 그들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런데 <응팔>은 전작부터 내려온 그 흐름과 인물들의 당대성을 파괴했다. 가장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최택이라는 당대의 영웅 같은, 심지어 잘 생기기까지 한 인물에 의해 깨진 것이다. 동시에 보통 소년이었던 정환은 공중으로 뜨게 만들었다. 1988년 청춘의 당대성이 소실되어 버린 것이다.

여주인공인 덕선이가 사랑을 찾았으니까 된 거 아니냐고? 안타깝게도 제작진의 속임수였는지 모르지만 드라마는 16부에 이르기까지 정환의 사랑 이야기에 치중했다. 카메라는 대부분 정환을 향해 있었고, 택이와 덕선의 이야기는 외곽의 일화처럼 다루어 졌다. 그러니 시청자들 역시 제작진이 짜놓은 프레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시청자들은 정환의 순애보 전사를 덕선보다도 잘 안다. 거기다 정환은 가족애의 현현이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무뚝뚝하지만 라미란 여사네 아들로서 속 깊은 모습을 보였다. 어디 가족뿐인가. 선우(고경표 분)를 괴롭히는 친구들을 혼내주는 의리파기도 했다. 이전의 작품들은 공동체를 위해 종종 자신마저 희생하는 남자 주인공에게 그 보상으로 사랑을 선사했는데, 이번엔 고백 타이밍조차 맞추지 못해 거짓말 하게 만드는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심지어 정환 만큼 평범했던 동룡(이동휘 분)마저 실종됐다. 어떤 시리즈보다 가장 혈육 같았던 친구들이 덕선과 택이의 사랑 메신저로만 소비된 셈이다.

충성스런 시청자들 입장에선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다. <응답하라1988>의 변경된 전략을 받아든 시청자들은 이것 또한 남편 찾기의 재미로 해석할지, 아니면 덕선에 대한 택의 순애보로 받아들일지, 그도 아니면 궤도 이탈해 버린 실패작으로 볼 지 스스로 해석하게 될 운명에 놓였다.


응답하라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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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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