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재즈를 자유의 음악이라고 한다. 하지만 연주자 손바닥에 새겨진 굳은살 없이는 청자가 느끼는 자유로운 느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화성악에 대한 정확한 이해, 다른 협주자들과의 호흡, 음악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있기에 전체적인 안정도 속에서도 재즈다운 자유로움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만큼 재즈는 노력과 시간이 협업해 만들어진 음악 장르다. 지난해 개봉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위플래쉬>의 모습이 광기만이 아닌 이유가 그것이다. 100여 년 전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된 재즈 음악은 자유로움만큼 깊이가 베어진 음악이다.

미국에서 시작한 재즈 음악은 100여 년의 미국 역사와 함께한다.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된 재즈 음악은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시카고 재즈로 이어졌다. 시카고 재즈는 다시 한 번 경제 대공항과 함께 대규모 스윙재즈로 재탄생되었고. 스윙재즈의 상업성에 반발하며 비밥이라는 세부 장르로, 비밥은 다시 콜드 재즈, 프리 재즈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재즈 음악의 본토인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재즈는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 재즈의 역사 한가운데는 영원한 디바 박성연이 있다.

재즈 보컬 박성연씨가 재즈를 처음 접하게 된 곳은 주한미군 군부대였다. 미 군대 오디션에서 시작된 그녀의 재즈 사랑은 1978년 결국 1세대 재즈인들의 아지트인 재즈바 야누스를 만들게까지 이른다. 그녀는 스스로가 재즈와 결혼했다 말하며 지금까지도 결혼하지 않고 살아온 진짜 음악인이다. 본토와 다르게 한국에서는 그닥 인기 많은 장르가 아니기에 그녀가 만든 재즈바는 항상 경영난에 시달렸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많은 음악인의 재즈의 산 역사인 야누스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녀는 최근까지도 재즈의 바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며 음악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이감이 서려 있다. 화려한 기교는 없지만, 그녀의 음색에는 재즈 특유의 그루브와 슬픔이 베어있다. 흑인의 노동요에서 시작된 재즈 음악의 탄생처럼 그녀의 소리에는 아픔이 느껴진다. 그것이 한국에서 재즈인으로 살아온 그녀의 인생이기도 하다. 찰나의 짧은 한 곡이지만 마치 그녀의 음악 인생을 담은 듯한 음악들이 펼쳐진다. 그뿐만 아니다. 그녀의 목소리를 만난 피아노, 드럼, 베이스 소리는 자유로운 듯 연주되면서 완벽한 하모니를 자아낸다. 최근 유행하는 힙합이나 일렉트로닉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음악의 결이다. 오랫동안 있었던 음악의 즐거움이 다시 꺠어나 귀를 통해 흘러온다. 진정한 카타르시스이다.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음원 사이트에서도 역시 그녀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Antonio's song', 'Stardust', 'Danny Boy', 'What A Difference A Day Made' 등이 있지만, '물안개'라는 곡이 눈에 띈다. 피아노 선율과 함께 시작되는 이 재즈곡은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진행된다. 심지어 라이브 버전도 있으니 잠시나마 집에서도 재즈 바 분위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라지는 그 모습에 괴로웠던 나의 마음 편함 없는 나의 노래, 그칠 줄을 모르네." - '물안개' 중에서

건강상의 문제로 더는 음악을 하지 않는 그녀. 박성연씨는 2010년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박성연 "나는 음악에 인생을 걸지 않았다. 음악이 나한테 인생을 주었고, 나를 살게 만들어줬다. 그러니까 고맙다. 가끔 나보고 무대에서 죽으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한테는 그게 덕담이다." - 장일호, <시사IN>, "'재즈의 대모'에게 영화와 음악을 묻다"(2010년 12월 29일, 제171호) 중에서

최근 챗 베이커, 마일스 데이비스와 같은 재즈인들의 삶이 영화화되어 관객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 언젠간 그녀의 인생을 조명할 기회 또한 기대해 본다.

박성연 재즈 야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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