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상' 이병헌, 명품의 짙은 향기 25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7회 청룡영화상 레드카펫에서 영화 <내부자들>의 배우 이병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청룡영화상' 이병헌, 명품의 짙은 향기 25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7회 청룡영화상 레드카펫에서 영화 <내부자들>의 배우 이병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내부자들>이란 영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그리고 영화를 촬영하면서 너무 재미있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영화니까 너무 과장된 게 아닌가, 너무 어떤 현상들과 사회를 극단적으로, 극적으로 몰고 가려고 애쓰지 않았나 싶어서 약간 과장된 영화가 아닐까란 생각을 하면서 촬영을 했어요.

결과적으로 보면 지금은 현실이 <내부자들>을 이긴 것 같은 상황이란 생각이 들어요. (박수가 나오자 멋쩍게 웃으며) 소신 발언 이런 건 아니고요. TV를 보면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아주 절망적인 마음으로 촛불을 든 걸 봤는데요. 저는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언젠가는 저 촛불이 희망의 촛불이 될 것이란 믿음을 가졌습니다."

제37회 청룡영화상의 주인공은 (그의 과거 광고 속 유행어를 빌리면) 단언컨대, 이병헌이었다. 25일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37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내부자들>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병헌은 소신 발언은 아니라고 했지만, 광장의 촛불을 거론함으로써 이날만큼은 명실공히 트로피와 명예, 소신을 다 가져간 배우로 등극했다.

데뷔 25년만의 청룡상 수상 이병헌, 소신까지 다 가져간 배우

'청룡영화상' 이병헌, 명품의 짙은 향기 25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7회 청룡영화상 레드카펫에서 영화 <내부자들>의 배우 이병헌이 입장하고 있다.

▲ '청룡영화상' 이병헌, 명품의 짙은 향기 25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7회 청룡영화상 레드카펫에서 영화 <내부자들>의 배우 이병헌이 입장하고 있다. ⓒ 이정민


25년 만에 청룡영화상 첫 수상이기도 했다. 수상도 수상이지만, 요즘 이병헌처럼 '열일'하는 배우가 또 없다. 할리우드와 충무로를 오가며 다채로운 작품에 출연 중이다. 수상작 <내부자들>이 올 1월까지 상영한 것을 포함, 올해만 미국영화 <미스컨덕트>와 <매그니피센트7>이 국내 개봉했고, 김지운 감독의 <밀정>에도 깜짝 출연했다.

차기작도 줄줄이 확정 지었다. 오는 12월 개봉을 앞둔 <마스터>는 <내부자들>의 조의석 감독이 연출을 맡고 강동원, 김우빈, 엄지원 등이 함께 출연한 올겨울 흥행 기대작이다. 이미 촬영을 끝낸 <싱글라이더>는 내년 상반기 개봉을 준비 중이다. 공효진, 안소희와 함께 연기했다.

<수상한 그녀> 황동혁 감독이 연출하는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사극 <남한산성>에서는 주인공 최명길 역을 맡았다.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등이 출연하는 호화캐스팅으로 지난 21일 크랭크인했다.

그야말로, 쉼 없이, 소처럼 일하는 중이다. 실로 다양한 장르에, 다채로운 캐릭터에 도전하고 있다. 작년 개인적인 스캔들로 인해 주연작인 <협녀>의 개봉 시기가 늦춰졌던 걸 떠올리면, 드라마틱한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송강호와 이병헌이 동반 출연했던 영화 <밀정>의 한 장면.

송강호와 이병헌이 동반 출연했던 영화 <밀정>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리고, 사실 올 한해 이병헌이 관객들에게 각인된 것은 <밀정>의 의열단장 정채산 역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카메오 급의 분량이었지만, 이병헌은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에게 '밀정', 그러니까 독립군으로서 동기를 유발하는 시퀀스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물론, 역시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호흡을 맞췄던 송강호와의 앙상블이 있었기에 더욱 빛을 발했던 장면이기도 했다. 그리고, 시상 소감으로 이병헌이 소신을 드러냈다면, 작품 선택만으로 그 소신을 증명하고 있는 배우가 있다. 이병헌 못지않은 '열일' 배우이기도 하다. 짐작했겠지만, 어제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이병헌에게 아쉽게 남우주연상을 양보(?)한 송강호가 그 주인공이다.

송강호가 초대하는 '80년 오월' 광주이야기 <택시운전사>

 송강호, 유해진 주연의 영화 <택시운전사> 티저 포스터. 1980년 5월 광주를 다뤘다.

송강호, 유해진 주연의 영화 <택시운전사> 티저 포스터. 1980년 5월 광주를 다뤘다. ⓒ (주)쇼박스


"1980년, 서울의 택시운전사가 취재에 나선 독일 기자를 우연히 태워 광주로 가게 된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

내년 상반기 개봉을 예고한 송강호의 차기작 <택시운전사>의 한 줄 요약이다. <의형제> <고지전>의 장훈 감독과 6년 만에 다시 작업한 <택시운전사>는 광주민주화항쟁이 한창이던 1980년 5월 광주의 한복판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우연히 광주를 취재하게 된 독일 기자와 그의 취재를 도와 택시를 운전하게 되면서 80년 '광주의 실상'을 국민에게 알리는데 동참한 택시기사의 실화를 다뤘다.

이와 관련, 광주시와 5·18 기념재단은 지난 5월 '푸른 눈의 목격자'로 유명한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의 추모식을 열기도 했다. 전 세계에 광주의 참상을 가장 먼저 알린 힌츠페터 전 기자는 5·18 당시 독일 제1공영방송 ARD-NDR의 일본 특파원으로 재직하며 광주를 취재했다. 지난 1월 25일 투병 끝에 79세의 나이로 사망한 힌츠페터는 "죽으면 광주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유족 측은 그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추모비를 세우고 고인을 엄수했다.

데뷔작 <의형제>에서 남파 간첩과 전 국정원 직원의 '브라더후드'를 통해 남북문제를 다뤘고, <고지전>에서는 본격적으로 한국전쟁의 실상을 그렸던 장훈 감독. 지난여름, 시나리오를 통해 먼저 접해 본 <택시운전사>는 송강호의 연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품일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 이후 책임감을 강조하는 '배우'이자 '인간' 송강호 

 지난 25일 열린 제37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 송강호.

지난 25일 열린 제37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 송강호. ⓒ SBS


송강호가 맡은 무지렁이 서울 택시기사 만섭은 우연 끝에 광주로 내려가, 당시 한국사회의 모순과 정권의 폭압을 목격하며 변해가는 역할이다. 이 과정을 그릴 송강호의 드라마틱한 연기도 기대되지만, 만섭의 캐릭터에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독일인과의 갈등 속에 벌어지는 웃음과 감동 또한 담겨 있다. 그런 면에서, 계급이나 출신 성분은 물론 다르지만, 영화 <변호인>에서 드라마틱하게 성장하던 변호사 송우석의 면모가 언뜻 엿보이기도 한다.

한편, 이 <변호인>야말로 현재 송강호의 변곡점을 상징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최근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다시금 기사화가 됐던 송강호지만, 세월호 참사 서명운동에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여한 것을 제외하고 송강호는 여타 정치적 활동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영화들은 사뭇 다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부림사건'과 엮어 완성한 <변호인> 이후 '현대사'에 있어 '친일파'의 의미를 묻는 <밀정>에 출연했고, 차기작으로는 5.18 광주를 소재로 한 작품을 선택했다. 사극인 <사도>를 제외하고, 그야말로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인물과 사건을 건드리는 작품들에 연이어 출연한 셈이다.

예정된 이후 차기작도 만만치 않다.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의 차기작인 <마약왕>은 1970년대 부산 일대를 주름잡았던 '마약왕'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라 알려졌다. 황정민·류승범 주연의 <사생결단> 못지않은 사회비판 시대극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제작 연기를 알린 원신연 감독의 <제5열> 역시 사회파 드라마다. 송강호는 군 비리와 관련된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국방부 조사관 역을 맡았다.

영화계 선배로서 '책임감'을 강조하는 송강호. 영화계 관계자들은 종종 그가 <변호인> 이후 영화인으로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그가 선택하는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대목이다.

한국을 너머 세계로 보폭을 넓힌 이병헌, 그리고 작품 선택만으로 사회적 책임감을 다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송강호. 최근 '블랙리스트'다, '최순실 게이트'다 어수선한 영화계. 이번 청룡영화상의 수확이라고 한다면, 이 '열일'하는 두 배우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한 것도 추가해야 할 듯싶다.

송강호 이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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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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