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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 내가 꿈꾸는 국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대선 기획 '100인의 편지'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차기 정권에 하고 싶은 말, 바라는 바에 대해 적어 기사로 보내주세요.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넘어 '이게 나라다'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여러분과 함께 열어나가겠습니다. [편집자말]


* 광운대 청소노동자(민주노총 소속) 6명(최수연씨, 박순옥씨, 변선영씨, 임효선씨, 김명숙 씨, 황보경씨)과 인터뷰한 내용을 종합해서 각색한 편지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광운대 청소노동자이자 민주노총 조합원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어요. 우리가 보고 겪은 일들을 한번 들어봐 주시겠어요?

예전에 우리는 청소 일을 하고, 한 달에 80만~90만 원을 받았었어요. 계산해보면 최저임금 수준(209시간 기준)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받는 임금 안에는 갖가지 수당이 다 포함되어 있었어요. 심지어는 토요일에도 근무를 했었거든요. 시간 외 수당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우리는 몰랐어요. 최저임금은 기본이고, 각종 수당도 다 지급돼야 한다는 것을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장님이 어련히 다 알아서 주겠지, 생각하고 그냥 넘겼을 뿐이지요. 임금명세서에 매년 조금씩 오르는 임금만 보고, 우리 사장님이 임금을 올려주는 구나, 라면서 오히려 고마워했던 기억이 나요. 그게 최저임금법에 맞춰서 올려주는지도 모르고요. 그때는 최저임금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조차 없을 때였어요.

도토리 줍고, 이사장 아들 아파트 청소하고...

지난 3월 8일, 청소노동자들이 '제5회 청소노동자 행진 선포' 기자회견을 했다.
 지난 3월 8일, 청소노동자들이 '제5회 청소노동자 행진 선포' 기자회견을 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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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청소 외에도 '다른 일'을 많이 했었어요. 소장이 닥치는 대로 그냥 다 시켰거든요. 그러면 우리는 군말 않고, 곧바로 일을 했었어요. 믿기지 않겠지만, 여름에는 잡초도 뽑았고요. 겨울에는 눈도 쓸었어요. 진짜 소장이 하라는 일은 다해야 했어요. 하물며 학교 이사장 공관에 가서 도토리도 주어야 했고요. 이사장 아들 부부가 이사한 아파트 집도 청소했어요. 우리는 정말 열악한 환경에 있었답니다. 우리가 청소노동자인지 소장의 노예인지 구분하기 힘든 생활을 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처음에는 의심을 했죠. 이거 왜 해야 하나? 그런데 우리는 꼭 해야 하더라고요. 안 하면 잘렸거든요. 물어보는 것조차 무서웠답니다. 모든 일이 소장 마음이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생계가 달린 문제 앞이라서 우리는 무조건 참아야만 했어요. 그래야 살아남았거든요. 그렇게 우리는 소장의 온갖 횡포에도 눈 딱 감고, 이 악물면서 일을 했답니다. 근로기준법이 우리를 지켜주는 법이었는지도 몰랐을 때였어요.

이게 불과 3~4년 전의 일이었어요. 되돌아보면, 어떻게 이렇게 살았을까 생각을 해요. 참 바보같이 살아왔던 것 같아요. 노조라는 존재를 알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진짜 소름이 확 돋아요. 우연히 노조를 알고부터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잖아요. 이를테면 지금은 최저임금보다 좀 더 많아진 임금과 함께 각종 수당까지 받아요. 토요 근무도 없어졌어요. '다른 일'은 아예 안 하고요. 노동환경도 나아졌어요. 우리가 조금은 인간다워진 삶을 사는 건 노조의 힘이 정말 커요. 하나의 단결된 힘이 이렇게까지 강한 줄은 꿈에도 몰랐죠.

노조가 없었다면 현재도 3~4년 전의 일이 반복됐을 거예요. 각종 수당이 포함된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토요일까지 일터에 나가고, 부당한 일들도 꾹꾹 참으면서 살아야 했겠지요. 노예 같은 삶, 다시 생각해도 정말 끔찍하네요. 그런데 아직도 이렇게 소장의 횡포에 시달리고, 최저임금도 못 받는 청소노동자들이 우리 주변에 많아요. 더 심한 곳도 꽤 있고요. 아직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청소노동자들이 많다는 방증이겠죠?

노조를 만든 다음부터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우리가 노동인권교육을 학창시절에 미리 배웠다면 어땠을까? 우리 어렸을 때는 반공교육이나 받았지, 노동교육은 전무했거든요. 1970~1980년대에 국가에서 노동자들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산업역군이라고 했어요. 그렇게 노동자를 떠받드는 존재처럼 말하면서도 관련 교육은 제대로 한 번 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모순적이에요. 우리는 뒤늦게 노조를 만든 다음에서야 교육을 받고 있으니, 많이 늦은 감이 있죠. 우리는 교육과 노조 가입의 앞뒤가 좀 바뀐 경우예요.

그래도 우리는 노동 관련 지식을 많이 알아가고 있답니다. 오, 이런 것들도 있었구나, 하나씩 깨달을 때의 재미가 쏠쏠해요. 노조에 가입하고부터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내 자신이 비정규직인 줄도 몰랐던 우리가 나이 오륙십이 넘어서야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느낌이에요. 노조에 가입하기 전에는 최저임금, 근로기준법도 몰랐던 사람이잖아요.

대부분이 노동자인 사회에서 노동교육은 꼭 필수예요. 그런 점에서 이제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우리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의무적으로 노동교육을 배울 수 있는 제도가 구축됐으면 좋겠어요. 일을 하는 노동자들도 노동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생겼으면 해요. 그래야 자신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노동지향적'으로 바뀌지 않을까요?

청소노동자들이 "청소노동자가 대한민국에 정의를 묻습니다"란 주제로 토론회를 했다.
 청소노동자들이 "청소노동자가 대한민국에 정의를 묻습니다"란 주제로 토론회를 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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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교육을 받고 노조에 가입하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되겠지, 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또 대단한 착각이에요. 우리가 그랬거든요. 노조 조직하면 다 끝나는 줄 알았어요. 처음에는 노조를 마치 무슨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각한 것 같아요. 금 나와라 뚝딱하면 금 나오듯이, 노조를 만들면 우리의 노동환경도 금방 좋아질 거라고 굳게 믿었거든요. 막연한 기대였나 봐요. 직접 겪으니, 아니더라고요. 교육을 받고 노조에 가입하는 일만큼이나 노조 조직을 잘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더라고요.

그런데 노조라는 조직을 유지하는 일은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요즘 들어 우리 노조가 속한 서경지부 내부 사업장 중에서 민주노조를 없애려는 시도가 자주 생겨나기 때문이에요. 유성기업 같은 제조업 기업만의 일이 아니에요. 언론에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답니다. 현재까지 업체의 노조파괴 전략에 버티는 곳도 있고, 무너진 곳도 있어요.

무너진 곳의 노조파괴 양상을 보면, 합법적인 틀 안에서 민주노조를 죽이려고 시도하더라고요. 업체들이 노조를 파괴하는 도구로 복수노조 제도를 이용하는 거죠. 어떻게 하냐고요?

우선, 회사의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을 포섭해서 노조를 만들어요. 이른바 어용노조죠. 아예 어용노조로 특화된 노조 조직이 따로 존재하더라고요. 이 어용노조를 다수노조로 만들기 위해 또 부단히 노력해요. 이유는 간단해요. 교섭창구단일화 때문이에요. 복수노조 중에 다수노조만이 교섭할 수 있는 제도의 허점을 노린 거죠. 어용노조가 다수노조의 지위를 얻으면, 회사가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서경지부 사업장 내에서는 어떻게든 민주노조를 없애려고 원·하청의 꼼수와 계략이 판을 친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섭창구단일화란 제도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복수노조 제도의 장점을 더 살릴 수 있는 보완책의 마련도 필요하고요. 진짜, 우리 노동자들이 노조하기 좋은 환경이 얼른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요.

최저임금 1만 원, 시급합니다

노조를 힘들게 유지한 우리가 노조원으로 생활한 지도 벌써 4년차가 됐네요. 매번 우리의 권리를 주장해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참 많아요. 그중 하나가 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예요. 노조를 만든 후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좁혀지지가 않더라고요. 특히나 우리 같은 간접 고용 노동자들은 더 뼈저리게 느껴요.

이를테면 뭐, 임금은 비교할 수가 없죠. 딱 봐도 엄청나게 차이가 나잖아요. 간접 고용돼서 청소 일을 하는 우리는 정규직으로 채용돼서 사무 일을 보는 분들보다 학력도 낮고, 나이도 많아서 임금을 적게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최소한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적정선이란 게 있잖아요. 그 정도의 임금을 꼭 받고 싶어요. 현재로서는 그게 바로 시급 1만 원 같아요. 그래봤자 한 달에 209만 원이에요. 요즘은 물가도 천정부지로 올라서 시급 1만 원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시급하답니다.

그래요. 우리는 최저임금 1만 원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줄이는 시작이라고 봐요. 왜냐하면 비정규직은 최저임금의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우리도 그래요. 올해는 꼭 내년에 받을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올랐으면 좋겠어요.

임금뿐만이 아니에요. 우리는 구성원으로서의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한답니다. 진리의 전당이라는 대학 안에서도 우리 청소노동자들은 완전히 딴 사람 취급을 받아요. 우리는 대학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지만, 신분(고용형태)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척되고 있어요. 정말 청소노동자란 단어에는 '차별과 편견'이란 의미가 골고루 포함된 것 같아요. 더러운 것들 만진다고 더 무시하는 느낌이에요. 그게 차별과 편견을 또 만들어내고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복지혜택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는데요. 예전부터 학교 관계자들은 대학 구성원이라면 지급되는 노조 사무실(정규직 교원노조)이나 휴게공간(학생) 같은 제대로 갖춰진 공간을 우리한테 제공하지 않으려고 해요. 교내 시설을 이용하는 일에도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어요. 이것뿐만 아니라 일종의 차별로 느낄 만한 일은 수도 없고요. 대학도 이 모양인데, 다른 곳들은 어떻겠어요?

그래요. 우리는 '빵'도 있어야 하지만, '장미'도 필요해요. 우리 용역노동자들은 단순히 먹고살기만 하는 개돼지가 아니거든요. 하나의 인격체예요. 고용형태에 따라서 차별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해요. 그러려면 법 제도의 개선이 필요해요. 아예 간접 고용을 없애는 거죠. 노동조합법 제2조에 있는 '사용자'의 정의를 우선 개정하면 해결될 것 같아요. 원청 사업장이 간접 고용을 못하도록 문구를 수정하는 거죠. 간접 고용 없는 세상, 꼭 만들어주세요.

우리가 보고 겪은 일들이 아직 많지만, 이만 줄이려고 해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이달 22일에 있을 청소노동자 대행진 때 해드리고 싶네요. 전국의 청소노동자들이 서울로 모이는 큰 행사예요. 그때는 우리뿐만 아니라 더 많은 청소노동자들이 이야기하는 '청소노동자의 날'이거든요. 그날에는 광장에서 우리 청소노동자들이 각자의 꿈을 하나하나 목청껏 소리칠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힘차게요.

우리 청소노동자들은 여전히 겨울의 어딘가에서 웅크린 채 힘겹게 살고 있어요. 이제는 제발 우리 청소노동자들이 기지개를 활짝 켜고 살 수 있는 봄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어요.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우리 '청소노동자들의 봄'은 도대체 언제쯤 올까요? 지금도 우리는 저 어딘가에 있을 봄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태그:#청소노동자, #민주노총, #청소노동자 대행진, #노동자,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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