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의 스케치북>

<유스케>가 오래도록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가수들이 꼭 한 번 출연하고 싶은 프로그램. 출연하면 '뮤지션'으로 인정받은 기분이 들고 언제든 또 초대받고 또 서고 싶은 무대.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아래 <유스케>)이 구축한 '신뢰'의 모습이다. 많은 프로그램이 시간을 더해가며 식상해지고 그렇게 사라져버리지만, <유스케>는 시간과 함께 가치를 더해가는 듯하다. 그 비결이 뭘까. 그냥 장수비결이 아닌 '가치를 더해가는' 장수비결 말이다. 

물론 <유스케>가 홀로 뚝딱 지금의 가치를 만들어낸 건 아니다.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유스케>의 뿌리와 줄기를 키워냈다. 1991년 시작된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를 필두로 <이문세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하나의 페퍼민트>로 이어진 라이브 무대. 지금의 <유스케>가 있기까지 가요계를 가로질러온 그 궤적은 단순히 TV 프로그램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음악의 역사다.

오마이스타는 장수프로그램 연재기획 8번째 순서로 대한민국 대표 음악방송 <유스케> 기획을 준비했다. 가수는 믿고 출연하고, 시청자는 믿고 보는 프로그램. 시간이 흐를수록 유일무이한 존재감을 빛내는 <유스케>의 장수비결을 살펴본다.

더 웃겨진 MC딩동, <유스케>의 비밀병기

유희열의 스케치북 3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공개홀에서 열린 <유희열의 스케치북> 녹화현장. 이날 출연자는 에일리, 토마스 쿡, 여자친구, 길구봉구였다.

지난달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공개홀에서 열린 <유희열의 스케치북> 녹화현장. 이날 출연자는 에일리, 토마스 쿡, 여자친구, 길구봉구였다. ⓒ 손화신


유희열의 스케치북 3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공개홀에서 열린 <유희열의 스케치북> 녹화현장. 이날 출연자는 에일리, 토마스 쿡, 여자친구, 길구봉구였다.

사전진행자 MC딩동이 녹화 전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계획에 없던 사진촬영이라 화질이 좋지 않은 점 양해바란다. 물론, 녹화 중 사진촬영은 금지다. ⓒ 손화신


손님이 많은 음식점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유스케>에 방청객이 몰리는 데도 응당 이유가 있었다. <유스케> 녹화현장을 찾아보니 "시청도 좋지만 방청은 더 좋다"란 말이 나올 정도로 현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좋은 음악과 위트 넘치는 대화가 있는 곳. 지난 3월 초 장수 프로그램 취재 차 찾은 KBS 신관공개홀 <유스케> 녹화장은 여전히 행복한 기운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유스케>의 전신인 <이하나의 페퍼민트>와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방청했던 옛 추억을 떠올렸을 때, 그때도 꼭 이런 분위기였다.

오후 6시 30분. 녹화를 한 시간 앞두고 방청객 입장이 시작됐다. 지정 좌석권을 배정받은 사람들이 빨간 의자에 일사불란하게 착석했고, 6시 50분부터는 자유석 관객이 선착순으로 맨 앞부터 쏙쏙 자리를 채웠다. 모두 들뜬 표정으로 빈 무대를, 객석 풍경을, 함께 온 친구 얼굴을 휴대폰 사진에 담느라 분주했다. 예나 지금이나 연인들이 가장 많았다. 통로 계단까지 관객이 자리했지만 누구하나 불편한 기색 없이 밝은 얼굴이었다.

오후 7시 15분. 사전진행자 MC딩동이 무대에 등장했다. 예전에 방청왔을 때도 그의 사전 진행을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와 비교했을 때, 그는 더 재미있어졌다. 물론 레퍼토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늘 스케치북에 가장 일찍 오신 분 손 들어주세요." "어젯밤 9시 30분에 오셨다고요? 이분께 박수 한 번 주세요." "무엇보다 뿌리 염색이 시급해 보이는데 그걸 뒤로 하고 스케치북에 와주셨어요, 감사합니다!"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운 진행에 객석 분위기가 무대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몰입됐다.

"연인끼리 오신 분 중에 특별한 날 맞으신 분 있나요? 어, 저기 500일 지난 커플인데 여자친구분 생일이라 신청했다고요? 얼른 나오세요. 기념사진 찍어드릴 게요."

무대에 오른 커플은 MC딩동과 인터뷰를 나눴고, 스태프는 객석을 배경으로 즉석사진을 찍어줬다. MC딩동은 "사람일은 모르니까 한 명씩 따로도 찍어드리겠다"며 과도한(?) 서비스를 베풀어 좌중을 웃게했다. 이 작은 이벤트는 '감동' 코드로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MC딩동의 코치에 따라 남자친구는 여자친구에게 꽃을 건네며 사랑을 고백했다. 이 커플 덕분에 객석 분위기는 따뜻하고 편안해졌다. 7시 30분 정각, 흐름을 이어 바로 녹화가 시작됐다.

카메라가 돌지 않아도... 모든 순간이 웃겼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3월 7일 녹화가 진행된 <유희열의 스케치북>. 이날 초대된 가수는 에일리, 토마스 쿡, 여자친구, 길구봉구였다.

에일리는 녹화 전 리허설에서 드라마 속 닭살 대사를 읊으며 못하겠다고 귀여운 엄살을 떨었다. 하지만 녹화가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명연기(!)를 펼쳐보였다. ⓒ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MC 유희열의 등장에 환호가 터졌다.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였다. 출연가수가 누구인지 관객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유희열은 첫 무대 가수에 대해 힌트를 줬다. "오늘 '귀호강 특집'의 첫 번째 가수는 화제의 드라마 <도깨비>의 OST를 불렀다"고 말하자 객석은 순식간에 웅성거렸다. 제각기 추측하느라 정신없는 가운데, 내 옆에 앉은 여성은 '크러쉬인가봐' 하며 연신 남자친구의 어깨를 때리며 '어떡해 어떡해' 했다. 곧이어 주인공 에일리가 등장했다. 옅은 미소로 어깨를 맞아주던 남자친구의 얼굴에 갑자기 짙은 화색이 돌았다.

에일리는 <도깨비>OST '첫 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를 첫 곡으로 불렀는데, 방송을 통해 최초로 선보인 라이브였다. 노래가 끝나자 유희열은 "가창력이 대단하다, CD를 통째로 삼키신 거 아니냐"며 감탄했고, 에일리는 "CD가 참 맛있다"고 능글맞게 받아치며 인사를 나눴다. 카메라가 돌기 전이었다. 토크 무대를 세팅하며 나눈 대화지만, 한 순간도 잔재미(?)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이게 <유스케>의 매력이 아닐까 싶었다. 대본 밖에서도, 카메라 밖에서도 끊임없이 웃음펀치가 날아든다. TV 브라운관으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행복한 에너지는 이런 '배경들' 덕분이다.

MC딩동이 재등장했다. 다음 무대를 준비하는 에일리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다. <유스케>의 경우 한 가수가 두 번 이상 무대를 꾸미기 때문에 이렇게 중간에 다음 무대 세팅할 시간이 필요하다. 준비시간이 길어지면 어김없이 MC딩동이 올라와 관객의 말벗이 되어준다. 지루할 틈을 안 준다. 덕분에 분위기가 다운되거나 흐름이 끊어지는 일 없이 녹화는 부드럽게 진행됐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3월 7일 녹화가 진행된 <유희열의 스케치북>. 이날 초대된 가수는 에일리, 토마스 쿡, 여자친구, 길구봉구였다.

여자친구는 컴백준비로 바쁜 가운데, <유스케>만을 위한 특별 무대를 준비했다. ⓒ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유희열도 간간이 사전MC의 역할을 거들었다. MC딩동이 '아까 그 커플'을 다시 한 번 무대로 불렀을 때, 유희열이 올라와 그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커플과 유희열은 객석을 등지고 포즈를 취했는데 별안간 객석에서 웃음이 빵 터졌다. 기다렸다는 듯 남자의 엉덩이 위로 올라간 유희열의 나쁜 손 때문이었다. 단 한 번의 제스처로 관객을 순식간에 폭소하게 한 '유희열다운' 액션이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웃음의 영문을 모르는 단 한 사람, 여자친구만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덕분에 출연 가수들도 편안해진다. 유희열과 MC딩동이 쉴 새 없이 웃음을 터뜨려주니 "떨려 죽겠다" 고백하던 가수들도 한결 마음을 놓는 눈치였다. 이날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토마스 쿡은 "떨려서 정신이 없는" 가운데, 어떤 문제로 같은 노래를 두 번 불러야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희열이 나서서 관객에 재치 있게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 덕에 더 큰 응원의 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 <유스케>는 베테랑 가수들에게도 '희한하게' 떨리는 무대지만 유희열과 보이지 않는 MC딩동의 존재는 이들에게 안정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제3의 주인공 '관객', 카메라쯤은 여유 있게

유희열의 스케치북 3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공개홀에서 열린 <유희열의 스케치북> 녹화현장. 이날 출연자는 에일리, 토마스 쿡, 여자친구, 길구봉구였다.

여의도 KBS 신관공개홀을 꽉 채운 관객들. 오후 10시 30분이 넘은 시각이었지만 보시다시피 관객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 손화신


방청석에 앉아 있으니 카메라가 의식되지 않을 수 없었다. 녹화 전 MC딩동이 괜히 '카메라 대처법'을 알려준 게 아니었던 거다. "여러분을 찍는 카메라가 많을 것이다, 혹시나 카메라가 나를 비춘다 싶으면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라, 머리 한 번씩 빗고 슬슬 준비를 해보자." 그의 말처럼 카메라는 객석 뒷자리까지 구석구석 비추었고 '한두 번 <유스케>를 시청한 게 아닌' 방청객들은 최대한 세련된 태도로 카메라를 맞이했다. 집에서 <유스케>를 볼 때 공연장에 와 있는 것처럼 생생한 현장감이 드는 건, 방청객을 또다른 주인공으로서 섬세하게 담아내는 카메라맨들 덕분이었다.  

세 번째 출연자로 여자친구가 무대에 올랐을 때 객석의 환호는 절정에 달했다. 여자친구는 신곡 '핑거팁' 무대를 이날 <유스케>를 통해 처음으로 선보였다. 첫 무대라 너무나 떨린다는 여자친구 멤버들의 솔직한 고백에 관객은 뜨거운 박수로 힘을 실어줬다. 여자친구뿐 아니라 많은 가수들이 신곡 무대를 <유스케>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건 그만큼 <유스케>를 '특별한 무대'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인식의 배경에는 신인의 무대까지도 진지한 태도로 감상하고 박수쳐 줄 준비가 되어 있는 방청객이 있었다.

'최초공개 무대'를 포함한 가수들의 '스페셜 무대'는 <유스케>만의 강점이다. 이날 에일리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김현정의 '멍', DJ DOC의 'Run To You'를 메들리로 선보였고, 여자친구는 '롤모델 걸그룹 메들리'로 보아, 카라, 원더걸스, 소녀시대의 노래를 칼군무로 보여줬다. 자기 노래 한 곡만 부르고 내려오는 타 음악프로그램과 차별화된 지점이다. 가수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오직 <유스케>만을 위한 스페셜 무대를 준비한다는 건, <유스케>가 쌓아온 시간들에 대한 '신뢰'의 표현일 테다. 이는 <유스케>가 음악을 사랑하는 시청자에게 매번 기대에 부응하는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이기도 하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3월 7일 녹화가 진행된 <유희열의 스케치북>. 이날 초대된 가수는 에일리, 토마스 쿡, 여자친구, 길구봉구였다.

길구봉구는 <유스케> 무대에 코러스로 수차례 서왔다. 그리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었다. ⓒ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이날 마지막 출연자는 요즘 대세, 길구봉구. 이들은 앞서 <유스케> 무대에 코러스로 여러 차례 섰다고 말했고 이 말에 모두가 놀랐다. 이제는 초대가수 자격으로 주인공이 되어 무대로 돌아온 길구봉구를 향해 사람들은 뜨거운 박수로 축하를 보냈다. 오랜 시간을 달려온 <유스케>에서만 볼 수 있는 '드라마'였다. 이에 보답하듯 길구봉구는 녹화가 끝나고도 열정적인 앙코르를 선물했고, 녹화장이 아니라 콘서트장 분위기로 막을 내렸다. 오후 7시30분에 시작해 10시 40분쯤에야 마무리된 긴 녹화였지만, 방청석의 열띤 에너지는 처음 온도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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