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모함 서너 개는 교행할 수 있을 만한 간격이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검사내전>의 저자 김웅 검사는 드라마나 영화 속 검사와 현실의 간극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디 검사 뿐일까. 판사, 변호사, 법원 검찰 공무원 등 법조계에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의 실제 모습과 생활은 '항공모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인의 인식과 차이가 나는 게 사실이다. 또 현실의 법과 드라마 속 법도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정드라마와 현실이 어떻게 다르고 어디가 비슷한지, 법을 매개로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그 첫 시도로 KBS2 수목드라마 <슈츠>를 함께 보기로 하자. - 기자 말

소송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 변호사가 있으면 법정에 나가지 않아도 될까.

지난주 글(관련 기사 : 법정에서 '극적 합의' 이룬 장동건? 이 장면의 옥에 티)에서, 이혼 법정에 양쪽 변호사와 이혼을 앞둔 부부가 전부 나와 대기하는 장면이 낯설다고 했다. 왜 그럴까.

먼저 변호사의 호칭부터 정리하자. 변호사를 민사나 행정, 이혼 사건에서는 '소송대리인', 형사사건에서는 '변호인'이라고 부른다. 

민사, 행정, 이혼 사건에서 소송대리인이 있으면 당사자가 직접 법정에 나갈 필요가 없다. 출석 의무가 없다는 말이다. 소송대리인이 소취하, 상소제기 등 모든 소송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나 재벌들의 이혼·민사 재판에서 그들이 직접 법정에 나오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껄끄러운 상대를 만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물론 재판장이 이혼 재판에서 양쪽의 조정 의사나 자녀 양육문제에 대해 확실한 의견을 듣기 위해, 민사 재판에서 의견조율을 시도할 때 당사자가 직접 나올 것을 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도 강제성은 없다. 이런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변호사끼리 재판을 한다.

형사는 피고인 반드시 출석...민사, 이혼은 변호사만 가능 

 KBS 2TV 수목 드라마 <슈츠>의 한 장면

KBS 2TV 수목 드라마 <슈츠>의 한 장면 ⓒ KBS


반면 형사재판에는 예외없이 피고인이 출석해야 한다. 변호인은 피고인 강력한 조력자이다. 법률에 대해 조언을 해주고 법정에서는 대변인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피고인 없이 재판을 할 수는 없다. 형사재판은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강제절차이다. 피고인을 법정으로 부르는 일을 '소환'이라고 한다.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예외가 있다. △벌금 500만 원 이하 사건 △징역 3년이하 사건에서 불출석이 피고인의 권리를 보호함에 지장이 없는 사건 △ 약식명령의 정식재판청구사건 등 비교적 경미한 사건은 피고인 없이도 재판이 가능하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구속된 피고인이 출석을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박 전대통령은 판결선고기일을 비롯해 상당수 기일에 법정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형사소송법(277조의2)에 따르면 "구속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에 의한 인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피고인의 출석 없이 공판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런 예외적인 상황은 흔치 않다. 당신이 피고인이라면 순순히(?) 출석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징벌적 손해배상, 한국도 가능할까?

5화에서는 최강석(장동건 분)과 고연우(박형식 분)가 제약회사 소송을 맡는 장면이 나온다. 두 사람은 임상실험으로 사망한 피해자측과 합의하기 위해 상대측 변호사와 접촉한다. 상대 변호사는 한 사람당 200억 원씩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한다. 만일 재판까지 갔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했을까.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불법행위를 가한 가해자에게 징벌을 가하고, 장래 유사한 행위의 억지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이다. 예컨대 대기업의 부도덕한 불법행위 등 가해자에게 폭력적, 의도적, 고의적, 중과실이 있을 때 피해자가 입은 현실적인 손해액에 징벌적인 성격의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명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인정되지 않고 있다. 불법행위 등으로 발생한 결과에 대한 보상, 즉 손해발생 전의 상태로 회복하는 것에 손해배상의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피해자가 현실적으로 손해를 본 만큼만 금전으로 배상하는 원칙, 이것이 우리나라 손해배상체계이다. 

다만,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 등 일부 특별법에서는 발생한 손해의 3배의 범위 이내로 제한적이나마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손해배상 체계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의료사고, 대형재난 사고 등으로 무고한 사망사고가 발생해도 수백억 원대의 손해배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무법변호사>에 등장한 판사의 처신, 드라마라 하더라도 부적절

 tvN 드라마 <무법변호사>의 한 장면

tvN 드라마 <무법변호사>의 한 장면 ⓒ tvN


또 다른 법정드라마가 지난 주말 첫방송을 했다. 이준기(봉상필 역)가 오랜만에 연기를 선보인 <무법변호사>. 첫 회부터 높은 시청률로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천방지축 좌충우돌 봉상필 변호사의 활약이 기대된다.

이런 드라마에 엄격하게 법의 잣대를 대기는 어렵다. 1화에서 판결 선고 후 판사와 변호사가 언쟁을 벌이고 법정에서 급기야 변호사가 주먹을 날리는 장면이나, 2화에서 봉상필이 법정에 도착할 시간을 끌기 위해 부하가 변호사를 사칭하거나 법정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장면은 극의 전개를 위한 애교로 치자.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판사와 검사, 변호사의 관계, 그 중에서도 판사의 부적절한 처신이다. 현행 <법관윤리강령> 등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엔 형사재판을 하는 판사가 검사나 변호사와 자유롭게 만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예컨대 재판 직후 차문숙(이혜영 분) 부장판사는 법정 근처에서 강연희(차정원 분) 검사와 함께 나타나서 하재이(서예지 분) 변호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차 판사는 거리낌 없이 자신의 판결 소회를 밝히고 유사한 사례의 다른 판결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또한 차 판사는 사무실에 변호사와 검사를 불러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다.

우선, 판사가 자신의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와 밀접한 접촉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형사재판의 한쪽 당사자인 검사와 가깝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쪽은 다른 쪽 당사자인 피고인이다. 판사는 검사와 피고인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재판을 하는 사람이다. 실제로도 드라마처럼 드러내놓고 검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판사들은 거의 없다. 

자신이 맡은 사건과 관계되는 사람을 법정 밖에서 수시로 만나는 일은 규정에도 어긋난다. 법관윤리강령(3조 4항)에 따르면 "법관은 재판업무상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사자와 대리인 등 소송관계인을 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면담하거나 접촉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판사가 사건의 당사자 또는 변호사와 개인적, 비공식적으로 만나거나 접촉하는 행위, 사건과 관계없더라도 특정한 변호사와 눈에 띌 정도로 빈번하게 접촉하거나 지나칠 정도로 가까이 교제하는 행위는 피해야 한다고, 대법원도 권고하고 있다.

 tvN 드라마 <무법변호사>의 한 장면

tvN 드라마 <무법변호사>의 한 장면 ⓒ tvN


또한 향판인 차문숙 판사가 강연희 검사를 신원보증인으로 내세워 하재이 변호사를 경찰서 유치장에서 꺼내주는 장면도 일반인들이 오해를 사기 쉽다. 물론, 옛날 지역사회에서 판사나 검사의 위세는 대단했다. 음주운전, 영업단속과 같은 소소한(?) 문제는 물론, 구속된 사람을 빼내는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는 무용담(?)을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통하는 시대도 아니고, 설사 통한다 하더라도 두 눈 부릅뜨고 막아야 할 때다.

이것은 엄연한 부정청탁이다. 김영란법 위반 소지도 있는 행위다. 마치 판사나 검사라면, 그것도 지역사회라면 이 정도쯤은 용인되는 것처럼 묘사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법관이 자신의 지위를 개인적인 이익을 얻거나 우대받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도 법관 및 법원공무원 행동강령 위반이 된다. 드라마에서 탐욕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차 판사의 캐릭터를 감안하더라도 부적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판, 검사의 모습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부정한 청탁 등 범죄행위에 가까운 장면이 지방의 유력판사 정도라면 허용된다는 듯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로펌, 법무법인, 대표변호사, 파트너변호사, 어쏘?

봉상필은 고향인 기성으로 내려가 사채사무실을 접수하여, '무범로펌'을 만든다. 그런데 변호사 혼자서도 로펌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로펌과 관련된 이 이야기는 다음회로 넘어간다. 로펌은 무엇이고, <슈츠>에 나오는 법무법인 '강&함'에 등장하는 대표변호사, 파트너변호사, 어쏘는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피고인 슈츠 무법변호사 김영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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