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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강남귀신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다, 그럼 좀 시원하지 않을까?'

정말이지 너무 덥다. 매일매일이 기록적인 폭염이다. 1994년 이후로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는 기사도 봤다. 회사에서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이렇게 무겁기는 처음이다.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회사가 처음으로 좋아졌다. 더 있고 싶을 만큼. 그런데 왜 하필 '강남귀신'을 만났으면 좋겠냐고? 최근에 나온 그림책 <한밤중에 강남귀신>을 읽어서다. 심지어 이 책을 쓴 김지연 작가도 만났다.

그래도 그림책을 꽤 많이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허당이었다. 김지연 작가를 몰랐다. 얼마 전 열대야에 읽어주면 좋을 그림책을 찾다가 이 책이 나온 걸 알았다. 한번 살펴봐야지 했는데,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망원동 동네책방 '책방 사춘기'에서 김지연 작가와의 만남을 연다는 거다. 일명 '그림책을 함께 읽고 불면 토크 나누기' 행사. '꿀잠 부적'을 만드는 체험도 준비되어 있단다. 이게 웬일. 만사 제치고 "저요, 저요" 먼저 찜했다. 

지난 20일 '불금'다운 날이었다. 폭염이 맹위를 떨쳤다. 그러나 더운 줄도 모르고 알차고 재미난 이야기를 실컷 나누었다. 처음 보는 낯선 이들과 그렇게 웃은 적은 처음이었다. 이날은 김지연 작가가 이 책을 내고 시작한 전국 유랑 첫째 날이라고 했다. 심지어 "서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리는, 결코 올 수 없는 기회를 잡으신 거"라고 동석한 이 책의 편집자 위정은씨가 힘주어 말했다. 뭐지? 이 '득템'한 기분은?

망원동 '책방 사춘기'에서 열린 <한밤중에 강남귀신> 김지연 작가와의 만남
 망원동 '책방 사춘기'에서 열린 <한밤중에 강남귀신> 김지연 작가와의 만남
ⓒ 모래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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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참가자는 이런저런 관계자를 포함해 8명 남짓. 작가는 평소 독자와 이런 소박한 자리를 기대했다지만, 나는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예정에 없던 기사를 쓰려고 자리를 잡았다. 폭염에, 집에서, 선풍기 바람에 의지한 채로. 왜냐고? 혼자 듣기 아까운 작가의 말이 너무 많아서다. 잠시, <한밤중에 강남귀신>이 어떤 책인지 알아보자.

오백년 동안 자고 일어난 잠 귀신 노리. '낮에는 사람들이 놀고, 밤에는 귀신이 놀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밤에도 잠을 자지 않는다고 투정이다. 그때 '두 눈이 퀭하고 흐느적흐느적 걷는 게' 한눈에 봐도 귀신인 줄 알았던 자미를 발견하고, 함께 밤새 놀자고 말한다.

그렇게 강 건너 고요한 숲으로 간 노리와 자미. 그곳은 강남이 너무 밝아 놀 수 없는 각종 귀신들의 은신처였다. 이곳에서 자미와 귀신들은 어떻게 사람들을 밤에 재우고 놀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짜낸다. 그중 가장 귀신들 마음에 든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자장가'다. 각시귀신이 어렸을 때 엄마가 불러줬다는. 개인적으로 이 책의 백미라 생각하는 부분이다. 작가는 말했다.

"지금이야 애들이 다 컸지만, 애들 어렸을 때 자장가를 굉장히 많이 불러줬어요. 심지어 록버전도 있었죠. 그리고 옛날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 전통 자장가 너무 많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귀신이 불러주는 자장가.
 귀신이 불러주는 자장가.
ⓒ 모래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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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가는 어쩌다 시대에 맞지 않을 법한 이야기, 귀신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시작은 '부적'이었다. 서른여덟에 처음 그림책을 공부했던 SI그림책학교에서 '내고 싶지 않은 그림책'을 작업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게 '부적'이었던 것(작가는 천주교 신자였다).

작가는 부적 자료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 유명하다는 무당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찾아가도 무당들은 잘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중 유일하게 책을 내본 적 있는 무당만이 작가를 보더니 '돈 벌려는 것 같지 않고, 영혼이 맑아 보인다'며 알려줬다고.

"어려운 고비를 넘을 때마다 저 스스로 확장되는 걸 느껴요. 부적이 너무 무서웠고 그걸 못하겠다고 망설였는데, 부적을 하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어떤 소재든 하나도 무섭지 않고 어렵지 않았어요. 무엇이든 피하기보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그 세계가 내 것이 되는 것 같았죠. 제 세계가 넓어지는 계기가 됐어요."

그렇게 힘들게 자료를 찾아 첫 책 <부적>이 나왔고 이어 <깊은 산골 작은 집>을 냈지만, 독자들 반응은 좋지 않았다. 부적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로 받아들이기보다 미신이고 미개하고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한 것을 교육적으로라도 아이에게 읽히고 싶은 부모는 없었다. 작가는 아산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며 "책 행사에 같이 왔던 엄마가 아이를 그냥 데려 간 일도 있었다"며 웃었다.

그런데 이 책이 해외에서 뜻하지 않게 상을 받으면서 인기 폭발 그림책이 됐다. 작가는 "책에 수상 스티커가 하나 붙으면서 (부적에 대해 말하는 게) 금기가 아니라 미풍양속, 우리 전통문화의 하나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그 후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더 넓고 깊어졌다. 그림책 <꽃살문> <한글 비가 내려요>에 대한 이야기가 쉼 없이 이어졌다.

"<꽃살문>은 그 문을 열고 통과할 때마다 더 좋은 상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모란꽃' 문을 열고 나가면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을 살게 되길, '국화꽃'은 선비같은 마음으로 지조를 가지고 살기를, 겨울의 문은 고난의 문이지만, 꼭 통과해야만 성장한다는 바람으로 그렸어요.

<한글 비가 내려요> 역시 '한글을 만들었을 때 어떻게 그렇게 빠른 속도로 전파가 됐을까' 궁금한 마음에 문헌조사를 해봤더니, 가갸거겨 나냐너녀로 노래를 만들어 부른 노래가 엄청나게 많은 거예요. 지금 아이들은 학습지로 한글을 배우는데, 조선시대 사람들은 노래로 배운 거죠. 그래서 한글 책을 노래로 만들었어요."

작가는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자료조사를 하는 열정이 가능했던 건, 오로지 그것이 그림책 때문이라고 했다. 간결하지만, 그 안에 선한 가치를 담고 있는 이 그림책으로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어 좋단다. 부적을 계기로 옛 자료조사를 많이 한 덕에 알게 된 좋은 우리 문화를 그림책에 담아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고 싶었단다. '마음초점 그림책 ' 시리즈도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귀한 아기를 낳았으면 귀한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동그라미, 세모 등 시력만 좋아지는 책만 보는 게 안타까웠어요. 초점책이 눈의 기능을 좋게 하는 것도 있지만 아이의 안녕을 빌어주는 말을 넣고, 꽃 그림을 넣은 이유에요."

그리고 2년 만의 창작 그림책, 이번에 귀신이다. 그것도 강남 귀신. 밤이 돼도 불이 꺼지지 않는 강남에 사는 사람은 '너무 많이 일을 하고, 공부도 너무 많이 한다. 뭐든 너무 많이 해서' 귀신도 놀기 힘든 곳이다. 작가는 왜 강남귀신 이야기를 하게 된 걸까. 이날 현장에서도 간략히 언급됐지만, 좀 더 정리된 내용이 있어 옮겨본다.

"저는 강북에 살고 일을 하러 강남을 가요. 늘 붐비는 거리의 화려한 사람들, 수많은 자동차, 고층 빌딩들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강북에서 한강을 건너 강남으로 들어가는데 강남의 불빛들이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강남을 욕망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여겨 불편해했는데 이곳에 사는 건강한 사람들, 예쁜 아이들의 삶을 돌보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희가 사는 이 도시에도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단다,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 편집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한밤중에 강남귀신> 원화를 보며 설명하는 김지연 작가
 <한밤중에 강남귀신> 원화를 보며 설명하는 김지연 작가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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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밀려드는 궁금증. 왜 '불면의 밤'이었을까. 현장에서는 미처 묻지 못했는데, 편집자가 대신 물어봐 줬다.

"얼마 전 기사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잠을 가장 못 자는 나라로 주목받았던 것을 보았어요. 강남에는 실제로 잠 못 자는 아이들이 많아요. 아이들은 학원 다니며 숙제하느라 밤 12시까지 잠을 못 자고, 중고생은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입시를 준비하고. 어른들도 커피로 잠을 깨우며 일을 하는 상황이라... 어른들이 미웠어요. 그래도 성장기 아이들은 자야하는데...

그래서 귀신들이 어른들을 잡아와서 자장가를 배운 어른들만 집으로 돌려보내는 쪽으로 내용을 구상했다가 '내가 뭐라고 저 사람들을 벌 주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귀신들에게 도움을 청했지요. '너희가 노래해줘. 우린 어른도 피곤하다고.' 하하." - 편집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누명 귀신'이 '억울 귀신'으로 바뀐 비하인드 등 책 속에 등장하는 귀신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알고보면 귀신은 모두 약자라는 이야기들도. 독자들에게 원화를 보여주는 깜짝 이벤트도 마련했다. 즐겁지 않을 수 없는 작가와의 만남이었다. 여기까지 쓰는데도 땀이 한 바가지다. 여름에 할 일을 다 한 기분이다. 그런데 잠깐, 혹시 그날 작가와 함께 만든 '꿀잠 부적'이 효과가 있으려나. 가방 속을 뒤져봐야겠다. 솔솔솔 잠이 올지도. 그날이 오면 놀기 좋은 밤을 되찾은 노리처럼 강남스타일 춤을 추리.

한편, 김지연 작가와 편집자의 더 자세한 인터뷰 내용과 전국투어 일정은 키다리 북 블로그를 확인하면 된다. 책을 구입하면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는 '강남 귀신 스티커'가 따라온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한밤중에 강남귀신

김지연 지음, 모래알(2018)


태그:#그림책, #김지연, #한밤중에 강남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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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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