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방송된 <KBS 스페셜>의 한 장면.

2일 방송된 의 한 장면. ⓒ KBS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점에서 두 가지를 노회찬은 던져주고 갔죠.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해야 된다는 것 하나 하고, 두 번째 정치는 책임을 지는 거다. 대한민국 정치가 책임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는데,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정치하는 분들에게 '정치인의 덕목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라고 하는 점을 분명하게 던진 것 같습니다."

정치평론가 박성만은 '노회찬이 남긴 질문'에 대해 이런 견해를 전했다. 반대편 진영에서 정치를 해나가고 있는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 역시 "노회찬 의원의 정치, 죽음이 저 개인적으로도 정치란 과연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하게 합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2일 방송된 < KBS 스페셜 > '노회찬이 남긴 질문'편은 그렇게 인간 노회찬과 정치인 노회찬의 여정을 되돌아봤다. 한국정치사에 있어 "정치인의 덕목"과 "정치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뚜렷이 새긴 궤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 KBS 스페셜 >은 고교 동창인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을 비롯해 적지 않은 '노회찬의 친구들'을 인터뷰했다. 장례식과 영결식 등 사후 풍경을 담는 동시에 이제는 추억 속에 남은 고인의 과거 이력과 화면들을 다시 정리했다. 그 중 먼저 기억에 남는 인터뷰를 꼽자면 이랬다.

"너무 슬퍼요. 사실 실감이 안 나서 온 건데 (추도식에) 와도 실감이 안 나요. 너무 슬퍼요."

추도식을 찾은 어느 일반인 여성은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카메라는 오열하는 유시민 작가, 그를 안아 주며 함께 눈물 흘리던 심상정 의원, 눈물과 슬픔을 꾸역꾸역 삼키던 방송인 김제동의 모습과 함께 빈소와 추도식을 찾아 그렁그렁한 눈물을 보이며 고인의 죽음에 비통함을 느낀 일반인들의 모습을 많이 비쳤다.

일반인들이 순수하게 표현하는 그러한 슬픔이야말로 '민중의 친구'이자 '서민과 약자, 소수자'를 위한 정치에 매진했던 정치인 노회찬이 남긴 어떤 유산을 고스란히 상징하는 감정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고인이 고정으로 출연했던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은 '노회찬의 빈자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가족이나 친구를 잃었을 때 정도의 상실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상실감이 크고요. 오랫동안 알아왔던 분이고 가까웠고 그리고 그분의 역할은 대체 불가능한 역할이기 때문에 그 빈자리를 누가 메울 수 없고, 그러다 보니 계속 빈자리로 남고 상실감이 계속 오래갈 거라고 봅니다. 앞으로도."

 김어준 "그분의 역할은 대체 불가능한 역할이기 때문에 그 빈자리를 누가 메울 수 없고, 상실감이 오래갈 거라고 봅니다."

김어준 "그분의 역할은 대체 불가능한 역할이기 때문에 그 빈자리를 누가 메울 수 없고, 상실감이 오래갈 거라고 봅니다." ⓒ KBS


노회찬의 빈자리

이날 < KBS 스페셜 > '노회찬이 남긴 질문' 편 역시 그러한 '노회찬의 빈자리'를 다시 짚는 부고와 같은 방송이었다. 방송은 중학생 노회찬의 사진을 시작으로, 유신반대 운동을 펼쳤던 경기고 시절과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쳐 진보정당 운동에 투신했던 노회찬의 약사를 52분이란 시간에 정리하고 있었다.

그 중 그 빈자리를 실감케 하는 장면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나 부인과 함께 KBS 아침프로에 출연, 옥중에서 어머니에게 받은 편지를 직접 소개했던 노회찬 의원의 모습은 노동운동가 출신 진보정치인의 과거를 축약하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그밖에도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동료들과 함께 국회에 처음 입성했던 역사적인  순간, 2008년 총선에서 대약진을 이뤄내고도 3%P 차로 낙선하면서 현실정치의 벽을 실감했던 장면,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의 폭로로 오래도록 고초를 겪어야 했던 노회찬의 이력들은 그 빈자리를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한 달변가, '민중의 친구' 노회찬의 '자료화면' 역시도.

 2일 방송된 <KBS 스페셜>의 한 장면.

2일 방송된 의 한 장면. ⓒ KBS


"대법원의 제3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국민의 재판인 총선에서, 제4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민의 재판인 총선에서, 제4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무죄 판결을 내려주시면서 의원직에서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해주신 국민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서 깊은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3선 의원으로 당선, 정의당 원내대표를 맡게 된 노회찬 의원이 남긴 소감이다. 그렇다. 법원은 끝까지 정치인 노회찬의 발목을 잡았지만 국민들은 다시금 노회찬을 국회로 보냈다. 비록 4년의 임기를 다 채우지는 못했지만, 그 '국민'의 선택을 다시 받았다는 점은 중요하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던 그의 당부가 국민들에 의해 어떻게 실현되는지, 그의 빈자리가 어떻게 채워지느냐의 향배를 가를 열쇠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노회찬이 남긴 질문

 2일 방송된 <KBS 스페셜>의 한 장면.

2일 방송된 의 한 장면. ⓒ KBS


그리고, 우연의 일치일까. < KBS 스페셜 > 방송 다음날인 3일, 고인과 관련된 두 가지 소식이 전해졌다. 하나는 한 설문조사에서 정의당의 정당 지지율이 자유한국당을 넘어섰다는 소식이었고, 또 하나는 검찰이 고 노회찬 의원이 2014년과 2015년 불법정치자금이 아닌 강의료 4000만원을 받은 것이 전부라는 진술을 확보했다는 보도였다.

전무후무한 정의당의 지지율 약진은 노회찬 의원의 안타까운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과 그 빈자리를 메우려는 이들이 정의당을 향한 응원과 결집을 보여줬기에 가능한 하나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늦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고인이 이루려던 정치에 대한 공감대가 정당 지지율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검찰이 확보했다는 진술은 노회찬 의원의 명예와 연관됐기에 주목할 만하다. 특검팀에 조사를 받고 있는 주요 참고인이 "불법 정치자금"에서 "강의료"라고 표현과 진술을 바꾼 것은 향후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정치자금법 개정에 힘을 실리게 할 여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 노회찬의 빈자리는 그렇게 쉽사리 채워지거나 쉬이 잊힐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건 역시 현재 진행형이고, 수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입에 올리고 있다. 노회찬이 남긴 정치적 유산을 평가할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지난달 27일 열린 영결식 이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방송사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특집을 마련하는 것 역시 그래서일 것이다. 3일 오후 SBS <궁금한 이야기Y> 역시 고 노회찬 의원의 추모 방송을 내보낼 예정이다. 그렇게, 대체 불가능한 고인의 빈자리에 대한 추모와 슬픔은 앞으로도 오래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 노회찬'이기에 가능한 처음 마주하는 슬픈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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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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