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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평화 발걸음을 내디딘 것처럼 보이는 미국이 미군사령부의 다른 이름 유엔사를 내세워 남북 평화 행진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승낙 없이 한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까지 했다. 미국이 군사적 경제적 패권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반미를 외칠 수밖에 없다.

평화어머니회는 빈미, 반전 상징인 거꾸로 성조기를 들고 미국대사관 앞에서 북미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며 3년 반 평화 시위를 했다. 평화바람이 불어 300회로 미 대사관 앞 시위를 마무리하고 무기 없는 세상을 위해 군축 공부를 시작했다. 군축공부를 하면서 지구상 모든 분쟁 지역에 세계평화 파수꾼을 자처하는 미국이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화어머니회가 이스라엘 대사관 앞과 미국대사관 앞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주의 포기를 촉구하며' 다시 평화시위를 시작한 이유다. 미국이 군사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평화운동의 핵심은 '반미'가 될 수밖에 없다.
 
해방부터 현재까지 문학과 예술로 표현된 반미
▲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 해방부터 현재까지 문학과 예술로 표현된 반미
ⓒ 네잎클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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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교수의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네잎클로바)는 시와 소설, 음악과 미술 연극과 영화 속 미국에 대한 비판을 담아 낸 책이다.

책은 전체 9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1장과 2장에서는 저자가 반미주의에 관심을 갖고 평화운동을 시작한 경위를 2장에서는 반미주의의 개념과, 유형, 세계적인 현상으로서의 반미주의를 짚어준다.

3장은 1945년부터 실질적인 분단의 밑그림이 그려진 1948년까지 한반도 분단과 미군정에 대한 반대를 문학과 예술을 통해 되짚는다.

4장은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에 미친 미국의 민낯의 추한 면을 이승만 정부와 미국 기지촌 문학과 예술을 통해 폭로한다. 5장에서는 민족주의 부흥기인 1960년대 문학과 예술에 비친 미국을 조명한다. 6장은 1970년대 유신통치 하에서의 반미를 살펴본다.

7장은 광주항쟁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민중운동과 반미를 소개한다. 8장은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의 정치문화의 변화를, 9장은 한국 반미주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조명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에 대해 얼마나 객관적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까. 한국전쟁을 겪은 대한민국은 미국을 은인의 나라, 또는 혈맹의 우방국으로 표현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함없이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하는 절차도 빠지지 않는다.

미국에 대해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유학길에 올랐던 이재봉 교수처럼 우리는 대부분 미국의 민낯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반미주의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이렇게 고백한다.
 
학업에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가끔 미국문화원 도서관을 찾았는데, 어느 날 서가에서 눈에 번쩍 들어오는 책을 발견했다. Anti-Americanism in the Third World (제3세계에서의 반미주의 ). '반미주의'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목차를 살펴보니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등의 반미주의를 다루고 있는데 한국은 없었다. 발행연도가 1985년이나 전문서적치고는 신간에 속했다. 당장 집으로 빌려와 읽으면서 번역해 출판하면 공부도 되고 돈벌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그런데 Anti Americanism in the Third World를 번역하고 <한국에서의 반미주의>를 쓰는 동안 어느새 반미주의에 빠져들며 반미주의자로 변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15쪽

저자처럼 상대를 알아야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인들이 자신들이 본 미국의 민낯을 폭로하는 방법이 바로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다. 이제 미국의 민낯을 들여다보자. 1945년 8월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다. 민족의 독립은 소련과의 밀약으로 분단을 약속한 미국으로 인해 물거품이 된다.
 
달도 하나 해도 하나 사랑도 하나/ 이 나라에 바친 마음 그도 하나이련만 하물며 조국이야 둘이 있을까 보냐/ 모두야 우리들은 단군의 자손 물도 하나 배도 하나 산천도 하나/ 이 나라에 뻗친 혈맥 그도 하나이련만 하물며 민족이야 둘이 있을까 보냐/ 모두야 이 겨레의 젊은 사나이./ 박남포 작사. 남인수 노래 –80쪽

하나의 조국독립이 좌절된 후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들어서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반공을 국시로 한 이승만 정부와 한국전쟁의 상흔으로 1950년대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는 반미 감정을 표출할 수 없었다. 저자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미군 점령에서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많은 좌익 작가와 예술가들이 한국전쟁이 실질적으로 끝날 때까지 월북하거나 우익으로 전향해버렸다. 둘째, 이승만 정부가 지속적으로 반공과 동시에 친미주의를 강화했다. 심지어 미국에 대한 언급 없이 한반도 분단에 대한 슬픔이나 원망을 표현하는 것조차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는 사회에서는 처벌의 표적이 되었다. 셋째,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여하고 휴전 이후엔 남한의 재건을 지원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호의적인 인상을 심어주었다. -118쪽

독재를 거치며 기지촌의 미군 성폭행 등을 문학과 예술로 비판하는 정도로 반미감정을 표출할 수밖에 없던 이들이 적극적인 반미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광주항쟁이다. 독재자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미국문화원에 불을 낸 청년들은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고 한다.
 
미국은 광주항쟁 동안 전두환을 지지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동맹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에 대한 항의로써 우리는 브라운(Brown) 국무부 장관이 방한하는 시기에 미국문화원에 불을 질렀다. -204쪽

광주민주화운동은 민중운동이 되살아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냈다. 소극적으로 표출되던 반미 감정이 학생, 노동자, 농민에게 확대되어 일상 속 반미운동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광주민주화항쟁은 반미주의가 사회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는 불씨를 제공했고 들불처럼 한국사회에 번져나갔다.
 
1950년 5월 광주학살이 한국과 미국 사이의 극도로 불평등한 관계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쌓여온 다양한 갈등에서 생겨난 불만과 원한 그리고 분노가 전국적으로 폭발하게 만드는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이다.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에게 미국은 더 이상 동맹이 아니었다. 제국은 의심할 여지없이 적이 된 것이다 –285쪽.

반미주의는 해방 전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을 70년간 이용해 왔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 저자는 무조건 배척하는 반미주의가 아닌 '뱀처럼 지혜로울 것'을 주문한다. 미국은 우리에게 '뜨거운 감자'다. 너무 멀어도 가까워도 안 되는 것이 '한미 관계'니 말이다.
 
과거에는 반미에 대해 한국 정부나 위정자들이 미국 정부나 정치인들보다 더욱 과민하게 반응해 해왔다. 미국의 특정한 정책에 대한 건전한 비판조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하거나 용공이적 행위로 매도하곤 했다. 국익을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친미도 필요하고 반미도 필요하다. 시민사회의 반미자주운동을 이용해 앞으로 더욱 건전하고 바람직한 한미관계를 추구해가는 게 바람직하다.-313쪽.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 이재봉 지음/ 네잎클로바/ 18,000원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

이재봉 지음, 네잎클로바(2018)


태그:#평화협정, #반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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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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