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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법 위법 관련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리고 있다.
 1일 오전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법 위법 관련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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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대체 : 1일 오후 1시 25분]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유죄가 내려지던 판례를 처음으로 뒤집었다. 1968년 대법원에서 기존 판례가 확립된 이후로 50년만, 1953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첫 처벌이 내려진 후로는 65년 만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증인' 신도 오아무개씨의 상고심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고 이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했다. 앞서 오씨는 2013년 현역 입영하라는 통지에 불응해 1,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날 파기환송 판결은 대법관 8명(김명수, 권순일, 김재형, 조재연, 민유숙, 박정화, 김선수, 노정희)의 다수의견에 따라 내려졌고, 1명(이동원)이 파기환송이지만 별개의견, 4명(김소영, 이기택, 조희대, 박상옥)이 반대의견을 냈다.

대법원 판결 직후 피고인 오씨는 "국민적 우려를 안다, 대체복무에 성실히 임하겠다"라고 말했다.

"자유민주주의, 소수자 관용해야 정당성 확보"

대법원은 대법관 8명의 다수의견에 따라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그러한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 제88조 1항의 정당한 (병익기피) 사유에 해당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기본조건이자 민주주의 존립의 불가결 전제로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며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은) 기본권에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헌법상 국방의 의무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단지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한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병역이행을 거부할 뿐"이라며 "그러한 병역이행이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스스로 파멸시키기 때문에 불이행에 따른 어떤 제재라도 감수하고서 병역의무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에게 형사처벌 등 제재를 통해 집총과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자유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지만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인정해야만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국민 다수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를 국가가 언제까지나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 신념에 선뜻 동의할 수 없더라도 이제 이들을 관용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반대의견을 낸 4명의 대법관은 "병역법 제88조 1항의 (병역기피의) 정당한 사유는 특정한 입영기일에 입영하지 못한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사유, 즉 당사자의 질병이나 재난의 발생 등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사정에 한정된다"라며 "따라서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이 개인적인 신념이나 가치관, 세계관 등과 같은 주관적 사정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또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엄중한 안보상황,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관한 강력한 사회적 요청 등을 감안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될 수 없다"라며 "다수의견의 견해는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으로서 갈등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별개의견을 낸 이동원 대법관은 "우리나라의 병력규모와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수 등을 고려하면 그들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한다고 해서 국가안전보장에 우려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국가안전보장에 우려가 없다는 전제 하에 진정한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자의 병역기피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향후 국가안전보장에 지장이 생기게 된다면 다시 그들에게 현역병입영대상자 등의 처분을 내릴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판결 직후 오씨는 대법원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지난 세월 병역거부자 선배·동료들의 인내가 있어 이런 판결이 있을 수 있었다"라며 현재 계류 중인 재판도 전향적·긍정적 판결이 나오길 바란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어 "국민의 수준 높은 관용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난 세월 동안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판결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라며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용감한 판결에 정말 감사드린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앞으로 대체복무 도입 등의 문제가 남았는데 이것이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오남용 될 수 있다는 국민적 우려가 있는 것을 안다"며 "우려를 없앨 수 있도록 성실히 대체복무에 임하겠다"라고 강조했다.

다른 재판에도 영향, 대체복무 논의도 본격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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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군형법상 항명죄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첫 처벌이 내려진 이후 1960년대 후반까지 비슷한 기조가 이어졌다. 그러다 1968년 7월 대법원은 종교적인 이유로 군복무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병역법 위반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판례를 확정했다.

이후 36년이 지난 2004년 대법원은 일부 하급심에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오자 전원합의체를 열어 다시 이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이때도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가 아니다"라며 1968년에 확립된 유죄 판례를 유지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지금까지 약 1만9000명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란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

이날 대법원 판결에 앞서 지난 6월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5조(병역의 종류) 1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당시 헌재는 "양심의 진실성이 인정될 경우, 법원은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기 전이라 하더라도 (중략) 무죄를 선고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대법원의 무죄 판결은 현재 각급 법원에서 진행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과 여호와의증인 측에 따르면 1, 2, 3심 합쳐 약 1000여 건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이날 판결이 이전에 형이 확정된 사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에게 정부의 특별사면 등이 내려질지 주목된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이어 이날 대법원 판결까지 내려지면서 대체복무제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국회는 내년 12월 31일까지 병역의 종류에 대체복무제가 포함돼 있지 않은 병역법 5조 1항을 개정해야 한다.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후부터 이날 판결 전까지, 주로 보수 야당 의원들이 5건의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지뢰 제거를 시켜야 한다", "현역 군인의 2~3배를 복무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제뢰 제거 등 군 소관업무를 대체복무에 포함시켜선 안 된다",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 군인의 최대 1.5배를 넘지 않아야 한다" 등의 의견을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전달했다.
 

태그:#양심적 병역거부, #대법원, #대체복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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