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는 2017-2018 시즌 이바나 네소비치와 박정아로 이어지는 강력한 쌍포를 앞세워 프로 출범 후 처음으로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두 선수는 지난 시즌 정규 리그에서만 1230득점을 합작하며 도로공사의 공격을 이끌었고 쌍포의 고른 활약 덕분에 문정원은 공격 부담을 덜고 수비와 서브리시브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2명의 공격수에게 큰 부담을 주는 방식은 썩 이상적인 시즌 운용이라고 보긴 힘들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좌우에 배치된 3명의 공격수가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공격을 배분하는 것이다. 지난 시즌 미차 가르파리니와 정지석, 곽승석이 1636득점을 합작했던 남자부의 대한항공 점보스가 가장 이상적인 주전 구성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각 구단들이 '삼각편대의 효과'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시즌을 치르다 보면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기기 때문에 한 시즌 내내 삼각편대를 운영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번 시즌 여자부에서 공격진의 균형이 가장 잘 맞고 있는 팀은 역시 GS칼텍스 KIXX다. GS칼텍스는 이소영과 알리오나 마르티니우크, 강소휘로 구성된 3명의 날개 공격수가 적절한 공격분배를 통해 GS칼텍스의 공격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최근 김미연의 공격력이 부쩍 좋아진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역시 이상적인 공격 형태인 삼각편대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김연경 해외 진출 후 저물었던 흥국생명 '삼각편대 시대'
 
 김연경이 있던 시절 흥국생명은 황연주, 외국인 선수와 함께 최강의 삼각편대를 거느렸다.

김연경이 있던 시절 흥국생명은 황연주, 외국인 선수와 함께 최강의 삼각편대를 거느렸다. ⓒ 한국배구연맹

 
흥국생명은 V리그 여자부에서 삼각편대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등장시킨 팀이다. 2005년 김연경(엑자시바시) 입단 후 황연주(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 쌍포를 형성하며 2005-2006 시즌 통합 우승을 차지한 흥국생명은 2006-2007 시즌 여자부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되면서 본격적인 삼각편대 시대를 열었다. 공수를 겸비한 외국인 선수 케이티 윌킨스가 입단한 것이다.

김연경과 황연주, 윌킨스로 구성된 흥국생명의 삼각편대는 정규시즌에만 1421점을 합작했고 현대건설과의 챔프전에서도 4경기에서 246점을 기록하며 2연속 통합 우승을 만들었다. 2007-2008 시즌 GS칼텍스에 우승을 내준 흥국생명은 2008-2009 시즌 외국인 선수 카리나 오카시오와 한송이(KGC인삼공사)를 영입하며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그 시절 흥국생명 삼각편대의 위력은 다른 구단과 비교를 하기 힘들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2009년 팀 내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김연경이 일본으로 진출하면서 흥국생명의 독주시대도 막을 내렸다. 흥국생명은 황연주와 한송이, 그리고 재계약한 카리나로 새로운 삼각편대를 형성했지만 몬타뇨 마델레이네, 케니 모레노 같은 특급 외국인 선수들에 밀려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2010년 황연주마저 현대건설로 이적하면서 흥국생명의 첫 번째 황금기는 완전히 저물었다.

흥국생명은 미아 예르코프와 휘트니 도스티, 엘리사 바실레바, 레이첼 루크 같은 좋은 외국인 선수들을 꾸준히 영입했지만 국내 선수들의 활약이 부족했다. 결국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떠난 후 5 시즌 동안 준우승 한 번에 그치며 네 번이나 봄 배구 진출에 실패했다. 특히 외국인 선수 바실레바의 원맨팀이나 다름 없었던 2013-2014 시즌에는 프로 원년 이후 9년 만에 최하위를 기록하기도 했다(사실 원년 최하위는 김연경을 얻기 위한 탱킹 시즌이었다).

흥국생명의 긴 암흑기는 박미희 감독이 부임하고 공수를 겸비한 대형 레프트 이재영이 입단한 2014년에야 비로소 막을 내렸다. 이재영은 입단 첫 시즌부터 흥국생명의 토종 에이스로 활약하며 테일러 심슨, 타비 러브 등과 강력한 쌍포를 형성했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이재영과 외국인 선수가 분전하는 와중에도 '쌍포'를 보좌하며 제3옵션 역할을 할 수 있는 또 한 명의 날개 공격수 부재가 늘 아쉬웠다.

좌우 오갈 수 있는 '이적생' 김미연, 흥국생명의 부족한 2% 채웠다
 
 김미연은 이재영과 톰시아에 이은 흥국생명의 3번째 공격 옵션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김미연은 이재영과 톰시아에 이은 흥국생명의 3번째 공격 옵션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 한국배구연맹

 
흥국생명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폴란드 국가대표 출신의 베레니카 톰시아를 지명했다. FA시장에서는 3억 원을 투자해 베테랑 센터 김세영과 왼쪽과 오른쪽을 오갈 수 있는 재주 많은 윙스파이커 김미연을 영입했다. 톰시아의 경우 V리그는 처음이지만 폴란드, 이탈리아, 터키 등 각종 유럽 무대에서 오랜 기간 활약했고 폴란드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서 한국과 여러 차례 만났던 검증된 외국인 선수였다.

하지만 김미연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시선이 많았다. 김미연은 좌우를 오가며 활약할 수 있는 멀티 능력과 강한 서브, 코트 안에서 넘치는 에너지 등 분명 흥국생명에 큰 힘이 될 수 있는 확실한 장점들이 있다. 하지만 김미연은 도로공사 시절부터 IBK기업은행 알토스 시절까지 서브 리시브 성공률이 30% 초중반에 머물렀을 정도로 수비는 다소 부족한 선수였다. 177cm의 애매한 신장 역시 윙스파이커로서 높은 블로킹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김미연은 이번 시즌 흥국생명이 13경기를 치른 현재 주전 한 자리를 확실히 차지하며 흥국생명의 상위권 유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재영과 톰시아에게 집중된 상대 블로킹이 김미연의 존재로 인해 분산되는 효과를 얻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김연경 이적 후 한 번도 누려 본 적 없는 삼각편대의 효과를 약 10년 만에 누릴 수 있게 된 셈이다.

지난 12일 도로공사전(3-1 승리)은 흥국생명의 삼각편대가 가장 이상적으로 활약하며 승리를 견인한 경기였다. 이날 흥국생명은 이재영이 67회 공격 시도로 24득점,톰시아가 56회 시도로 24득점, 김미연이 51회 시도로 23득점을 기록했다. 23득점은 김미연의 프로 데뷔 후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도로공사가 파토우 듀크(공격시도 68회)와 박정아(59회)에게 70% 가까운 점유율이 집중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김미연은 도로공사전에서 무려 60.71%의 서브리시브 성공률을 기록했다. 수비의 안정은 김미연에게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 만큼이나 기쁜 일이었을 것이다. 공격과 서브가 검증된 김미연이 리시브마저 안정된다면 신연경이나 공윤희, 이한비와의 주전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미연의 활약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떠난 이후 가장 위력적인 삼각편대를 거느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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